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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냥한 김선생님 Apr 16. 2022

소중하지 않은 아이는 없다

  월요일 아침이면 늘 '주말 지낸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아이들은 저마다 어디에 다녀왔고, 무슨 일을 했는지  목소리를 높여가며 먼저 말하고 싶다고 손을 번쩍 든다.

동생에게 속상했던 아이,  할머니가 사 주신 아이스크림, 공룡박물관, 집 앞에서  자전거,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때로는 속상한 마음을 위로해주고, 때로는 부러운 마음을 내비치기도 한다.  쑥스러워서 발표를 하지 않겠다던 아이도 슬그머니 손을 든다. 손을 들어서 발표할 차례가 되면 금방 자기가 할 말을 잊어버리기도 하는 반면  할 말이 한없이 길어져서 그만 말하라는 친구들의 원성도 꿋꿋하게 이야기의 끝을 보는 녀석도 있다. 매주 아이들의 일상을 듣다 보면  소소하게 재미있다. 즘엔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하는 놀이 얘기도 많지만, 어느 집도 같은 일상은 없기 때문이다.

  한 아이가 손을 들고 말했다.

"선생님, 저는요. 눈싸움을 했어요."

3월 초인 탓에 아직 쌀쌀하긴 했지만 , 주말에 눈이 오지도 않았는데 혹시나 쌓여있던 눈이 녹지 않았던 곳이 있을까 싶어 재차 물었다.

"눈이 있었어?"

"네!! 눈싸움이 진짜 재밌었어요."

아이들은 어제와 그제, 과거 시점을 혼동하기도 하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우와~재미있었겠네. 선생님도 해보고 싶다 " 대답해주었다.

 그다음 주, 어김없이 그 아이는 눈싸움을 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는 손을 들지 않다.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보육원에 맡겨진 아이였다. 코로나가 유행하는 지금, 이 아이가 보냈던 주말은 시설 안에서의 반복된 일상이었을 것이다. 을 들지 못하는 아이의 마음에 멍을 들게 한 거 같아 너무 미안했다. 부모, 조부모, 다문화, 외국인 아이까지 다양한 가족형태의 아이들을 만났지만 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를 맡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편견을 갖지 않고 아이를 대하리라 마음먹었다. 불쌍하고 가엽다는 나의 생각이 어떤 식으로든 아이에게 내비칠까 두렵기도 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다른 아이들 대하듯이 똑같이 대해줘야지, 티 나지 않게 한번 더 안아줘야지. 문처럼 말해보았다.


  보육원에 있다고 아이가 주눅 들어 있거나 차림새가 다르다거나 하진 않다. 여느 아이들만큼 깨끗하고 깔끔하게, 그리고 정성껏 준비물도 다 챙겨서 온다. 오히려 평범한 가정에서 오는 아이들보다 숙제를 더 잘해오는 경우도 있다.   다만, 다른 아이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사소한 일들이 그 아이들에게는 낯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가 집에 와서 장난감을 사주셨다는 자랑도, 짜장면이 먹고 싶다고 했더니 아빠랑 같이 가서 먹었다는 이야기도 경험해보지 못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아이들의 작품들을 모아놓는 개인 작품 화일철을 정리하다가 문득 그 아이의 예쁜 생각이 담긴 그림을 펼쳐보았다. 연락도 되지 않는다는 아이의 엄마와 아빠가 이 그림을 보고, 아이에게 칭찬을 해주고, 아이가 자랑스러워하며 치킨이나 피자쯤을 사달라고 조르고,  다 같이 둘러앉아 즐겁게 먹는 평범한 가정의 모습. 아이의 작품집을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그 누구도 펼쳐주지 않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드니 한없이 아이가 가여웠다. 야무지고 똘똘한 녀석이니 앞으로의 삶도 잘 꾸려나가겠지만, 이제 일곱 살 밖에 안된 아이의 마음에 외로움이나 상실감이 스며들지 않았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굳이 '주말 지낸 이야기 나누기 시간'을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한번 더 아이를 안아주기로 했다.

"너는 소중한 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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