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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Feb 02. 2024

상생의 트라이앵글

엘리트, 불안, 자기이해




뭔가 더 은밀한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약점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려는 태도, 압박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엘리트 학생들은 모든 일에서 늘 성공을 거두어온 젊은이들이다. 또한 무슨 일에서든 항상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출해왔다. 그러한 이들이 대학에 입학함으로써 보상은 더욱 커졌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자신뿐이라는 생각에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결국 모두가 고통을 겪는다. 모두 자신이 가짜라는 기분을 느끼며 자신보다 남이 더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 윌리엄 데레저위츠 <공부의 배신 : Excellent Sheep> 중에서




나는 엘리트 학생은 아니었지만 엘리트가 되고 싶어했다. 자존심이 강했고, 약점을 들키고 싶어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수학 시간 나만 모른다고 생각했다. 학교 공부는 수학 엘리트에게 맞춰져 있었다. 나는 공부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뛰어난 문학적 감성과 공감 능력 따위는 학교 공부 기준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었다. 인간에 대한 호기심과 인문학적 탐구심은 쓸모없는 능력으로 치부했다. 내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안 것도 수 십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으니까. 인문학적 능력을 단점을 여겨서 고치고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청춘을 바쳤다. 지금 생각하면 그 자체가 어리석음이었고 무지의 소치였다.


혼자 뒤쳐지고 있어 불안했다. 그 뒤쳐짐의 출발점을 계속 생각했다. 다른 아이들은 이미 중학교 때부터 어쩌면 그 이전부터 수학 공부를 앞당겨 해왔다는 사실을 안 것도 한참 후의 일이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었고 만회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공부에 관한 우월감이 순식간에 열등감으로 곤두박질쳤다. 학교생활은 늘 숨이 찼고 실체를 알 수 없는 불안에 쫓겼다. 나 혼자 힘들었고 나를 빼고 모두 승자처럼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엘리트 의식이 일찍 깨어진 건 행운이었다. 인생에 한번은 반드시 찾아오고야 말 실패와 패배의 맛은 썼지만 약이었다.




교사가 된 지금 아이들 개개인에게 숨어 웅크리고 있는 불안을 본다. 조금만 참으면 좋은 세상이 열릴 거라고 말 할 수 없다. 어른인 나도 사는 건 언제나 불안하고 두렵다고 겨우 솔직하게 입을 땔 정도가 되었다.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경쟁의 시원을 찾을 때까지 질문은 계속된다. 너희들 시절의 불안이 어디서부터 출발하며, 그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친구 삼을 수 있을지 설명하려고 애쓴다. 언어로 설명하기 쉽지 않아 번번히 좌절한다.


내가 설명해 줄 언어나 방법 따위는 없다. 나는 너의 불안을 괜찮다는 위로로 퉁치고 싶지 않다. 어른인 나도 불안을 옆구리에 끼고 살고 있다고. 다만 너희들의 불안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 불안한 느낌을 내가 아니까. 불안한 이유가 너희들 각자가 가진 단점 때문이 아니란 걸 아니까. 그래서 나는 기다려 줄 수 있다. 너 또한 나처럼 꽤 괜찮은 어른으로 살아갈 거니까.  과거의 불안은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 시절의 불안이 지나가고 나면 또 다른 불안이 찾아온다. 그러니 불안은 떨쳐낼 것이 아니라, 친구삼아야 한다.




불안은 착시일 뿐이다. 최고가 되고 성공하는 꿈을 향해 달리면 가능할 것 같은 환상에 빠진다. 한두번의 성공이 현실이 되면 더 큰 성공을 향해 내달리는 환각의 상태에 빠진다. 이것이 '엘리트 의식'이다. 영원한 승자는 없다. 앞을 향해 내달리는 사람은 자기 앞에 가는 사람의 불안한 얼굴을 보지 못한다. 자기 뒤를 돌아보라. 나를 추월하려고 살기 어린 눈을 번뜩이며 쫓아오고 있다. 그 살기의 눈빛은 나의 눈이기도 하다. 자신은 영원히 불안에 쫓기는 자이고 불안한 자를 쫓는 자이기도 하다. 이것이 경쟁의 실체다.


그럴 땐 모두가 목표하는 길을 벗어나라. 세상의 모든 길은 갈라져 있지만 연결되어 있다. 가장 빠른 길은 모두가 달려가려는 길이다. 모두가 가지 않는 길은 멀리 우회하는 길이다. 그런 길은 비포장 길이다. 멀리 우회하는 길엔 뒤쫓아 오는 사람도 쫓아가야 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천천히 길가의 풍경과 꽃들과 대화하면서 가는 길. 길 자체가 즐거운 과정의 길. 행복이 충만한 길. 빨리 간 사람이든 우회한 사람이든 모두 자기만의 종착지에서 만난다.




"내가 가진 섬세하고 예민한 능력을 장점으로 봐주는 어른이 아무도 없었어. 단점으로 생각하고 바꾸려고 청춘의 시절을 모두 바쳤지. 소용없는 일이었어." 아내에게 말했다.

"그걸 알아봐 주는 어른이 주변에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당신의 인생은 달라졌을 거야."

아내 말이 맞을 수도 있고 틀렸을 수도 있다.

"교사 생활하면서 집착했던 과제가 이거였을 거야. 나같은 학생을 발견하고 알아 봐주는 거."

너는 왜 그러고 사느냐고 비난하지 않는 것, 너는 결국 네가 원하는 목적지에 가 있을 거라고 믿어주는 것, 지켜보고 기다려 주는 것 밖에 내가 특별히 해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내게 교직은 소명으로 다가왔다. 교사를 하면서 내 성격과 특성이 단점이 아니라 장점임을 깨달았다. 자신의 장점은 누가 말해 주어서 아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장점을 발현할 수 있는 곳에 운명처럼 끌려서 결국 그곳에 도달한다. 이 점에서 아내의 말은 틀렸을 수도 있다. 자신의 고유함을 몰라서 불안해 하는 아이들을 지켜보고 도와주었다. 그런 점에서 운이 좋았다. 비로소 그 시절의 '나'와 온전하게 화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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