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가 사랑이다
그럴 때면 문득 내 목숨은 내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암과 맞써 싸우는 오늘의 내 목숨은 내 모습이 내일의 가족들에게는 살아가는 힘이 될 수도 있다. 지금 당장은 이해할 수 없어도 언젠가는 오늘의 나를 가족들이 이해해줄 날이 반드시 온다.
- 김범석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중에서
"괜찮아, 건강하고 착한 게 어디야."
게으르고 나태한 자식이 꼴보기 싫을 때 거는 마법의 주문이다. 정말 신기하게 미운 마음이 사그러든다. 여기서 한 단계 더 후퇴하면 괜찮아 건강하게만 자라다오,가 된다. 하지만 현실은 부모로서 자식에게 거는 기대와 욕심은 커져 간다. 내가 부리는 욕심의 크기와 비례해서 자식과 거리가 멀어진다.
생각해보면 착한 것도 아주 큰 욕심이다. 언젠가 딸에게 너무 착하게 살지 말라고 했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딸에게 이기적이라고도 했다. 너무 배려하는 아들에게 너는 자기 걸 못챙기느냐고 나무랐다. 딸에게 주체성 강하다고 아들에게 마음이 따뜻하다고 말해 주지 못했다. 너의 존재 자체가 사랑스러울 때, 나는 너를 정확하게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사무치게 고마울 때 진정한 자기애가 꽃 피는 순간이다. 나도 암과 맞서 싸우며 내 목숨이 내 것만이 아니구나, 하고 생의 의무를 깨달았다. 스스로에게 더 이상 불필요한 것으로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기로 다짐했다. 존재만이 고마운 것이라고.
당위가 어른을 만든다
어른이라는 것은 풍부한 경험과도 높은 식견과도, 마음 됨됨이와도 관계가 없다. 자기 자신이 '어른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당위를 받아들이는 것에 의해서만 사람은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도 안 한다면 내가 한다'고 결단한 순간 나츠메 소세키는 단숨에 '근대 일본 최초의 어른'이 되었던 것이다.
- 우치다 타츠루 <어른이 된다는 것> 중에서
"나는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니까. 어른 구실 못해도 어른 자리는 지켜내야 하니까."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서 존재가 한없이 가볍게 느껴질 때 스스로에게 거는 엄중한 주문이다. 정말 신기하게 내 자신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존재 자체가 당위가 될 때 스스로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된다. 아, 이런 게 어른이 되는 느낌이구나.
나는 이제 겨우 어른이 되려는 첫발을 내딛였다. 어른은 노력이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롤모델이 되어야만 한다는 절박함에 의해 성취된다. 피할 수 없는 당위가 어른을 만든다. 이제서야 아버지의 침묵과 고독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른이 되기 위한 마지막 성장통은 무겁게 다가온다.
나는 글쓰기로 거대한 생의 의무를 찾고 있다. 나츠메 소세키처럼 사회적 확장판으로서 어른을 꿈꾼다. 이런 꿈을 꾸고 있으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고마움'에 스스로 충만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