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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많은븐니씨 Aug 20. 2021

초등부, 난 왜 리더로 선출되었지?

[비범밥 3편] 6년 간 학급 임원 l 경기도교육청 교육감상 수상

3. 초등학생 시절, 나는 왜 리더로 선출되었을까?

-Q.6년 내내 학급 임원으로 선출됨과 동시에, 경기도교육청은 왜 나에게 상을 주셨을까


◎비범밥 3화를 들어가며, 리더의 정의가 뭔데? 리더라고 해서 다 아나운서가 되어야 해?

 그러니까 야! 너 좀 평범하게 살아, 아나운서만이 정답은 아니잖니!라고 말한 분에 대한 답변으로 3화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아나운서=비범함, 나머지 모든 직업=평범함이라고 이 글을 적는 거라면, 리더 및 방송인 될 소양이 없는 사람들은 지금부터 이 창을 끄면 된다. 그러니까 내가 원한 직업이 어떤 언어적인 능력, 전문적 지식, 스타성 있으면 조금 더 가능성이 높아지는 범주이기에 열정이 비범하게 필요하다는 말이지, 사실 나는 1화에서도 밝혔듯이 평범하게 살기를 원했다. 이 스피치 관련 직업에 도전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평범하니, 난 대단히 비범한 사람이야~ 허허허 허.라고 말하는 게 아니란 소리다. 나는 리더자고 너네는 나를 그냥 따르는 팔로워들, 리더의 팬, 머저리, 쩌리 이런 뜻이 아니란 말이다. 그런 선후의 순서를 따지는 문제 및 경중의 문제를 따지는 양적의 문제가 아닌, 성분적 차원의 논의를 하는 것이다.


가령, 어떤 한 분야의 선봉자, 선생님, 리더가 있는 것은 그 사람들이 자석처럼 그 사회의 구성원들인 철과 같은 사람들을 강력하게 끌어당겨서 사회의 어떠한 부분을 처리해야 할 소명과 사회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리더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자석과 철은 하나의 예이다.) 자석도 철이 있어야 그 쓸모가 있고 철도 자석이 있어야 그 쓸모가 명확해지듯이 그 둘은 서로에게 상호작용을 미치면서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또 리더의 종류 중에서도 사람을 이끌고 교화시키는 자석과 같은 역할을 하는 리더가 있고 팔로워처럼 보이면서 뒤에서 보호해주는 자전거 보조바퀴 같은 리더도 있을 것이다. 또한 리더의 규모 면에서도 그 리더의 사명의 목표가 큰 리더가 있고, 비교적 작은 목표의 크기가 주어진 리더가 있을 것이다.


또한, 리더십이 있다고 하여서 나같이 전면에 나서는 직업을 꿈꾼다는 것도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나는 나의 어린 시절 중 다양한 요소 (리더십, 스타성, 사람들을 좋아하는 성향, 학문을 좋아했던 열정, 그 직군에 대한 친구들의 인정과 추천 등을 바탕으로 이야기하는 것)를 바탕으로 그 직업에 한번 도전해 본 케이스다. 따라서 이 비범밥 에세이는 다양한 동기부여를 원하는 사람들, 리더라는 꿈이 있는 분들, 카리스마를 살리고 싶은 자들, 슬럼프에 빠져있어서 누군가의 경험담이 필요한 분들, 가족들의 바람과 반대의 방향의 목표를 가진 분들 등이 참고 삼아 읽고 의미와 재미를 찾으면 된다.


◎6년 내내 학급 임원을 함과 동시에, 졸업식에서 경기도 교육청 모범상을 수상하다 l 구령대 수상!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엄친딸이었다. 학급 반장, 부반장을 교차적으로 맡아 가면서 학급의 일들을 비교적 앞라인에서 수행하였다. 선생님들을 얼마나 좋아했던지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의 담임선생님 이름을 아직까지도 기억한다. 그만큼 선생님들에 대한 사랑과 향수가 깊다. 선생님들께서는 서류 심부름이 있으면 항상 나를 시켜서 다른 반까지 갔다 오기를 부탁하셨다. "이거, 2반 선생님 가져다 드려." "이건, 3반 선생님 가져다 드리고, 도장을 받아오면 된다~" "학급문고 게시판은 다음 주에 꾸미자" "너는 타자가 빠르니까 선생님 워드 작업 좀 도와줄 수 있니?" "선생님, 커피포트에 물 좀 받아줘" 등의 정말 다양한 심부름들을 모두 처리하였다. 이러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한 결과 졸업식에서 영어사전이라는 상품, 장학금과 함께 경기도 교육청 선정 모범학생 표창장을 수상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의 스타성, 로즈데이 사건 l 학예회 댄스부 보아 언니 비켜~ l 나에게 안티카페가?

초등학교 시절엔 옷을 자유롭게 입는다는 점이 좋았다. 어렸을 때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고 예쁜 옷을 좋아하는 나는 사는 곳의 동대문 시장 같은 곳을 자주 들러 매년 많은 옷을 샀다. 또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외모에 많이 신경을 썼다. 그러면, 남자 친구들이나 여자 친구들이 예쁜 옷을 입었다고 말해주어 기분이 좋았다. 그땐, 데이데이가 유행이었는데, 로즈데이에 무려 3명의 남자 친구들로부터 장미꽃을 받게 되었다. 비단 남자 친구들 뿐만 아니라 여자 친구들도 나에게 무슨 데이에 우정장을 만들어주거나, 사탕을 주거나 선물을 전달해주기도 하였다. 그러면 나도 그 선물들을 잘 받고, 친구들에게 많이 베풀고 학급 전체에 빵과 우유를 돌리며 많은 것을 함께 나누려고 노력하였다.


1. 로즈데이 사건: 그렇게 그 친구들은 꽃을 받지 않는 나를 위해 우리 집 앞까지 함께 동행했다는 창피한 추억이다. 나는 당시에 누군가가 나를 이성적으로 좋아한다는게 굉장히 부끄러웠다. (열정리더의 색다른 모습)

아래와 같은 14일이 되면 우리네 학급은 누가 누구에게 고백을 하고, 편지를 줬다는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1/14 다이어리데이: 다이어리 주고받는 날

2/14 밸런타인데이: 초콜릿 주고받는 날

3/14 화이트데이: 사탕을 주고받는 날

4/14 블랙데이: 못 받은 사람들은 짜장면 먹는 날

5/14 로즈데이: 장미꽃을 선물하는 날

(이하 생략)



2. 학예회 댄스부, 6학년 부가 피날레를 장식해야지~ 보아 언니의 You Still My No.1~♩

 초등학교 때에는 다양한 학내 행사 중에서 학예회가 큰 행사 중 하나였다. 소규모로 이루어질 때도 있었고 운동장에서 큰 규모로 이뤄질 때도 있었다. 4학년 때 친구와 함께 무대의 앞에서 박지윤의 성인식을 추면서 무대의 맛을 맛보았다. 그래서 초등학교 6학년 시절에는 큰 규모의 서호 학예회가 진행될 때 4학년 때 성인식을 함께 연습했던 친구와 무리를 만들어서 연습했다. 당시 선정한 곡은 우리들의 최고의 인기가요였던 보아 언니의 No.1이다. 이 영상을 친구들과 함께 교실에서 봤을 때는 "송아지, 춤추는 것 봐ㅋㅋ"라며 놀림도 많이 받았다. -네가 무슨 연예인이냐? 왜 저런 춤을 추고 있냐는 친구들의 귀여운 웃음이다- 당시에는 송 씨라서 별명이 송아지였는데, 내가 지나가기만 하면 같은 반 친구들이 맨날 "카우 킹"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송아지 왕!


3. 나에게 안티카페가? : 6학년 언니들에게 찍히다, 쟤가 송아지야? l 옷을 예쁘게 입은 죄

 이건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최고 학년인 6학년 언니들이 사춘기 시절로 접어들면서 한 학년 아래 동생 학년을 심하게 괴롭히는 분위기가 있었다. 지금의 학폭과는 다른 건데, '찍힘 문화'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러니까 너무 튀게 옷을 입고 멋스럽게 꾸며서 눈에 띈다던가, 공부나 심부름을 그들보다 잘한다는 소문이 나거나, 그들의 눈에 무언가가 시기의 대상으로 여겨져 찍혀버리면 그 초등학생 5학년 생활은 아주 피곤한 생활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학교의 구조는 별관에 아예 5학년들을 항상 배정하여, 초등학교 최고 학년인 6학년 선배들로부터 분리를 해놓았다.


그런데, 꾸미기 좋아하고 선생님들 심부름 도맡아 하는 내가 어떤 경로로 최고 학년인 6학년 선배들에게 소문이 나서 내 5학년 생활이 아주 피곤하게 되었다. 6학년 언니들은 이유 없이 자주 나를 찾아와서 무서운 목소리로 나를 찾아내고, 원인모를 경계를 하고 안 좋은 시선으로 대했다. 차라리 무슨 어린이 심부름꾼으로 데뷔를 했다거나 찐 유명인이라도 되어서 괴롭힘 당하면 덜 억울하기도 할 법한데, 난 그냥 '일반평범밥'인데 이런 정신적인 괴롭힘을 많이 당하는 게 억울하고 괴로웠다. 그것은 당시 유행하는 안티사이트 개설까지 이어져서 나에 대한 비방글이 올라오는 것을 직접 봤다. 보고 있으면, "송아지, 또 무슨 옷 사서 입었대~.", "송아지가 그렇게 나대면서 활동한대~" 이런 식의 글들을 말이다.


그래서 한 번은 우리 가족 중에 화나면 무서운 골목대장 언니가 와서 그 언니들을 모두 다 혼내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 6학년 선배 무리 중에서도 나를 특별하게 싫어하고 견제한 선배분이 있었는데 그분의 정도가 너무 심하고 지나쳐서 선생님들과 친구들도 많은 걱정을 하였다. 결국 가족들이 나서서 중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고 다행히 그 이후로는 조금 괴롭힘이 잦아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나쁜 관심은 계속 따라다니고 있었다. 이후에는 나도 조금 조용히 생활하고 적당히 꾸미고 다니면서 최고 학년인 6학년 선배들이 졸업하기만을 기다리며 생활을 했다. 


그런데 이게 다음해에는 끝났을까?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 그 선배들이 중학교로 진학을 하니까 그 '나쁜관심'이 끝나야 하는데, 끝나질 않았다. 괴롭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상처의 방어기제 역치가 높아져서 그러려니 하면서 참았다. 그 선배들은 중학교에 가서도 몇 번 내가 다니는 초등학교를 직접 찾아와 '찍힘의 끝'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중학교에서 새로 생긴 다른 무리의 언니들까지 합동으로 찾아와서 그 공포감은 더해갔다. 그래서 난 잠시 다른 장소에 피해서 그들의 시선을 애써 마주하지 않았다. 맞고 다닌건 아니지만 나쁜 괴롭힘 속에서 성장한 경험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냥 내가 열심히 생활한 만큼의 희한한 괴롭힘이었고, 그래.. 저런 행동들이 차라리 무관심보다도 낫겠지.. 생각하며 기억속에 묻어놓은 기억이다.


◎열정 리더의 노하우 공유: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여 비교적 다른 분야에 비해 잘 해내고, 특성 있었던 활동을 찾아볼 것을 권유한다 l 친구들에게 인정받은 분야를 생각하여 동기부여를 하며 직무와 직업 찾아가기

 보통 안티카페는 스타들이 갖는 악성 카페라고 생각하는데, 왜 이런 일이 내게? 난 이 당시에 정말 우울해서 오늘은 무슨 일이 내일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또 하루가 지나면 무슨 소문들 나돌까? 어떤 선배가 찾아올까? 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살았다. 또 학교에서 선배 분들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5학년 별관이 있는 곳으로 빛의 속도로 달리면서 피해 다녔다. 그러면 내가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욕을 많이 얻어먹고, 학교생활을 정말 활동적으로 잘하고 선생님께 도움이 되었다면 적어도 내가 어떤 소식의 안내자로서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해도 되지 않을까? 이왕 욕 얻어먹는 김에 뭐라도 돼서 먹는 게 어떨까? 하면서 나의 어린 시절의 다양한 성향을 바탕으로 나는 목표를 설정하고 꿈을 찾아 나아갔다.


(독자님들, 저 도전해볼 만한 성향이 조금씩 보이지 않나유..? 평범하게 살라고 한 말 우리 엄마랑 이모입니다.. 저는 가족들로부터 응원받은 적이 많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가족들이 도와주기도 했지만 꽤 만류한 케이스입니다. 처음엔 응원을 해줬다가도 이내, 너무 과하게 사는것 아니냐면서 저의 열정에 조금 상처를 내기도 했어요. 그래서 지금 가족들의 응원받지 못해도 꿈을 이뤄야 하는 분들 힘내시라고 전해드려요. 소신과 목표가 있다면 쟁취하세요! 그리고, 가족들에게 보란 듯이 잘하는 모습을 보여드리셔유-송블리진심)


그렇다고 해서 내가 요즘 말하는 어그로 끌고 관심받고 싶은 관종이었을까? 뭐, 어쩌면 일정 부분 그런 시선을 즐기고 앞라인에 설 수 있는 축복된 시간을 즐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축복된 시간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 반장을 노리는 친구들도 제법 많아지곤 했기 때문이다. ^^! 하지만 적어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선생님들께 인정을 받는 선에서 그 개인적인 성취와 관종의 시간을 즐겼다. 근데 또 자라고 보니 너무 큰 관심을 받는 것도 부담스러워서 때로는 지금 하고 있는 페이스북, 트위터, 블로그, 링크드인, 브런치 같은 일종의 나를 표현하는 모든 SNS 없이 유유자적하는 선비처럼 나의 실생활에 집중하면서 어떤 소식도 전하지 않을 채로 살고 싶을 때가 있다.


이건 이렇듯이 자라면서 사람의 성향이 변하기도 하는 문제라서 더욱 어렵기도 한 선택의 문제이다. 사람이 소나무처럼 한결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것 같다. 종종 바다처럼 안정적으로 변함없이 성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아무튼 사람의 성향과 성격이 어떠한 계기로 변한다면, 목표를 잡아야 하고, 직무에 대한 경험을 키워야 하고, 직업을 가져야 하는 데 또 변수로 작용한다. 더 확장해서 생각하면 사회생활을 하면서 없던 직무능력도 생기고, 인턴경험을 통해서도 없던 직무 능력을 향상할 수도 있다. 그래서 또 다른 새로운 직업과 직무능력을 갖게 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살다 보면, 리더가 팔로워가 되기도 하고 팔로워가 리더가 되기도 하면서 우리는 그렇게 모양과 위치를 바꿔가며 산다.


 시기적으로는 대부분 아마 20대 초반에 30대 이전의 삶의 계획을 세우면서 또, 20대 중반에 앞으로 30대 너머의 중장년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위치과 주체성을 결정지어주는 노동과 직업, 직무에 대한 진중한 고민을 할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어떤 성향의 사람이고 과거에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한 번쯤은 짚어보고 목표를 설정해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2화에서도 말했듯이 우리의 삶을 많은 부분 형성시키는 '직업'이라는 선택지 문제에서 조금 더 심층적인 고민을 해보자는 것이다. 자신의 삶에 깊은 고민 없이 삶을 살기에, 우리는 너무 소중하고 귀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표가 잡히지 않는 사람들, 리더로서의 꿈을 꾸는 사람들, 나와 같이 비범밥을 요구하는 직무를 가지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의 결정에 조금이나마 자신감을 얻기를 응원해본다.



[송블리의 연애사업] 유치원 때부터 남자 친구가 있었는데, 성은 남 씨였다. 이후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종종 심부름이 끝나면 방과 후에 나와 친구를 불러서 떡볶이를 사주시고 "송블리를 감당할 수 있는 성숙한 친구는 우리 학교에 없어."라는 슬픈 말씀을 해주셨다. 그러니까 내가 어린 시절부터 성숙하다는 건 정말 감사한데, 성숙하기에 나는 남자 친구들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이러한 성향을 성인이 되어도 지속되어 나는 나의 성숙함을 감당하는 남자 친구들을 쉽게 만나지 못한다. 연애의 휴식이 더 많았던 상황. 연애사업 분야에 있어서는 많은 조언을 받아야 하는 팔로워임을 인정해요~!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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