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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많은븐니씨 Aug 19. 2021

유치부, 송사 발표 자리를 사수하라.

나는 왜 마이크를 들고 노랑반 대표 송별사를했을까?l비범밥2편

[ 저는 평범했는데, 노력이 비범했습니다. ]


2. 유치원 시절, 송사 발표 자리를 사수하라!

-Q. 나는 왜 마이크를 들고 노랑 반대표 송별사를 했을까


◎노동과 직업, 그리고 정치·경제·사회에 관련하여서 l 2화를 들어가며

비범밥 2화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인간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다루면서 정치와 경제 노동과 직업에 대한 의미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에 대한 참여가 인간다운 삶의 기본 조건이라고 인식했다. 노동에만 종사하는 자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라고 부르기를 거부했다.* 위의 설명을 참고해보면 고대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마 노예를 인간으로 지칭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대의 그리스 노예들은 참정권의 자유가 없었다. 역설적으로 설명하면 참정권이라는 자유가 허락되는 실질적인 경제적 파워가 없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인간', 그리고 더 나은 인간으로 살고 싶은 우리들의 다양한 사회적 욕구와 경제적 성취, 정치에 대한 참여를 허락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 노동과 직업 아닐까? 오늘날은 경제권을 가진 현대판 노예(사회적으로 경제권을 획득한 사람들을 노예라고 부르니, 다소 유머스러운 표현이다.)들이 오히려 그 정치판을 가지고 노는 사회로 변모한 듯 보인다. 이 말의 뜻은 과거에는 경제활동을 담당한 노예들에게는 정치권의 주도적인 획득이 없었지만, 현대의 노동자들에게는 오히려 그 재산 정도의 규모에 따라서 정치권의 주도적인 획득이 가능해졌다는 말을 의미한다.


그래서, 오늘날은 그 자리와 위치가 더 중요해진 노동과 직업이 우리와 나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겠다. 경제활동에 따라서 삶의 모습이 규정되고 사회생활의 기본 구조가 조성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많은 시간 공부를 하고 진로에 대한 고민을 심도 있게 하며, 다양한 직종에 대한 고민을 아끼지 않는 것일까? 바로 정치, 경제, 사회를 포괄하는 다양한 영역에서의 문제의 주권을 지닌 노동과 직업이 나의 '위치'와 '주체성'을 확립하게 하는 '현대적 도그마'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정치, 경제, 사회라는 영역의 문제가 그 경계를 허물면서 복잡하고 다양하게 얽히고설켜 상호 작용을 하고 있는 상황속에서 노동과 직업을 선택하려고 하는 많은 구직자와 예비 근로자들은 복지의 견고성·장래의 유망성·연봉의 고수익성이라는 이른바 노동자들의 삶의 방패가 되는 많은 요소들을 적극 고려하며 그들의 미래를 선택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나의 삶과 본인의 사회적 위치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켜가려고 하는 일종의 탐색전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신중하게 진행되고 있다. 홉스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직업에 대한 직업의 투쟁이다. 나 역시도 이렇게 삶의 모습을 규정하고 사회생활의 모습을 형성하게 하는 노동과 직업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을 10년 넘게 해왔으니 말이다. 그 직업이 내 꿈과 일치하면 좋겠다는 어마어마한 생각을 했으니, 그 과정에서 어떤 쓰라림과 패배가 있었을지는 이 에세이를 지켜보면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열정과 꿈, 목표와 직업이라는 광범위하면서도 어려운 문제에 대한 에세이를 쓰고 있는데, 결국 답은 자신들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것과, 개인의 꿈과 직업은 어떤 누구도 결정해 줄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는 것이 서론에서 말해주고 싶은 나의 메시지다. 한편으로는 답이 없는 문제에 글을 쓰고 있자니, 도통 감이 안 잡히는 노릇이다.


◎그래서, 유치원 시절의 기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니? l 아나운서 감은 아닌데, 반장감이야!

완독률 높은 브런치 북이 되어보고자 목차에 적어본 내용의 선정 제목들이 조금 유치하고 자극적이다. 독자들의 눈길을 끌어보기 위해 마케팅적인 요소를 섞어가면서 나의 최고의 결과만 적어보니 내가 무슨 대단히 성공만 해온 사람같이 그려져서 말이다. 그것보다도 '수치'와 '결과'를 통한 나의 역사가 에세이를 끝까지 완독 하는데 호기심을 더해 줄 것 같아서 저런 허세미 넘치는 목차가 나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공부와 결과를 아직도 소중하게 대하고 또 그 교육 카르텔이 더 넓은 사회로의 진출로 이어지게 하는데 서로가 이끌어주는 특유의 정이 넘치는 사회 같다.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러한 순수하게 학문을 좋아하는 기본적인 정서가 때로는 답답하기도 하지만, 아직은 좋다.


 저렇게 웅장한 스토리를 가진 내가, 가정에서에서의 사랑은 어떻게 받고 자랐을까? 나는 어린 시절 친할아버지, 친할머니를 일찍 여인 아버지를 둔 개인적인 가족사와 유년시절 기러기 아빠를 내조하며 우리를 홀로 양육해야 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비교적 가족들의 빈자리가 큰 가정에서 공부와 학문이라는 분야에 집중을 하며 살았다. 그리고 이러한 가정사 이외에도 사람을 좋아하는 특유의 인정 많은 성격으로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지지와 응원을 많이 받으면서 타인과의 관계를 중요시하게 생각하면서 성장하였다. 그 시발점이 되는 기관은 학교보다도 더 기초적인 '유치원'이라는 기관을 다니면서이다. 아니, 너는 유치원 시절에 뭐했는지가 기억나니?라고 물으실 텐데 몇 개의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난다. 잊어야 할 일들도 기억하고, 망각의 기능보다 저장의 기억이 더 탁월한 사람인 듯싶다.


 유치원 시절의 기억은 사진과 몇 개의 떠오르는 사건들과 장면들을 바탕으로 기록한다. 이름은 꿈나라 유치원이다. 원장 선생님께서 아름다우셨던 이 꿈나라 유치원에는 학교에 들어가야 할 나이 8세 이전, 6세~7세 2년 정도 다녔다. 유치원은 걸어서 10분, 차 타고 5분 정도에 걸리는 거리였는데 부모님이 아침에 바쁘시거나 차를 놓치면 혼자 걸어간 기억도 난다. 그 길에서 내가 예쁜 원피스를 입고 걸어가면, 동네 어르신들은 노랑 병아리를 대하듯이 귀엽다고 많이 예뻐해 주셨다. 그런데 이 원장 선생님께서 나를 보시면 항상 "반장감"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저게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런데 초등학교를 들어가니 진짜 반장이 되었다. 원장 선생님의 예지력이 무섭고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선생님들의 눈에 들며 유치부 시절부터 야무진 리더로서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나 보다.


유치원의 시절에는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 상을 받고, 많은 유치부 학생들이 그렇듯이 웅변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또 유치원에서 실시하는 운동회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친구들과 운동회에 꾸준하게 참석하기도 하고, 재롱잔치에서는 발레를 준비하여 율동 분야에서도 그 두각을 드러냈다. 평소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기다려야 할 때도 친구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으면 선생님들이 우리를 가르치시는데 힘들 수 도 있으니까 조금 조용히 기다리자고 말 많은 병아리 유치원 친구들을 조용히 시키기도 한 장본인이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으른美 (어른의 모습)"풍기면서 자라온 나는 유치원 생활 최대의 고비를 맡게 된다.


◎왜 송별사를 쟤가 하는 건데? 나는 인정할 수가 없어!

그러던 중, 유치원의 한 중요하고 규모가 큰 이벤트에서 송사(송별사)를 진행할 사람이 필요해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근데 원장 선생님과 유치원 담임선생님이 자꾸 나를 쳐다본다. 그러더니 이 송사 대사를 주면서 그 행사에서 이걸 너가 읽어야 하니 연습해오라고 재촉을 하셨다. 이게 그 이벤트 바로 직전에 소문이 나서, 왜 송사를 저 아이가 하는 거냐? 는 어떤 학부모의 의견이 제기되었다. 그러니까 자기 아이가 해야 한다는 식의 의견이었던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왜 해야 되는지도 모른 채 원장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이 나를 선택하셔서 한 것뿐인데 또 저런 식으로 상황은 와전되고 안 좋게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누군가의 저런 비판을 조금 많이 아프게 느끼는데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 상황의 걸림돌은 이후 성장 과정에서도 몇 번 마주하게 된다. (초등학교 때의 나에 대한 비난 안티카페, 중학교 시절의 기싸움 해프닝 등등의 다양한 상처들이다.)


그래서 송별사를 하는 사람이 바뀌었냐고? 그대로 강행되었다. 나는 어린 기억에도 그 마이크를 잡고 있는 내게 원장 선생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이 아직도 생각난다. "더 슬프게, 더 더!" (원장 선생님이 송별사를 고할 때는 원래 슬픈 감정이 들어가야 한다고 나를 정말 안 아프게 살짝 꼬집으신..ㅋㅋ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또 선생님께서 나보고 슬픈 목소리로 읽어달라고 부탁을 많이 많이 하셨다^^) 그래서, 그 중요하고 규모가 큰 이벤트의 송사를 했다. 마이크를 들고 한복을 입고 안녕을 고했다. 노랑반 대표의 송사를 진행한 유치원의 사회자가 된 것이다. 아니 너무 어린 나이에 꿈을 이룬 것인가? ^^ 그것도 저런 태클을 받고 나니까 더 잘하려고 노력을 두배로 들였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선생님들과 우리들의 통학 길을 책임져주시는 삼촌 기사분들은 우리들을 많이 귀여워해 주시고 예뻐해 주셨다.


◎노랑반 사회자, 어린 유치원 동생을 잘 리드하라는 특명을 받다.

 그렇게 유치원 시절의 또 다른 노력 비범밥 경험은 다음의 사례이다. 나는 원래 집안에서는 많은 사촌언니들 속에서 '막내'로 성장했고, 성격은 다분히 내성적이고 무뚝뚝한 성격이었다. 그리고 말이 없는 나에게 어른들은 새침하다는 표현으로 나의 성격을 꼬집어주곤 했다. 그렇게 집에서는 내성적인 말없는 '막둥이'로 자란 내가 이 사회에만 나오면 리더라는 이름으로 사회의 최전선? 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맨 앞라인에 서게 되는 특수한 운명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가정에서와는 다른 성격의 모습인 적극적인 사회성으로 친구들을 이끌고 리더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같은 동네에서 이렇게 유치원 생활을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동네의 지인분이 그리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동생인 '경'이라는 친구를 소개해주었다. 그리고 친구가 유치원 생활이 낯설 수도 있으니까 언니인 내게 그 친구를 맡기면서 잘 챙겨달라는 부탁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어른들의 부탁처럼 그때는 너무 어려서 잘 챙겼는지, 그 친구에게 뭘 적극적으로 해주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그만그만한 병아리 유치원 친구들이 챙기고 이끌고의 개념이나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른들은 나에게 종종 그런 부탁을 자주 요청하였다.


 그래서 그 부탁을 특별하게 받은 동생분에게 먼저 다가가고 유치원 생활을 함께 하려고 했던 노력이 기억난다. 보조개가 귀여운 친구였는데 지금은 잘 지내고 있는지 문득 보고 싶어 지는 중이다. 그렇게 나는 친구들과 동생들에게 먼저 다가가야 하는 상황에 많은 기간 노출되어 있었다. 이러한 환경의 지속됨이 아마 맨날 높은 목표를 책정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달려온 원인 중에 하나였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하나의 큰 축복이자 나의 눈을 63 빌딩처럼 한없이 높아지게만 한, 금기된 선악과였다는 생각도 든다. 적당한 선에서 만족을 하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저렇게 맨 앞라인에 서지 않아도 되는 또 다른 삶의 기준과 색깔이 있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런데, 너의 꿈을 이루어줄 또 다른 누군가를 생각해보았니? l 다른 형태,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도…

 최근 나에게 가장 큰 기쁜 소식은, 귀여운 조카가 생겼다는 소식이다. 그 조카 '뚜오'가 돌잔치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나의 꿈을 대신 이루어줄 우리 집의 다음 타자인가? 이 글을 쓰면서 나의 과거의 경험이 현재에 최대한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논의를 확장시켜본다. 우리는 보통 꿈과 목표를 설정할 때 그것을 다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이루지 못했을 때 실패자, 낙오자, 쓸모없는 사람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런데 꼭 그렇게 부정적인 명사로 자신의 노력을 한정시킬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루지 못한 꿈과 목표는 '~와 같은'이라는 형용사로도 이룰 수 있고 인생의 다른 시점, 다른 공간에서 그 꿈이 불현듯 이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의 다음 세대가 이룰 수도 있는 꿈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차라리 미완의 목표라고 생각하며, 우리들의 이루지 못한 꿈과 목표를 향해서 건강한 안녕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열정의 꿈길을 가다가 너무 이룬 것이 없어도 크게 좌절하지 말고 현실로 돌아와 현실에서는 큰 성공을 이루는 멋진 사람이 되는 것도 하나의 꿈일 수가 있다. (생계유지만큼 필수적인 꿈도 없다..) 물론, 나와는 다르게 큰 성공과 결과를 이루어서 꿈과 목표를 이루면 상관이 없다. 근데 그게 아닐 경우라면 좌절이 되고 실망이 될 테니까, 너무 크게 좌절하지는 말라는 소리다. 인생이라는 장기 레이스에서 또 다른 식의 형태로 그 꿈이 성취가 되고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시점이 있다고 자신을 위로해주자. 그리고 살다 보면 새롭게 다가오는 행복하고 실현 가능한 꿈들도 많아진다. 그러면 유치원 시절로 돌아가 노랑반 대표의 사회자가 되어 미리 꿈을 이룬 나의 추억이 기록 된 <생긴건 평범밥, 노력은 비범밥>의 2화를 마치겠다. :)


*참고 논문: 「아렌트의 노동 개념」-김선욱, 한국 노동연구원, 2006.


#긴글을읽어주셔서감사드립니다 #노동과직업의선택 #우리들에게영향을미치는것은 #현대의노동자 #꿈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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