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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퐁 Nov 18. 2023

어떤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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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어느 순간부턴가 '사는 게 지겨워'나 '자살하고 싶다'는 등의 말을 입에 달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 시도해 온 모든 것들이 실패로 귀결되고 나서부터 온종일 누워 있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도 찾지 않았다. 7년째 내원 중인 병원에는 꼬박꼬박 나갔지만, 그게 다였다. 내 방은 치우지 않은 쓰레기로 가득 차 있고, 어질러진 싱크대 위로 날파리들이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취업을 위해 준비해 온 활동들을 하나씩 정리 중이다. 속해 있던 커뮤니티를 하나씩 탈퇴하면서 나는 이번 시즌의 종영을 준비했다. 다음 시즌은 아마 없을 것이고 난 그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잊힐 것이다. 사는 동안 날 꾸준히 괴롭혀왔던 이 병과도, 원치 않게 나를 세상으로 내보낸 가족들과도 모두 작별할 것이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아무 소식도 전하지 않은 채로.

갑자기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더는 FOMO를 유발하는 사회, 연이은 탈락, 지긋지긋한 빈곤, 다이어트 압박과 나를 수치스럽게 여기는 가족들을 견디지 않아도 되니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귀촌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럼 아무도 날 찾지 않을 것이다. 귀촌이란 단어를 곱씹 미친 듯이 웃었다. 시골이 싫어서 뛰쳐나온 주제에 귀촌이라니.

아니, 사실은 귀촌하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귀촌할 거라고 한 말도 전부 진심이었다. 성난 도시로부터 멀리 떠나고 싶었으니까. 서울 너머에도 내 자리가 있을 거라 믿고 싶었으니까. 이왕이면 바다가 보이는 곳에 정착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죽을 기력조차 없을 때의 이야기였다. 무기력하게 전자책을 읽으며 시간을 죽이다가 기력이 돌아온 게 문제라면 문제일까? 머릿속에서 자살에 대한 퍼즐 조각들이 빠른 속도로 맞춰지기 시작했다. 그래!

우울증은 순식간에 내 생의 다음 시즌을 백지화시켰다. 아니, 정확히는 다음 시즌의 시나리오를 교묘하게 완전범죄를 위한 알리바이로 바꿔버렸다. 우울증 환자가 자살하는 데 있어 필요한 건 몸을 가뿐히 일으킬 힘과 헤어질 결심뿐이다. 문득 드라마 대사 하나가 떠올랐다. 연진아, 나 지금 되게 신나. 다음 시즌 계획을 뒤엎고 나서야 비로소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바뀐 계획을 실행하는 것밖에 없으니까.






"너,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지 아니? 무계획이야. 무계획."

- 영화 <기생충> 중에서.



돌이켜 보면 <기생충>의 기택(송강호 분) 가족처럼 나도 수많은 계획을 세웠고, 대부분은 실패했다. 첫 번째 자살 시도 역시 그랬다. 죽기 직전에 SNS에 유서를 올렸던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달까. 그 덕에 황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으로 주변인들을 통해 글쓰기에 재능이 있단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책 출간을 위해 브런치 공모전에 도전했지만, 2회 연속 고배를 마셨다. 나는 내 재능을 과신했지만, 출간 계획이 좌절되고 나서야 책을 만드는 데 재능이 없음을 깨달았다. 이후 되지 않는 길에 미련을 버리고 내일배움카드를 발급해 코딩학원에 등록했다.

올해, 그러니까 2023년이 가기 전에 웹 개발자로 취업하겠다는 계획 역시 잘 되지 않았다. 복병은 구직에 매진하느라 등한시했던 정신 건강이었다. 한번 도지기 시작한 우울증은 순식간에 내 삶의 의욕을 모두 앗아갔다. 모든 것들이 의미가 없어졌다. 두 달가량 공부도, 운동도 하지 않은 채 싱글 침대에 누워 있다. 뭘 해도 재미가 없었다. 나는 누워서 관성적으로 여러 SNS를 켰다 끄면서 배터리를 낭비했다.

그러다 문득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내가 몇 년 전에 남긴 글을 보게 되었다. 과거에 작성된 포스트가 오늘 날짜와 일치하면 타임라인에 띄우는 '과거의 오늘'이란 기능 때문인데, 그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던 내 20대의 흔적을 발견했다. 평소 같으면 '으' 하고 스크롤을 내렸을 테지만, 어찌나 무료했는지 6년 전에 작성한 글까지 찾아봤다.

과거의 흔적을 따라가면서 발견한 나는 공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비정규직 처우 문제에 대한 생각도 남기고, 최저임금으로 사는 게 힘들어 부모에게 기대기도 했다. 부모의 이해를 받을 수 없다는 걸 깨닫자마자 집을 떠나기도 했고, 보다 나은 노동 환경을 찾아 상경도 했다. 상경하자마자 창궐한 코로나19로 인해 좌절도 겪었지만, 결코 생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근데 보고 있으면 오글거리긴 하다.)

스크롤을 내리면서 그가 남긴 투쟁담을 의미 없는 흑역사로 치부해 왔던 게 부끄러워졌다. 지금의 나는 그가 보낸 20대를 그저 바보 같은 시간낭비로 치부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작고 초라해질 때마다 두고두고 그를 원망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왜 너는 그 시간들을 알차게 활용하지 못해서 이 나이 먹도록 내가 고생하게 만들어?"
"네가 ADHD를 미리 발견하고 녹음을 미루지 않았으면 앨범을 내고도 남지 않았을까?"

이렇다 할 학벌도 친구도 커뮤니티도 없이 부러진 다리에 스스로 부목을 대고 붕대를 감아 절뚝거리며 서울까지 온 게 당시 그에게는 최선이었다는 걸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그에게 부모처럼 굴 때가 많았다. 하고 싶은 음악을 그만두게 했고, 유약하고 남자답지 못한 모습과 폭식으로 불어난 몸을 혐오했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상태임에도 거듭 경쟁에 노출시키고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못할 때마다 질책했다. 열심히 하지 않아서 네가 지금 그 모양 그 꼴이라고.

병상에 누워 그가 남긴 흔적들을 되새겨본다. 고립과 좌절, 자기혐오, 애매한 재능, 경제적 부담, 불안정한 노동 현장, 정신과 질환, 스트레스, 어른들에 대한 배신감, 분노, 대인 관계 등... 혼자서 수십 가지 문제를 끌어안고 이 험한 세상을 버텨온 그를 질책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가 고통을 무릅쓰고 20대를 버텼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건데.

페이스북에 덕지덕지 남긴 흔적들을 정리하며 한 가지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평소 계획을 잘 안 하고 잘 뒤엎는 나지만, 이것만큼은 꼭 이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글을 쓰게 된 계기도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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