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어 꿈을 꾸는 문어
꿈속에서는
무엇이든지 될 수 있어
나는 문어 잠을 자는 문어
잠에 드는 순간
여행이 시작되는 거야
높은 산에 올라가면
나는 초록색 문어
장미꽃 밭 숨어들면
나는 빨간색 문어
횡단보도 건너가면
나는 줄무늬 문어
밤하늘을 날아가면 나는
오색 찬란한
문어가 되는 거야 아아아
야 아아아 아아아
깊은 바닷속은 너무 외로워
춥고 어둡고 차갑고
때로는 무섭기도 해 에에에
야 아아아 아아
그래서 나는 매일 꿈을 꿔
이곳은 참 우울해
단풍놀이 구경 가면
나는 노란색 문어
커피 한잔 마셔주면
나는 진갈색 문어
주근깨의 꼬마와 놀면
나는 점박이 문어
밤하늘을 날아가면 나는
오색 찬란한
문어가 되는 거야 아아아
야 아아아 아아아
깊은 바닷속은 너무 외로워
춥고 어둡고 차갑고
때로는 무섭기도 해 에에에
야 아아아 아아
그래서 나는 매일 꿈을 꿔
이곳은
야 아아아 아아
야 아아아 아아아
깊은 바닷속은 너무 외로워
춥고 어둡고 차갑고
때로는 무섭기도 해 에에에
야 아아아 아아
그래서 나는 매일 꿈을 꿔
이곳은 참 우울해
정하는 자신을 '문어'라고 부르기 시작한 순간부터, 꿈이란 건 현실의 반대편에 존재한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여덟 개의 팔을 갖고 있다면 어디든 닿을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정작 그녀의 팔은 누구에게도, 어디에도 닿지 않았다. 바닷속에서 태어난 존재처럼, 차갑고 어두운 세계에 가라앉은 채 꿈을 꾼다.
그녀는 늘 환한 표정으로 사람들 사이를 떠돌았다. 단풍놀이를 간 날엔 노란색 셔츠를 입고, 카페에선 진갈색의 머그잔을 들었다. 주근깨 있는 꼬마 손님의 말에 웃으며 응대하던 날엔, 자신이 점박이 문어가 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는 스스로의 색을 바꿔가며, 그날그날의 역할을 입고 살아갔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이 끝나고 혼자 남겨진 순간, 언제나 제자리였다. 깊고 차가운 현실이라는 바닷속.
무대에 오르면 달랐다. 그곳에선 색이 아닌 소리로 존재할 수 있었다. 단 한 사람만이 듣더라도, 단 한 구절이라도 진심이 닿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런 무대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밴드는 해체되었고, 오디션은 탈락했고, 작업실은 집세가 밀려 어둠이 가득했다. 그녀의 꿈은 스포트라이트 없는 무대 위에서 혼잣말처럼 울려 퍼지는 노래가 되었다.
어느 날 밤, 정하는 우연히 ‘문어의 꿈’을 들었다. 처음엔 재밌고 귀여운 노래라고 생각했지만, 후렴이 반복될수록 웃음이 굳어졌다. "깊은 바닷속은 너무 외로워, 춥고 어둡고 차갑고 때로는 무섭기도 해. 그래서 나는 매일 꿈을 꿔."
그 문장은 마치 정하의 일기장이었다. 밝고 다채로운 꿈을 꾸는 이유는, 지금 이곳이 너무나 우울하기 때문이었다. 꿈은 도피였고, 도피는 생존이었다. 꿈속에서 정하는 초록색이 되기도 하고, 오색 찬란한 무늬로 하늘을 날기도 했다. 그러나 꿈이 끝나면 다시 차가운 바다였다. 그 사실이 너무 아쉬웠다. 너무나 아팠다.
그날 밤, 정하는 거울 앞에 앉아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왜 아직도 이걸 하고 있는 걸까." 한참을 고민하다, 천천히 대답했다. "그게 내가 살아있는 방법이니까."
그녀는 녹음기를 꺼내 노래를 불렀다. 조용히, 낮은 목소리로. 제목은 ‘문어의 노래’. 그 노래에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희망보다, 어떤 꿈도 완전히 닿지 못한다는 슬픔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지금 이 노래는 누구에게 들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문어인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에.
안예은의 '문어의 꿈'을 처음 들었을 땐, 아기자기하고 상상력 넘치는 동화 같았다. 노란색 문어, 줄무늬 문어, 오색찬란한 문어—어린 마음으로 그려낸 즐거운 꿈의 조각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꾸만 노래의 후반부가 마음에 남았다. “깊은 바닷속은 너무 외로워.”
문어는 꿈속에서 그 무언가가 되도, 결국 바다로 돌아간다. 그곳은 춥고, 어둡고, 무섭다. 그래서 문어는 꿈을 꾼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상상 속의 문어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이 노래를 듣고서, 매일 꾸는 꿈이 사실은 매일을 버티기 위한 것이라는 걸 알았다.
이 단편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글이다. 자신을 바꾸고 웃으며 살아가지만, 돌아가는 현실은 여전히 차갑고 무거운 사람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꿈꾸는 이들에게 보내는 이야기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의 문어이고, 누군가는 여전히 꿈을 통해 삶을 버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