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물 모아

우리 사이에선 아무 일도 없었지만..

by 민초매니아
[ 서지원의 유작 "내 눈물 모아"]

창 밖으로 하나 둘씩 별빛이 꺼질 때 쯤이면
하늘에 편지를 써
날 떠나 다른 사람에게 갔던 너를 잊을 수 없으니
내 눈물 모아서 하늘에
너의 사랑이 아니라도 네가 나를 찾으면,
너의 곁에 키를 낮춰 눕겠다고
잊혀지지 않으므로 널 그저 사랑하겠다고
그대여, 난 기다릴 거예요
내 눈물의 편지 하늘에 닿으면
언젠가 그대 돌아오겠죠 내게로
난 믿을 거예요, 눈물 모아
너의 사랑이 아니라도 네가 나를 찾으면
너의 곁에 키를 낮춰 눕겠다고
잊혀지지 않으므로 널 그저 사랑하겠다고
그대여, 난 기다릴 거예요
내 눈물의 편지 하늘에 닿으면
언젠가 그대 돌아오겠죠 내게로
그대여, 난 기다릴 거예요
내 눈물의 편지 하늘에 닿으면
언젠가 그대 돌아오겠죠 내게로
난 믿을 거예요, 눈물 모아


우리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지만


서연을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2학년 여름이었다.
자판기 앞에서 캔커피를 두 개나 들고 낑낑대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의 웃음소리를 그렇게 오래 마음에 담게 될 줄은 몰랐다.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했고, 함께 웃는 게 자연스러웠고, 어색함이라는 단어는 우리 사이에 존재하지 않았다. 시험 끝나면 함께 치킨을 먹고, 집 앞까지 데려다주면 “너는 이제 집에 또 어떻게 가냐”고 투덜대고, 생일엔 서툰 손글씨로 쓴 엽서를 주고받았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사귀지 않았지만 그 어떤 연인보다 가까웠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서연이 전화를 걸어왔다.
"나 지금 회사에서 나왔어. 그냥 아무 말도 하기 싫어."
목소리에 기운이 없었다. 나는 말하지도 않고 코트를 챙겼다. 서연이 있는 곳까지 지하철을 세 번 갈아탔고, 그녀가 앉아 있는 카페에 도착했을 땐 이미 커피는 다 식어 있었다.

"누구 하나 날 이해해주지 않아,"
서연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맞은편에 조용히 앉았다. 그리고 커피를 새로 주문하고, 계피를 싫어하던 걸 기억해 시럽은 넣지 않았다. 그녀는 그걸 보고 조용히 웃었다.

"너는… 진짜 이상하다. 늘 말 안 하고, 그냥 옆에 있어줘."

나는 그 말이 좋았다. 그리고 동시에 아팠다.


그날 이후, 나는 점점 더 내 마음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이건 단순한 우정이 아니라는 걸.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이면 내가 더 숨이 막히고, 그녀가 웃으면 내가 더 안도하게 되는 감정.

어쩌면, 오래전부터 사랑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결심했다. 그녀에게 고백하자. 이 마음을, 더는 감추지 말자.


하지만 타이밍은 항상 비껴간다.

그녀는 그즈음 어떤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망설임과 설렘이 섞인 얼굴로 말했다.
"나… 요즘 어떤 사람이랑 좀 연락하고 있어."

나는 들뜬 그 표정을 보며 말을 삼켰다.

입안에서 맴돌던 고백은 그녀의 미소 앞에서 조용히 녹아내렸다.

“그래? 잘됐네. 이번엔 네가 좀 기대도 될 사람이면 좋겠다.”

그 말을 뱉고 나는 속으로 한 마디를 더 했다.

"그게 내가 아니더라도."


그뒤로도 그녀는 힘들 때마다 나를 불렀다.
아무렇지 않게. “야, 한강이나 걷자.”
“오늘 너무 답답해. 아무 말 말고 그냥 좀 같이 있어줘.”

나는 기꺼이 갔다.

그녀의 세상이 흔들릴 때 잠시라도 머물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그게 단지 친구라는 이름일지라도 그 곁을 지키고 싶었다.

사랑을 말하지 않는 대신 나는 기다림을 선택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하지만 나는 안다.
말하는 순간 모든 것이 변할 수도 있다는 걸.

우정도, 지금의 편안함도, 그녀가 내게 보내는 작은 기대조차도 사라질 수 있다는 걸.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그녀가 힘들어할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되는 걸 택했다.


그리고 밤이면, 하늘을 향해 조용히 편지를 쓴다.

"내가 널 사랑한다는 걸 말할 수는 없지만,
넌 알고 있었으면 좋겠어."

"힘들 땐 언제든 불러. 내가 달려갈게.
그게 사랑이 아니어도 괜찮아."

"그저, 네가 울 때 내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 마음 하나로 나는 살아."

그녀는 아마 평생 모를지도 모른다.

내가 그렇게 수없이 하늘에 써 내려간 편지 속에서
언제나 그녀의 이름을 첫 줄에 적었다는 걸.

하지만 괜찮다. 그녀의 세상이 평온하다면,

내 자리는 어디든 좋다.

사랑이란,
꼭 말해야만 존재하는 감정은 아니니까.


작가의 말

이야기하지 않은 사랑은 끝난 사랑보다 더 오래 남습니다.

우정이라는 이름 아래 숨죽이며 함께한 수많은 순간,
웃는 얼굴을 보며 더 아파졌던 날들,
그리고 고백 대신
“괜찮아, 나는 너만 행복하면 돼”라고 혼잣말하던 마음.

《내 눈물 모아》는 그런 사랑을 이야기 하는 듯 합니다.
그녀가 힘들 때 달려가는 사람이 되겠다고, 그 곁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며 자신의 감정을 조용히 눌러 담은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사랑은 목소리가 없지만,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지금도 누군가에게 말할 수 없는 마음을 품고 있는 당신에게,
당신의 그 사랑이 존재하지 않은 것이 아님을
조용히 알려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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