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그건.

그 기억이 가슴을 아리게 하는 건, 그 감정이 ....

by 민초매니아
[최용준의 아마도 그건]

아마도 그건 사랑이었을 거야 희미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이제야 그 마음을 알아 버렸네 그대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을
아마도 그건 사랑이었을 거야 돌아보면 아쉬운 그날들이
자꾸만 아픔으로 내게 찾아와 떨리는 가슴 나를 슬프게 하네
차가운 내 마음에 남은 너의 뒷모습 열린 문틈으로 너는 내게 다가올 것 같아
한참을 멍하니 문만 바라보다 아침햇살에 눈을 뜨고 말았네
사랑 그것은 엇갈린 너와 나의 시간들 스산한 바람처럼 지나쳐 갔네
사랑 그것은 알 수 없는 너의 그리움 남아있는 나의 깊은 미련들
차가운 내 마음에 남은 너의 뒷모습 열린 문틈으로 너는 내게 다가올 것 같아
한참을 멍하니 문만 바라보다 아침햇살에 눈을 뜨고 말았네
사랑 그것은 엇갈린 너와 나의 시간들 스산한 바람처럼 지나쳐 갔네
사랑 그것은 알 수 없는 너의 그리움 남아있는 나의 깊은 미련들


시작되지 못한 연애


하윤은 요즘도 가끔 그 카페에 들른다.
창가 두 번째 자리, 바깥 골목이 보이는 곳.
그 자리는 이상하게 늘 비어 있었고, 그는 무심히 그 자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


“우리 여기 진짜 자주 오는 거 알지?”
수경이 웃으며 말하던 날이 있었다.
그 말에 그는 웃었지만, 속으론 ‘자주’라는 단어가 얼마나 애매한지 떠올렸다.

그들은 자주 봤고, 자주 웃었고, 자주 말했지만
한 번도 정확하게 그들의 관계를 정의한 적이 없었다.

친구 이상의 어떤 감정, 연인 이하의 어정쩡한 거리.
이름 없는 감정은 종종 ‘편안함’이라는 이름을 가장하고 다가왔고,
하윤은 그게 사랑이려니 생각했다.

수경은 처음부터 선을 잘 그었다.
손을 내밀 듯하다가도 끝내 닿지 않는 거리.
그녀는 혼자 있는 걸 잘했고, 감정 표현은 신중했고,
어떤 날엔 그가 메시지를 보내지 않으면 하루 종일 연락이 없기도 했다.


“나한테 기대도 돼.”
그가 어느 날 조심스럽게 말했을 때,
수경은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기댈 만큼 가까운 사람이었어?”

그 말에 하윤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자신 역시 그때는 확신이 없었다.
그저 매일 연락하고, 주말마다 함께 영화를 보고,
그녀가 아프다고 하면 택시를 타고 달려가는 것이
사랑의 방식이라 믿었다.


하지만 수경에게는 ‘표현되지 않은 감정’은 감정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뭐야?”
그는 어느 밤, 카페 앞에서 처음 물었다. 수경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말했다.
“좋은 사람이잖아, 우리는.”
말끝이 흐려졌다.
하지만 하윤은 거기서 멈췄다.
‘좋은 사람’이라는 말 안에 담긴 뜻을 그는 그날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그 말이 거절이 아니길 바랐다. 그리고 그 바람만으로 관계를 이어갔다.

가을이 끝나갈 무렵, 수경은 멀어졌다. 연락이 줄었고, 만남이 뜸해졌다.
하윤은 눈치를 챘지만 묻지 않았다. 어차피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으니, 헤어질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더 애매해졌고, 그녀는 더 멀어졌다.


그러다 어느 날, 수경이 보낸 짧은 메시지.

“이제는 조금 거리를 두자.”

정말 그게 다였다.
사귀지 않았기에, 이별도 없었다.

잔인한 건,
미련은 고스란히 남았다는 거였다.


그날 이후, 그 카페도, 그 자리도, 하윤은 쉽게 찾지 못했다.
마주 앉았던 커피잔, 그녀가 웃던 창가, 모든 게 쓸쓸하게 느껴졌다.

몇 해가 지났다. 하윤은 잘 지냈다.
연애도 했고, 직장도 다녔고, 나름대로 바쁘게 살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느 겨울밤, 첫눈이 내리는 날이면 문득 그녀가 떠올랐다.

특히 그 계절의 바람이 불어올 때면,
문틈으로 들어오는 찬 공기처럼
수경의 뒷모습이 머릿속에 스며들었다.


“괜찮아?”
그녀가 묻던 말투,
손을 흔들며 돌아서던 모습,
웃으며도 멀어지고 있던 그 거리.

그 모든 것이, 그의 기억 속에 잔잔히 남아 있었다.

그제야 그는 생각했다.

그때 왜 더 확실히 말하지 못했을까.
왜 단 한 번도 “좋아한다”고
“네가 나에겐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왜 아무 말 없이
그녀가 내민 ‘거리’에 순순히 물러섰을까.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역시 준비되지 않았던 것이다. 좋아했지만 책임질 용기가 없었고,
사랑을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이 가져올 무게가 두려웠다.

서로를 향했지만 서로를 감당할 자신이 없던 시절, 그들은 그냥 그렇게

사랑 비슷한 어떤 감정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와서야 그는 안다.
수경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린 건
그녀가 떠났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랑이 시작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걸.


시작되지 않은 사랑은 끝이 없어서
그리움이 더 오래 남는다.

그리고 그런 감정은,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가장 깊고 조용한 후회가 된다.

밤늦은 카페, 창밖엔 또 눈이 내린다.

하윤은 핸드폰을 꺼내
수경의 이름을 한 글자씩 입력해본다.
프로필 사진이 아직 남아 있다.
그녀는 여전히 잘 지내는 것 같다.

그는 끝내 아무 말도 보내지 못하고 다시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잠시 혼잣말처럼 중얼인다.

“…아마도, 그건…”

그리고 조용히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신다.
창밖의 눈송이들이 유리창에 닿아 사라질 때까지
그는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었다.


작가의 말


어떤 관계는 이름을 붙이지 못한 채 흐릅니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으면서도
어렴풋한 감정에 기대어 시간을 보냅니다.


《아마도 그건》이라는 노래는 그런 이름 없는 감정과,
시작되지 못한 사랑이 남긴 여운을 노래합니다.
사귄 적은 없지만, 사랑했던 사람.
말하지 않았지만, 마음 깊은 곳에 남은 사람.
그 관계는 끝날 수 없기에
더 오래 기억되고, 더 오랜 시간 아픔으로 남습니다.


이 번글은 그 감정을 천천히 따라가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왜 한 사람을 잊지 못하는지를,
그 사람과 무엇을 하지 못했는지를
말없이 되짚어보게 만듭니다.


당신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나요?
사귀지 않았지만, 사랑했던 사람.
그 사람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아리다면—

그건 아마도,
사랑이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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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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