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없는 이별

by 민초매니아
[녹색지대의 "준비없는 이별"]
지난 시간 내 곁에서 머물러
행복했던 시간들이
고맙다고 다시 또 살게 되도
당신을 만나겠다고
아, 그 말 해야 할 텐데
떠나는 그대라도
편하게 보내줘야 할 텐데
눈을 감아 지워질 수 있다면
잠이 들면 그만인데
보고플 땐 어떻해야 하는지
오는 밤이 두려워져
아, 그댈 보낼 오늘이
수월할 수 있도록
미운 기억을 주지 그랬어
하루만, 오늘 더 하루만
준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내게 줘
안돼, 지금은 이대로 떠나는 걸
그냥 볼 수는 없어
차라리 나 (차라리 나)
기다리라 말을 해
아무것도 미안해하지 마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나는 괜찮아
그래도 사는 동안
함께 나눈 추억이 있잖아
다행이야, 감사할게
아, 그댈 보낼 오늘이
수월할 수 있도록
미운 기억을 주지 그랬어
하루만, 오늘 더 하루만
준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내게 줘
안돼, 지금은 이대로 떠나는 걸
그냥 볼 수는 없어
차라리 나 (차라리 나)
기다리라 말을 해
영원토록
바라볼 수 있도록


병실은 조용했다. 낮게 울리는 모니터 소리만이 이곳이 아직 현실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내의 손은 식어갔고, 나는 여전히 그 손을 잡고 있었다. 깨어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의식은 없지만 고통은 여전하다고 했다. 심장이 멈추는 순간까지, 그 작고 단단한 몸이 계속해서 싸우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고통을 더 줄 수 없었다. 나와 30년을 함께한 사람에게, 이제는 보내야 할 시간이 왔다.

우린 대학 2학년 봄에 만났다. 캠퍼스 잔디밭에서, 그녀는 종이책을 읽고 있었다. 햇살이 유난히 따뜻했던 날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는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은 카페에 가고, 같은 방향으로 미래를 걸어갔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분유를 데우다 손을 데기도 했고, 열나는 아이를 안고 응급실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다보니, 어느샌가 그 아이는 군대를 갔고, 졸업을 했고, 집을 나가 독립했다.

우리는 그때부터 다시 둘만의 여행을 시작했다. 속초에 가서 회를 먹고, 제주 바다를 보며 웃었다. 평범했고, 조용했고, 그래서 더 소중했던 날들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일상은 오래도록 계속될 줄 알았다.


그녀가 처음 쓰러졌을 때, 의사는 단순한 이상 증상일 수도 있다고 했다. 정밀검사에서 암이 나왔지만, 초기에 가깝고 절제 수술로 충분히 회복 가능하다고 했다. 나도 그녀도 낙관했다. 수술 날 아침, 그녀는 평소보다 더 말이 없었다. 긴장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병실을 나서기 전, 그녀가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혹시라도 내가 의식 없이 오래 누워 있게 되면, 연명치료는 하지 말아줘. 나 그거 싫어하는 거 알잖아."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부정하고 있었다. 수술 전에 그녀는 직접 DNR 문서에 서명했다. 담당 간호사가 가져온 동의서에 그녀는 망설임 없이 사인을 남겼고, 그 장면을 보는 내 손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하겠다는 뜻이었겠지만, 나는 그 문서를 받아들이기 싫었다. 나도 모르게 의사를 붙잡고 말했다.


의사는 조심스레 고개를 저었고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날 밤, 그녀는 다시는 눈을 뜨지 못했다.


오늘은 금요일 밤이다. 보통 이 시간엔 우리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 TV를 봤다. 별다른 대화도 없이, 그녀는 내 손등을 톡톡 건드리며 "이거 봐봐, 웃기다." 하고 웃었다. 이제는 그 웃음이 들리지 않는다.

"당신."

나는 조용히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당신은 나의 봄이었고, 여름이었고, 가을이었고, 겨울이었어."

눈물은 흘러내릴 준비를 마친 채 오래 전부터 나를 조여오고 있었다. "하루만, 오늘 하루만 더 있다가 가면 안 돼?"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웃으며 말했다. "고생했어. 이제 그만, 편하게 자도 돼."

그녀의 심전도 곡선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자, 그녀의 슬리퍼가 그 자리에 있었다. 똑같은 자리, 똑같은 각도. 침대 옆 탁자엔 그녀가 읽던 책이 그대로였다. 책갈피가 꽂힌 페이지를 펼치고, 나는 침대에 앉았다.

"당신."


내일 아침, 눈을 뜨면 이 모든 게 꿈이었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별은 갑자기 찾아오고, 누구도 준비되지 못한 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그리고 그 준비 없는 이별을 온몸으로 끌어안은 사람만이,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나는 또 하루를 살아낸다. 그녀의 기억을 안고.



작가의 말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건, 삶의 한 축을 잃는 것과 같다. 특히 그 이별이 예고 없이 찾아올 때, 남겨진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스스로를 설득하며 하루하루를 견뎌야 한다. 이 이야기의 남편처럼 말이다.

우리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그런 일상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던 시간들이 얼마나 기적 같았는지를, 결국엔 이별을 앞두고서야 깨닫곤 한다. 아내가 남긴 마지막 결정과, 그것을 끝내 붙잡고 싶은 남편의 내면은 사랑과 존중, 그리고 절망의 복잡한 감정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다.

이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의 '그때'가 지금 누군가의 '오늘'이 되기를 바란다. 아직 곁에 있는 사람에게, 지금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기를. 그리고 언젠가 준비 없는 이별이 오더라도, 후회 없이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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