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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Mar 30. 2022

'죽을 만큼 힘들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살아있어서다


영화 '위플래쉬'를 아는가? 많은 사람들이 인생 영화로 꼽는 이 영화는, 주인공인 '앤드류'의 스승인 '플레쳐'의 혹독한 교육방식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이고, 그것을 뛰어넘어야 비로소 일류가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플레쳐는 앤드류를 아주 엄하게 교육시킨다. 폭언은 기본이며, 자신의 방식대로 연주하지 않으면 손에서 피가 나든 말든 상관없이 될 때까지 연습하게 한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든 생각은 '세상에 저런 미친 사람이 있나'였다. 그런데 요즘 이런 내 생각이 조금 달라지게 되었다.








주변에 친한 지인들이 종종 내게 고민을 말할 때가 있다. 주제는 대부분 비슷하다. 직장에서 있었던 상사의 폭언 또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 연인에게 느끼는 서운함이나 배신감, 친구 사이에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 말이다. 이런 얘기를 듣고 나면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문제를 해결해주려는 사람과, 슬픔과 분노에 공감해주려는 사람. 나는 대부분 후자 쪽이었다.



내가 대부분의 고민들에 대해 공감을 하려고 했던 이유는, 나조차도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게 불가능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스스로도 조언의 내용처럼 행동할 수 있어야 그 말에 타당성이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도 하고, 결국 어떤 행동을 할지 선택은 자신에게 달려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감정을 달래주며 위로를 해주곤 했다.



이런 행동을 취하자 힘들 때 나에게 연락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연락을 받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건 그다지 힘들진 않았다. 하지만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 가지는,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더라도 그들은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이미 일이 다 지난 후에 나에게 연락을 해서 오늘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줄줄 읊어대는 것이었다.



가끔은 참다못해 "그럼 그 사람을 따로 만나서 진지하게 지금처럼 말해보는 건 어때?"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들의 대답은 비슷했다. "근데 그건 또 어려운 게..."라고 나에게 자신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다. 정말로 이야기를 들어야 할 사람은 정작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데 말이다.







최근 일을 하면서 실수를 한 적이 있었다. 아주 단순하고 쉬운 업무인데 여러 가지 일들을 하다 보니 깜박했는데, 하필 그 장면을 사장님이 직접 봐버린 것이다. 내가 저지른 실수가 시발점이 되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까지 미흡한 다른 부분들에 대해 30분이 넘도록 혼이 났었다.



말씀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사장님의 발소리를 들으며, 내 속에선 알 수 없는 반항심과 분노가 끓어올랐다. 혼이 났다는 것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그런 방식을 원하면 한 번 제대로 해주겠다'라는 오기가 생겨났다. 이전에는 그날 해야 할 일을 다른 직장 동료가 했다고 말하면 그 말을 믿고 넘어가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제대로 혼이 나자, 그날은 이미 일을 처리했다는 말을 들어도 직접 내 눈으로 처리가 완료된 것을 확인했다. 사장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지적할만한 게 있다면, 상사에게 보고 후 안 보이게 치워버렸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피로가 몰려왔다. 평소보다 일처리에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 것 같았다. 그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오늘 사장님이 내 실수에 대해 좋게 넘어갔다면, 내가 이렇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물론 혼이 날 때 기분이 좋진 않았다. 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평소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었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다. "그럴 수 있지, 괜찮아""다음부턴 조심하도록 해라"와 같은 말을 들었다면, 나는 이전과 비슷한 행동을 했을 것이다. 똑같은 실수를 하진 않았겠지만 지금과 같은 경각심을 가지진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폭언을 매우 싫어한다. 똑같은 말이라도 좀 더 듣기 좋게 할 수 있는 건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과 지식, 품격과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생각한다. 신체적인 접촉뿐만 아니라 말에도 폭력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가 남들에게 그런 말을 듣는 걸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나도 그런 말을 내 입에 담는 것을 아주 꺼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의 성장은 고통과 시련 속에서 이뤄진다. 평화로운 환경에서는 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에 다다르는 것이 매우 힘들다. 사람은 어떠한 계기로 전과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계기는 안정적이고 평화로울 때 발생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라. 바다에 거친 파도가 일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커다란 배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의 종착점은 행동이다. 생각이 달라지면 행동도 달라진다. 달라진 행동은 또 다른 계기를 만들어낸다. 결국 인간은 본능적으로 안정감을 찾지만,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것 외에는 상상할 수 없다. 지금 자신의 힘듦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힘들고 괴로웠던 그 시절을 추억하기도 한다. 고통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뎌지고, 한 번 경험한 고통으로 인해 우리는 그보다 좀 더 힘든 고통을 참을 수 있는 인내심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 또한 정답은 없다. 자신의 주변에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이 거의 없다면, 힘든 상황에서 "그것도 못 견디냐?"라는 말 한마디가 엄청난 타격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지인들 대부분이 "힘내라", "그건 걔가 잘못했네"라는 말을 해준다면, 오히려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필요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누가, 어떤 말을 해주느냐가 아니라 그 말을 듣고 스스로 어떻게 행동할지 정하는 것이다. 



반드시 기억하라. 나에게 조언을 하는 사람 그 누구도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위플래쉬에서 플레쳐라는 사람을 만난 후, 하고 있던 음악을 포기하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앤드류는 그것을 이겨냈다. 플레쳐의 독설이 어떤 방식으로든 앤드류에게 영향을 준 건 맞지만, 그것을 원동력 삼아 스스로의 한계를 이겨낸 건 앤드류의 행동이었다. 오늘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당신의 입장에서 힘든 일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 당신에게 한마디 말을 남기며 이 글을 마쳐보려 한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 그러니 앞으로는 좀 더 제대로 해보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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