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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Apr 21. 2022

피곤한 출근길 덕에 오히려 커피가 맛있어진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다. 심지어 하고 싶은 일을 잘할 수 있는 능력까지 내게 있다면 어떻게 될까? 출근길이 한결 가벼워지고 월요병 또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일이 재미있어서 퇴근시간이 아쉬워질 수도 있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이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일은 일이지'라며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5년 전 첫 직장을 제 발로 나와 방황하고 있던 중, 구직사이트에서 상담사를 구한다는 공고를 접하게 되었다. 첫 직장에서 심신이 매우 지쳐있던 상태였고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몰랐지만, 뭐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지원했는데 최종 합격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출근을 하게 되어 교육을 받고 본격적인 상담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잠시, 한 달이 지나자 직장은 내게 쉼터가 되었다. 2년 동안 매일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했고,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전에 다녔던 직장에 비해 받는 월급은 적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마음이 편안해졌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마냥 상대에게 맞춰주고 들어주기보단, 나만의 기준이 점차 생겨났다. 일을 통해 긍정적인 영향을 받자 출근하는 시간이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쉬는 날에도 출근해 직장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고, 대신 일을 해주기도 했다. 2년 1개월 동안 내게 일하는 시간은 힐링하는 시간이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그렇지 않다. 귀찮은 걸 싫어하는 내 성격과 달리, 꼼꼼하고 세심한 일처리가 많이 요구된다. 3개월이 지난 지금도 매번 하던 걸 잊어버리거나, 단순한 업무를 실수한 적도 있다.




잘할 수 없는 일을 한다는 건 스트레스받는 일이다. 하지만 이 일을 하면서 배우는 것도 많다. 평소 내게 부족한 부분들이 일을 할 때 요구되다 보니,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들을 조금씩 해나가고 있음을 느끼기도 한다. 운동을 할 때 안 쓰던 근육을 사용하면 처음엔 힘들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되지 않던 자세가 되거나, 더 많은 무게를 들 수 있게 된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도 그렇다. 부족한 부분은 여전히 많지만 처음보다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글쓰기'로 먹고살고 싶다는 꿈을 세운 후엔 좀 더 하기 싫은 것들을 견딜 수 있는 내성이 생긴 듯하다. 이미 나는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할 때의 기쁨도 알고 있다. 삶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도 생겼다. 하지만 당장 목표로 한 삶을 살기엔, 내가 가진 능력이 아직은 부족하다는 걸 스스로 느끼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은 잘할 수 없는 일을 하며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한 삶의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인생의 가치는 저마다 다르기 마련이다. 사람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갖기 위해 일을 하며 돈을 번다.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가 누군가에겐 별 볼일 없다고 느껴질 수 있다. 그것이 중요한가? 우리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다. 자신이 만족하지 못하는데 남들이 칭찬을 해준다고 해서 만족이 채워지진 않는다. 반대로 남들이 아무리 뭐라 해도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한 것이다. 객관적인 시선에서 자신을 볼 수 있다는 전제가 붙긴 하지만 말이다.








지금 내게 일이란 이루고픈 목표에 다가가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다. 만약 글쓰기가 나의 업이 된다면 그땐 일에 대한 개념이 달라질 것이다. 하나 지금은 내가 원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 일은 보조적인 수단일 뿐이다. 하지만 잘할 수 없는 일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의미 없다는 뜻은 아니다.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이 원하는 바가 아니더라도,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분명 존재한다. 모든 것은 스스로가 어떻게 받아들이기 나름이니까 말이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부정적인 면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두 사람의 차이는 하나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뚜렷한 무언가가 있는가' 좋아하고 몰두할만한 것이 있는 사람은 하기 싫은 무언가를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기보단, 어떻게 서든 시간을 내서 좋아하는 것을 하려고 한다. 힘든 상황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귀찮은 것을 매우 싫어하고 집에서 유튜브만 보며 3~4시간은 거뜬히 보낼 수 있는 내가, 퇴근 후 밤늦게 글을 쓸 수 있는 건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다.




당장 하고 싶은 것이 없을 수 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그것이 당신의 전부라고 속단하지 마라. 모든 에너지와 열정을 바쳐 시도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다. 열과 성을 다했다고 해서, 모두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현실이자 인생이다. 그 대신 살면서 상상조차 못 했던 무언가를 통해, 자신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성공을 할 수도 있다. 그것이 현실이자 인생이다. 성급히 판단하진 말되, 결정했다면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열과 성을 다할 수 있다면, 적어도 후회할만한 일을 만들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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