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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Apr 08. 2022

아무리 목이 말라도 바닷물은 마시면 안 돼


며칠 전 지인 한 명이 재미있는 영상이 있다며 메신저로 링크를 보내주었다. 우리가 거리를 걷다가 한 번쯤 마주쳐 본, 일명 '도를 아십니까' 단체를 다룬 영상이었다. "인상이 좋다", "안색이 안 좋아 보인다", "요즘 안 좋은 일이 있지 않냐"라는 식으로 대뜸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 말이다. 나도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길에서 몇 번 만나본 적이 있었기에 호기심을 갖고 영상을 재생했다.








영상의 주인공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여자다. 평범한 외모와 달리 행동하는 모습은 어딘가 나사 하나가 풀린 듯한 주인공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에서도 하루에 꼭 한 번씩 실수를 한다. 그녀에겐 여동생이 한 명 있다. 어떤 일이 벌어지든 고민하기보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식으로 살아가는 언니가 동생은 답답하기만 하다. 하루는 길에서 모르는 여성이 그녀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며 다가온다. 그녀는 이 과정을 통해 '도를 아십니까' 단체를 처음 접하게 되고, 처음으로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단체 내부엔 나름의 계급이 있었고, 그녀 또한 이곳에 속하게 되며 권력을 맛보게 된다. 권력이라 부르기엔 아주 작은 것이었지만, 그것은 그녀에게 새로운 경험이었고 달콤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더 높은 계급으로 올라가기 위해 포교를 하고 대출까지 써가며 돈을 갖다 바쳤다. 그러던 중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던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부터 그녀는 두려움을 느끼고, 친동생에게 연락을 하게 된다. 언니의 연락을 받고 단체로 찾아온 동생은 불같이 화를 내고 언니를 데려가려고 하지만, 언니는 울먹거리며 자신은 이곳이 더 좋다고 말하며 영상은 끝이 난다.







한 유튜버가 예전 '도를 아십니까' 단체를 취재하면서 알게 된 내용에, 자신의 상상을 더해 만들었다는 이 영상은, 시청한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주인공의 어리석음 때문에 이런 단체의 꾐에 넘어갔다고 결론짓기엔 분명 한계가 존재했다. 물론 주인공의 행동을 보면 답답함과 짜증이 치솟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을 인정해주는 곳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남들이 '도를 아십니까'에 대해 아무리 욕을 하고 비아냥거려도, 오직 그곳에 있는 사람들만이 주인공을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사회뿐만 아니라 가족들 중 그 누구도 주인공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았다. 만약 당신이 주인공과 같은 입장이었다면 당신이라고 달랐을까.







현대 사회는 개인주의가 점점 팽배해지고 있다. 과거와 달리 몇 세대가 함께 사는 집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1인 가구 수는 점점 늘어만 가고 있다. 길을 걷다 누군가 넘어져도 힐끗 쳐다보기만 하고 선뜻 도와주는 사람은 드물다. 심지어 최근 한 뉴스에선 외국의 한 지하철에서 성폭행 사건이 벌어졌는데, 같은 칸에 있던 사람들이 도와주거나 신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있었다는 내용이 보도되기도 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만의 선을 굳게 지키며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 그 선을 넘는 것도, 자신이 그 선을 넘어가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개인주의의 확산과 함께 늘어나고 있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외로움'이다. 혼자 있음에 만족하면서도 사람들은 외로워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 때문에 자신의 시간을 지나치게 빼앗기는 걸 원하지 않는다. 이러한 개인주의의 확산과 함께,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방법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자신의 사진을 등록해 기준을 통과한 사람들을 서로 연결해주거나, 살고 있는 곳을 기준으로 근처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끼리 만날 수 있도록 하는 앱들도 있다. 공통된 관심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소모임들도 매우 많다.



이런 모임들의 장점은 출입이 아주 자유롭다는 것이다. 들어가는 것도 본인의 선택이고, 나간다고 해서 붙잡는 사람도 없다. 개인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대 사회의 흐름을 잘 반영한 것이다. 나는 이런 모임들을 '인스턴트 모임'이라고 부른다. 개인 시간과 효율성을 보장해주는 동시에, 외로움까지 달래주는 인스턴트 모임에 2곳 또는 3곳 이상 활동하는 사람들도 다수 존재한다. 하지만 여기엔 중요한 모순이 한 가지 존재하고 있다.








인스턴트 모임은 앞서 말한 여러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 낮은 진입장벽과 강제성 덕분에 누구든 가입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들 때문에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는 외로움을 충족하기 매우 어렵게 만든다.



테니스 모임에 가입한 모든 사람이 같은 목적을 가지고 들어오진 않는다. 처음 이 모임을 만든 사람은 '테니스를 치기 위해' 만들었을진 몰라도, 누군가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함일 수 있다. 만약 사람을 만나기 위해 테니스 모임에 가입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사람이 일주일 간 활동하면서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면, 과연 이 사람은 다음 주에도 모임에 나올까? 인간의 모든 행동엔 특정한 목적의 존재가 반드시 선행한다. 아마 이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찾을 때까지 계속 다른 모임을 들어가고, 나가는 것을 반복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방식을 통해 원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아마 매우 힘들 것이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도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모임을 찾을 것이다. 자신과 비슷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찾는다는 것도 힘들지만, 힘들게 찾은 그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리란 법도 없다. 이 과정에서 소모되는 에너지와 개인 시간도 결코 적지 않다. 결국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수많은 모임에 소속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맺는다 해도 그것은 일시적인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을 만났음에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때문에 전보다 더욱 외롭다는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바다에서 표류한 사람들의 생존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인간은 음식 없이는 일주일을 버틸 수 있지만, 물 없이는 3일도 버티지 못한다고 한다. 표류한 자들 중 일부는 갈증에 못 이겨 바닷물을 마시는 선택을 한다. 짧은 시간 동안 목마름은 가시겠지만 잠시 후 전보다 2~3배의 갈증이 덮쳐오게 된다.



외로움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외로움은 절대 해소될 수 없는 원초적인 감정이다.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아무나 만난다는 건, 목이 마를 때 바닷물을 마시는 것보다 나쁘다. 탈수 현상은 식수를 마시면 해소된다. 그러나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아물 뿐, 가슴속 어딘가에 흉터는 남아 있다. 아물었던 상처는 당신이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다시 욱신거리기 시작한다. 당신의 눈에 색안경을 씌우고, 당신을 두렵게 만든다. 어쩌면 잘될 수도 있었을 사람을, 과거의 상처로 인해 떠나보내게 만든다.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도를 아십니까'라는 단체가 불쾌하고 쓸모없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또 다른 사람에겐 그곳이 삶의 이유이자 목적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이란 존재는 소속감과 누군가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그러한 소속감과 인정은 사실 대단한 게 아닐 수도 있다. 따뜻한 위로와 진심 어린 말 한마디만으로도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이 열리기도 한다. 오늘 당신이 누군가에게 했던 진심 어린 행동 하나가, 어쩌면 그 사람의 세상을 바꿨을지도 모른다. 진심과 진심이 오고 가는 순간이야말로 인간의 외로움이 해소되는 유일한 순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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