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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Apr 17. 2024

좋은 사람에도 '단계'가 있다


바로 어제 있었던 일이다. 점심식사를 하고 여자친구와 차를 타고 카페로 이동하다가 도로에 잠시 멈춘 상태였다. 신호가 떨어지기 전까지 대화를 하고 있던 중, 갑자기 살짝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충격이 느껴졌다. 둘 다 말을 멈춘 채 서로를 보았다. "이게 무슨 소리야?"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지만, 이내 백미러를 통해 뒷 차 운전자 분이 경악하는 표정을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박았구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들이 이렇게 일어날 줄이야.



문을 열고 내렸을 땐 이미 차주분이 내려서 차 뒤쪽과 나를 보며 미안해하고 있었다. "이걸 어쩌죠. 제가 깜박하고 다른 생각을 하느라 브레이크에서 발을 놓쳤어요. 죄송합니다." 내 어머니 또래 정도의 연배로 보이는 차주분은 연신 사과를 하셨다. 차를 산 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이 썩 좋진 않았다. 다행히 차 뒤쪽을 보니, 살짝 흠집이 난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티가 날 정도는 아니었다. "정 그러시면 보험 처리하셔도 됩니다." 이 말과 함께 차주분은 내 손에 5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네셨다. 함께 내린 여자친구도 괜찮아 보였다. 사람이나 차엔 별 문제가 없었고 계속해서 사과를 하시니 거기에서 뭔가를 더 해봤자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연락처도 받지 않고 그대로 상황을 마무리지었다. 다시 차에 탄 내게 여자친구는 그냥 가도 괜찮겠냐고 물었고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그 순간에 대해선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계획했던 대로 남은 하루를 즐겁게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 상황에서 끝까지 보험처리를 했다면 오늘과 같은 하루를 보낼 수 있었을까. 설령 아까 같은 결정을 했더라도 여자친구가 '왜 그냥 보내주느냐'라는 식으로 말을 했다면, 내 결정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별일 없이 넘어갈 수 있었던 건 서로가 나름대로 노력했고, 그 노력을 존중해 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주 사소한 부분이긴 하지만, 나는 이러한 상황들이 바로 우리가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살다 보면 이런 '애매한 상황들'이 수도 없이 존재한다. 자기 자신 또는 상대방에 따라 내게 닥친 상황이 좋게도, 나쁘게도 변하는 것이다. 설령 아무리 내가 상황을 좋게 받아들인다고 해도, 옆에 있는 사람이 그러한 결정을 부정적인 쪽으로 해석하면 자기 자신에게 의구심을 가질 확률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사람을 만나면 일상이 행복하고 환상적으로 바뀔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은 않다. 그 사람과의 시간들이 즐겁고 행복해서 일상이 행복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좋지 않은 일들까지 그 사람 덕분에 좀 더 좋은 쪽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좋은 것들은 여전히 좋지만, 좋지 않은 일들을 전보다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보니 전반적인 삶의 질이 올라가는 것이다.






연애와 관련된 영상들을 보다 보면 간혹 당사자들이 그런 말을 할 때가 있다. "평소엔 잘해주는데 화가 나면 재 말을 안 들어요." "평소엔 괜찮다가 다투면 대화가 전혀 안 돼요." 처음 이런 말을 들으면 '누구나 안 맞는 부분은 있으니까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하지만 점점 듣다 보면, 도대체 왜 그들이 상대와의 관계를 지속하는지 이해할 없을 정도이다.



처음엔 그들을 오해하기도 했다. 실은 그들이 만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자신이 만나고 있기 때문에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닐까라고.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명 그들이 만나는 상대는 좋은 사람이 확실하다. 그들 또한 연애를 해본 경우가 대부분이고, 점점 더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보내고 싶어 하는 건 사람의 본능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만난 사람은 분명히 좋은 사람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고 있는 게 하나 있다. 좋은 사람도 '단계'가 있다는 것. 단지 일상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정도의 '좋은 사람'이 있는 반면, 좋지 않은 일들조차 좋은 쪽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만드는 '좋은 사람'도 존재한다는 걸 말이다. 그들은 좋은 사람을 만났지만, 그 정도로 '좋은 사람'을 만나지는 못한 것이다. 사실 그 정도의 좋은 사람을 만나는 건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의 숫자가 매우 적을 뿐만 아니라, 찾더라도 그 사람에게 매력을 느낄 수 있고 자신 또한 그런 사람이 매력을 느낄만한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변에서 그 정도로 좋은 사람을 만나 연애를 하는 커플 또는 부부를 찾아보기가 힘든 것이다.






누구에게나 좋은 면과 좋지 않은 면은 존재한다. 흔히 누군가를 만날 때 우리는 자신의 좋은 면과, 상대의 좋은 면이 얼마나 흡사한지를 가장 중점적으로 찾는다. 하지만 그것은 만남을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며, 만남을 '지속하기' 위해선 서로의 좋지 않은 면을 얼마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더 나아가 상대의 좋지 않은 면을 좀 더 좋은 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 그것이야말로 안정적인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관계인 것이다.



관계를 시작하는 건 중요하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건, '상대와의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이다. 사람은 잘 사귀지만 그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그 관계를 위해 합당한 노력을 하지 않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게 아니라면 애초에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 상대와의 관계에, 지나치게 에너지를 쏟고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이 되었든 이것 하나만은 기억하길 바란다. 우리가 정말로 만나야 하는 좋은 사람은 즐겁고 유쾌한 것에 더해, 상대의 좋지 않은 면까지 이해하고 그것을 더 좋은 쪽으로 이끌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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