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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Aug 15. 2024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

'다음'은 결코 '지금'이 될 수 없다는 것


최근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는 영화가 있다. 제목조차 아름다운 '퍼펙트 데이즈'라는 영화이다. 사실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점은 대부분 비슷할 것이다. 하찮아보일 수 있는 일에도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의 품격.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 속에도 분명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다는 것. 누구나 아는 말이지만 이것을 실천하며 살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주인공이 조카와 함께 자전거를 타는 장면이었다. 자전거를 타다가 다리에서 강을 본 주인공의 조카는 '이 강은 바다로 이어지냐'고 묻고 주인공은 '아마도'라고 답한다. 그러자 조카는 주인공에게 '바다 보러 갈까?'라고 물어보고, 주인공은 잠시 망설이다 '다음에'라고 말한다. '다음이 언제냐'라는 조카의 질문에 주인공은 또다시 고민하더니 "다음은 다음이지"라고 대답한다. 이내 그들은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이라고 말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일상을 잘 유지하는 건 중요하다. 여행이 즐거운 건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처럼, 잘 유지된 일상은 가끔 저지르는 일탈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금요일 저녁이 즐거운 이유는 그다음 날 학교를 가거나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만약 매일 출근을 하지 않거나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한다면, 금요일 저녁이 즐거울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일상의 유지는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가장 필수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즘 들어 일상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사람들의 목표가 된 것 같을 때가 많아 보인다. 스스로에게 주는 약간의 휴식조차 사치라고 여긴다. 마치 자신이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쉬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죄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 왜 쉬지 않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이렇게 답한다. "쉬는 건 다음에 언제든지 할 수 있잖아"


 




그들의 의지는 분명 대단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다음에 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엔 공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들과 같은 대답을 하다가 다양한 이유로 제대로 쉬지 못한 것을 봐왔기 때문이다. 건강상 문제가 생겨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하거나, 불의의 사고로 크게 다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있었다. 그게 아니라도 가족이나 연인에게 소홀해지다 보니 막상 쉴 수 있을 때엔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다.



"다음에 하자" "다음에 만나자" 도대체 그다음은 언제가 될까. 우리는 당장 내일이 아니라 몇 시간 후의 일도 예측할 수 없다. 영화 속 주인공이 한 말처럼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일 뿐이다. 다음은 결코 지금이 될 수 없다. 선택에는 항상 후회가 따르고, 우리는 자신이 내린 선택에 책임을 져야만 한다.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 집중하고 몰두하는 건 중요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다음에도 언제든지 할 수 있다는 건 본인만의 착각이다.


 




주인공은 조카와 함께 바다를 보러 가지 않았다. 물론 꼭 그래야만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주인공이 다음에 또 언제 조카와 그런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다음에 조카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오늘은 바다 보러 갈래?"라고 했을 때 조카가 그 제안을 거절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다시는 그럴 기회가 주인공의 삶에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머릿속에서 하나의 장면을 떠올려본다. 주인공과 조카가 자전거를 타고 함께 바다로 향하는 모습을. 바다까지는 너무 멀어 기차를 타고 갈지도 모르겠다. 자전거를 타거나 기차 안에서 그들은 많은 대화를 나눌 것이다. 조카는 오랜만에 본 삼촌에게 많은 질문을 던질 것이다. 엄마와 왜 멀어지게 되었는지. 화장실 청소 일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가장 좋아하는 카세트테이프가 어떤 것인지. 삼촌도 조카에게 물어볼 것이다. 엄마와 왜 다투게 되었는지. 좋아하는 사람은 있는지. 하고 싶은 일은 생겼는지.



그런 시간을 거쳐 그들은 바다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바다를 보지 못한 채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함께 "바다를 보러 가던" 사이였다. 바다를 보았든, 보지 못했든 그런 사이는 좀처럼 보기 힘든 사이다. 그런 추억은 화장실 청소를 하는 나이가 많은 삼촌에게도, 처음으로 가출한 어린 조카에게도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의 조각이 된다. 다음이 지금이 될 수 없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당신이 현재를 충실히 살고 있다는 전제하에, 가끔은 일상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조금은 스스로를 풀어주었으면 한다. 앞서 말했듯 일상의 유지는 우리가 더 행복하기 위해서지, 그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흙에 씨앗을 넣고 나서 적당한 물을 주어야 비로소 싹이 트고 자라듯, 행복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 행복의 씨앗을 먼저 심는 게 중요하다. 오랜만에 온 연락 또는 문득 무언가를 하고 싶어질 때마다 "다음에"라는 생각을 한다면, 정말로 그것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오더라도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씨앗이 없는데 물을 아무리 많이 준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이 점심을 먹으며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찍는 취미가 있는 것처럼, 일상 속 자신만의 행복을 찾고 그것을 누리는 건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때로는 과감히 일상을 벗어나보는 것도 필요하다. 언제 또 그런 생각이 들지,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너무 망설이지 말고 도전해 보라. 시도를 한 순간부터 결과와 상관없이 그 나름대로 당신에겐 '완벽한 날'이 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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