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내와 다툰 적이 있었다. 결혼을 하면서 내가 좀 더 집안일을 담당하기로 했고, 그때부터 내 나름대로는 퇴근 후 틈틈이 집안일을 했지만 아내의 입장에선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아내는 내게 더 많은 것을 하라는 것이 아닌, '마음가짐'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도대체 나와 아내의 마음가짐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에 대해 고민을 해봤다.
생각해 보면 집안일을 떠나 모든 면에서 나는 '적당히' 하고 빠르게 마무리 짓는 편이었다. 무언가를 하면서 그 일에 최선을 다하거나 더 잘하기 위해 고민하는 시간이 많은 건 아니었다. 내 나름의 기준으로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면 거기서 일을 빠르게 끝맺고 또 다른 걸 찾아서 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불안정한 상황에서 나름의 시스템을 갖춘 것에 만족하고, 거기서 오는 불편함이 있어도 '무엇을 하든 이 정도의 불편함은 있다'라고 생각하고 감수하며 살아왔다.
반면 아내는 무언가를 할 때 '어떻게 하면 더 편하게 할 수 있을까?' '지금 이대로도 괜찮은 걸까?'라는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이었다. 이미 시스템이 갖춰져 있더라도 불편하다고 느끼면 그것을 다르게 바꾸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해보고 마음에 안 들면 원래대로 하면 되지" 아내가 모든 것을 대하는 기본 마음가짐이었다.
내 기준에서 봤을 때 나라는 사람에겐 큰 문제가 없다. 설령 문제가 있더라도 내가 살아온 삶에선 그렇게 행동하는 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납득이 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내의 기준에선 나의 이런 행동들이 게을러 보이거나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가는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이 지나더라도 신혼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밥을 해 먹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한다면 문제 아니겠는가.
더욱 중요한 건 나의 이런 모습들이 나중에 태어날지도 모를 아이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야 성공할 수 있단다"라고 말하면서, 정작 내가 하던 대로만 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아이 또한 그 말을 믿지 않게 될 것이다.
자신의 단점과 결핍은 나의 시선에서만 보면 어디까지나 충분히 '그럴 수 있지'로 결론이 나게 된다. 평생을 혼자서 살기로 결심했다면 그렇게 살아도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타인과의 교류 없이 혼자서만 모든 걸 결정하고 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에 우리는 나의 결핍이 타인의 시선에서 어떻게 느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모든 일을 적당한 선에서 끝내는 걸 좋아해'라고 해서 그렇게만 행동하면, 최선을 다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항상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모든 걸 상대에게 맞출 수도 없다. 그렇게 되면 나라는 사람이 사라지게 될 테니까 말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 외에 중간 어딘가에 서로 만족할 수 있는 타협점이 있을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한쪽만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좋은 대화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단점과 결핍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스스로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서로의 입장을 조율할 수 있는 대화를 한다는 건 불가능하니까. 누구에게나 결핍은 존재한다. 나의 결핍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떤 사람과도 진솔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