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질문
2025년의 마지막 날, 원래는 아내가 가보고 싶어 했던 카페에 들렀다가 최근 유명한 맛집에 가서 저녁을 먹을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점심을 생각보다 많이 먹은 탓에, 맛집은 다음으로 미루고 카페를 한 곳 더 가기로 했습니다. 몇 년 전 혼자 갔던 곳이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찾았는데도 여전히 좋았습니다. 아내도 만족해하는 표정이었고요.
핸드드립커피로 유명한 카페 한쪽에는 책장이 있었습니다. 제가 고른 건 <카페인강릉>이라는 제목의 책이었습니다. 강릉에 사는 저자가 직접 다닌 카페들 중 마음에 들었던 곳을 소개하는 책이었는데, 강릉을 두어 번 가본 적이 있는 저조차 처음 보는 곳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특히 책을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건, 저자가 카페 사장님들과 나눈 대화를 실은 부분이었습니다.
한 사장님은 강릉의 작은 도시 뒷골목에 자리한 자신의 카페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커피를 마시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문을 닫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사장님은 저자에게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성실하고 부지런했던 아버지는 “지금은 바쁘지만, 은퇴하면 여유롭게 살겠다”라고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갑작스럽게 돌아가셨고, 사장님은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 자신도 아버지처럼 일을 즐기며 바쁘게 살아왔지만, 문득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강릉으로 와 카페를 차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개성 넘치는 강릉 카페 사장님들의 이야기들을 읽고 난 후 카페를 다시 둘러봤습니다. 올해의 마지막 날, 동네 카페 안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습니다.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하는 사람,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시는 중년 여성 두 분, 2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성 네 명이 웃으며 수다를 떠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카페에서 나온 뒤 아내가 요즘 먹고 싶어 하던 무침회를 샀고, 집으로 돌아와 영화 한 편을 보며 우리의 연말은 마무리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겐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처럼 보이지만, 저희에겐 '꽤나 괜찮았던 마지막 날'이었죠.
세상에는 정말 많은 가치들이 존재합니다. 성취, 안정, 자유, 사랑, 재미, 배움, 건강 등등. 문제는 가치 자체가 아니라, 내가 어떤 가치를 우선순위에 둘 지입니다. 사람은 동시에 모든 가치를 최고로 만들 수 없습니다. 무엇을 올리면 무엇은 내려갑니다. 이럴 때 “나를 아끼는 사람들”의 의견은 분명 도움이 됩니다. 그들은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위험을 알려주고, 내가 과소평가하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해 주니까요.
하지만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다를 때 주로 어떤 선택을 해왔는가가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누군가의 기대를 만족시키는 편이었는가, 아니면 내 삶의 결을 지키는 편이었는가.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그 질문을 마주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행보는 점점 달라지게 되어있습니다. 중요한 건 ‘무엇이 정답인가’가 아닌, '그 선택에 대해 내가 얼마나 납득했는가'이니까요.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올해는 무엇을 이룰까”를 생각합니다. 무엇을 원하든 상관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꼭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원한다고 믿는 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지 말입니다. 우리는 목표를 세울 때 자주 타인의 기준을 빌리곤 합니다. “남들도 그러니까”, “그럴 시기가 되었으니까”라는 이유로요. 그렇게 설정한 목표는 달성해도 이상하게 허전할 때가 많습니다. 원하는 걸 얻었는데도 행복이 생각만큼 따라오지 않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실 그건 내가 원한 게 아니었으니까요.
연말에 미리 세운 계획이 틀어지고, 뜻하지 않은 카페를 가고, 카페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가 있고, 나의 기준으로 그 가치들을 골라 삶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것이 아닐까라고요. 남들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가치들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중에서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을 선명하게 알아보는 일. 올해는 '무엇'보다 '왜'에 초점을 맞춰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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