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곧 죽는다. 아무도 내게 그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근육에 힘이 빠지는 게 느껴진다. 아침에 일어나기 위해 몸에 덮은 이불을 걷어내기 위해 미간이 찌푸려질 정도로 안간힘을 써야 할 정도라면, 내 몸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렇게 몸이 좋지 않진 않았다. 생활습관이 다소 불규칙적이고 식습관도 그렇게 건강하진 않지만, 어쨌거나 잠도 잘 자고 식사도 매 끼니를 챙겨 먹는다. SNS나 유튜브를 보면 나보다 잠을 적게 자거나 인스턴트 음식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도 오래 사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사실 건강이 악화되는 것보다 더 힘든 건, 지금 내가 앓고 있는 이 병이 '전염'된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 때문에 지금 나는 2년 동안 내 방에서 나가본 적이 없다.
겨우 몸을 반쯤 일으켜 침대헤드에 몸을 기댄 채 온 세상을 천천히 눈에 담아본다. 온 세상이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10초도 안되어 세계일주가 끝난다. 4평 남짓한 방. 이 공간이 내겐 방인 동시에 우주다. 학창 시절에 본 '트루먼 쇼'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어린 시절부터 한정된 공간에서 살았던 트루먼의 기분이 이런 것이었을까. 그래도 트루먼은 만들어진 세상이라는 걸 깨닫고 탈출하는 것에 반해, 나는 앞으로 평생을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
식사 시간이 되면 노크 소리가 두 번 들린다. 5분 후에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면 문 앞에 엄마가 차려준 밥과 국, 반찬 서너 가지가 쟁반 위에 놓여 있다. 하루 종일 방 안에서 생활하다 보니 배가 그렇게 고프진 않다. 항상 그랬듯 밥은 대충 절반 정도만 먹고 다시 문 앞에 놔둔 뒤, 문은 굳게 잠근다. 한 달 전쯤이었던가. 아침식사를 받은 뒤에 깜박하고 문을 잠그지 않은 적이 있었다. 쟁반을 가지러 왔다가 살짝 열린 문을 보고 엄마가 문을 열고, 나는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크게 화를 냈었다. 다행히 찰나의 순간이었기에 엄마에게 병이 옮진 않은 듯하다. '죽는 건 나 혼자만으로 충분해' 가족들까지 위험에 빠지게 할 순 없다.
어쨌든 식사를 마친 후 문을 잠그고 나면, 내 하루는 대체로 끝이 난다. 끝이란 말이 이상하지만, 더 이상 새로 생길 일이 없다는 뜻으로는 딱 맞다. 몸을 추슬러 책상으로 기어가듯 앉고, 컴퓨터를 켜고, 익숙한 채팅방을 연다. 누구나 사용하는 일반 메신저이지만, 들어오는 사람들은 평범하지 않다. 모두가 나와 같은 사람들뿐이니까.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인터넷으로 나와 같은 병에 걸린 사람은 없는지 미친 듯이 찾았던 적이 있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채팅방이 바로 이 채팅방이다. 채팅방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의 수가 많은 건 아니다. 가장 많았을 때가 열세 명이었고 그다음엔 열 명, 아홉 명, 지금은 나를 포함해 일곱 명이 있다.
이 채팅방엔 한 가지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만 대화한다는 것이다. 그 시간 동안 꼭 말을 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대화하는 시간은 그 사이가 전부다. 채팅방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 규칙을 어긴 사람은 없었다. 채팅방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 이유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 당시 가장 오래 채팅방에 있었던 사람이 말하길, 증상이 심해질수록 잠이 많아지고 한번 잠에서 깨면 다시 잠들기가 힘들기 때문에 배려하는 차원에서 채팅을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알고 보니 이 채팅방엔 누군가 채팅을 쳤을 때 알림 소리가 울렸고, 실수로 알림 소리를 끄지 않으면 충분히 귀에 거슬릴만한 소리였다. 처음엔 '그냥 알림을 꺼놓으면 되는 것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그 생각이 기우란 걸 깨달았다. 희귀한 데다 치명적인 전염성을 가졌으며, 시기는 달라도 반드시 죽음에 이르게 되는 보균자가 유일하게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건 오직 그 채팅방뿐이었다. 낮잠을 좀 설치더라도 알림 소리를 끄지 않는 날들이 잦아지면서, 왜 그런 규칙이 생겼는지 납득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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