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돌무더기에 소원을 빌었다.
등산을 하다보면 간혹 사람들이 쌓아둔 돌무더기를 발견할 때가 있다. 어렸을 땐 별 생각 없이 어른들을 따라 그 돌무더기 위에 작은 돌멩이를 얹어놓고 소원을 빌곤 했었다. 물론 그런다고 소원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지만, 뭐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늘 돌을 얹었다. 그러니까, 오늘 돌무더기에 돌을 얹은 것도 그런 가벼운 마음에서였다.
“돈. 돈. 돈.”
나는 두 손을 모아 간절하고도 명확한 소원을 빌었다. 어릴 때는 좀 더 다양한 소원을 빌었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드니 빌 소원은 돈밖에 없다.
나는 돈이 필요했다.
대학졸업하고 벌써 4년째 백수. 이래저래 준비하고 도전해봤지만 결국 백수였다. 이제는 뭘 시도해 볼 의지도 기력도 없었다. 자나 깨나 바라는 것은 복권 당첨뿐이었다. 그게 있으면 적어도 10, 20년간의 미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됐으니까. 나는 소원 빌기를 끝내고 괜히 손을 만지작거리며 돌무더기에서 물러났다.
터벅터벅, 산길을 따라 돌무더기를 뒤로 하고 걸어가려는데 뒤에서 갑자기 동전이 쏟아지는 소리가 났다. 잘못 들을 리가 없었다. 그 가볍고도 경쾌한 쇳소리. 돼지저금통을 잡을 때마다 듣게 되는, 동전들이 무더기로 쏟아지는 바로 그 소리였다. 나는 의아함에 고개를 돌렸다.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시간은 밤 10시. 이 등산로에는 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동전을 쏟을 사람이 없는데 동전 쏟아지는 소리가 왜 난단 말인가.
나는 의심스레 고개를 흔들거리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리가 난 방향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히 돌무더기 쪽에서 소리가 난 것 같았다. 나는 돌무더기 앞에 쪼그려 앉은 채 바닥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밤이라 그런지 어두워서 바닥이 잘 보이진 않았다. 이 등산로는 새로 정비되어 가로등이 일정 구간마다 설치되어 있었지만, 왜인지 이 돌무더기들 주변에는 가로등이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돌무더기 앞을 비추었다. 그리고 휴대폰 불빛이 돌무더기 앞을 비추는 순간, 나는 아주 잠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반짝이는 오백 원짜리 한 무더기가 돌무더기 앞에 수북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옛날에는 동전을 지폐로 바꾸려면 은행 표를 뽑아들고 기다리다가 직접 은행원에게 동전 뭉치를 건네주어야 했다. 하지만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그럴 필요가 없다. 은행 구석에 설치되어 있는 동전자동교환기에 동전을 쏟고 기다리면 그만이다. 그런 시대의 변화는 좋은 일이었다. 특히나 출처모를 오백 원짜리 동전을 한 무더기 바꿔야하는 내게는 더더욱 반가운 일이었다.
그랬다. 구질구질하게 들리는 일인 걸 알지만 나는 그날 밤 바닥에 떨어진 동전들을 다 주워왔다. 주인 없이 놓여 있는 동전들이었고, 근처에 CCTV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내가 기도를 한 뒤에 쏟아진 동전들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기도의 응답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왜 기도의 응답이 오천 원 권도, 만 원권도, 오만원권도 아닌 오백 원이었는지는 좀 의문이었지만, 일단 기도를 한 뒤로 돈이 쏟아진 건 사실이었다. 나는 돈이 너무 급했기 때문에 그냥 나 좋을 대로 그것을 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오백 원짜리들을 다 바꾸니 그건 총 육만 칠천 오백 원이었고, 나는 그 돈으로 일주일 정도 편의점 도시락과 샌드위치, 컵라면 등을 사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돈이 다 떨어졌을 때, 나는 바보 같은 일임을 알고 있음에도 다시 한 번 그 돌무더기를 찾아갔다.
“돈. 돈. 돈.”
이번에도 두 손을 모아 간절하게 손을 빌었다. 저번과 같이 아무도 가지 않은 늦은 시간에 산을 찾아가기까지 했다. 같은 시간, 같은 소원, 같은 사람. 얼핏 보기엔 같은 조건으로 보이는데, 다시 한 번 돌무더기가 소원을 이루어줄까 궁금했다. 나는 소원을 빌고 조심스레 맞대고 있던 두 손을 뗀 뒤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돌무더기 앞에서 가만히 기다렸다. 다시 한 번 돌무더기가 동전을 쏟아내기만을 기다리며.
하지만 10여분이 지나도, 돌무더기는 동전을 쏟아내지 않았다.
“역시 쓸데없는 짓이었나.…….”
아무리 기다려도 돈이 나오지 않자 나는 민망함에 괜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혹시나 돈이 나올까하고 다시 왔지만 역시나였다. 그냥 운동이나 잘 한 셈 치고 터덜터덜 산길을 따라 가려는데, 내가 돌무더기를 지나 어느 정도 걷자 다시 우르르 하고 동전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와 완전히 같았다. 나는 유레카를 외치는 아르키메데스와 같은 심정이었다. 조건을 맞춘다면서도 왜 이런 건 생각하지 못했지? 이전과 같이 돌무더기에서 어느 정도 멀어지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나는 허겁지겁 다시 돌무더기로 뛰어갔다. 돌무더기 아래에는 이전과 같이 오백 원짜리 동전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나는 미리 준비해둔 배낭에 동전을 챙기기 시작했다. 배낭을 챙겨서 다행이었다. 저번엔 배낭을 가지고 가지 않아서 주머니란 주머니에 다 동전을 넣어가고, 두 손 가득 불편하게 동전을 쥐고 갔었다. 신이 나서 콧노래를 부르며 동전을 배낭 안에 쏟아 넣고 있는데, 갑자기 돌무더기 주위에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내 얼굴을 훑고 가는 순간 나는 어쩐지 조금 소름끼치는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바람은 바람일 뿐,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한 뒤 다시 하던 일에 집중했다. 그렇게 마지막 동전까지 배낭에 넣은 순간 갑자기 돌무더기 너머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올 건가요?
그건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속삭임이라기보다는 어쩐지 동화 속 작은 난쟁이의 목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나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나는 잠깐 굳어 있다가, 곧 목을 길게 빼고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온통 새까맣고 섬뜩한 어둠뿐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온 길과, 앞으로 내가 갈 길 어디에도 사람이 서 있지 않았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려왔던 돌무더기 너머 또한 사람이 있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돌무더기 너머는 숲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숲 속에 사람이 숨어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만약에 숲속에 사람이 숨어있다고 해도, 그 사람의 목소리가 어째서 이렇게 명확하게 들렸는지는 의문이었다.
내가 뭐가 뭔지 몰라서 당황해하고 있는 사이, 다시 한 번 목소리가 나를 향해 말을 걸었다.
-그냥 나를 데려가는 게 어때요? 편하게 집에서 소원을 빌면 좋잖아요.
내게 말을 거는 그 목소리는 아주 이상했다. 뱀이 날름거리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해맑은 미소를 지닌 아이의 목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아흔 먹은 노파의 목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무어라 특정 짓기 힘든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이상한 목소리로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나를 향해 말을 거는 것이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 돌무더기가 내게 말을 거는 걸 수도 있었다.
-여기는 너무 어두워요. 나는 어두운 게 싫어요. 아무도 없는 것도 싫고요. 저기요. 나를 당신과 함께 데려간다면, 나는 언제든 당신을 위해 돈을 만들어줄 수 있어요.
이 목소리는 나를 두렵게 했다. 그러나 두려움 뒤에 나는 간신히 이성을 찾을 수 있었다. 세상에 말을 하는 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분명 누군가가 나를 놀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발끝을 움찔거리다가, 어느 순간 발에 힘을 주고 튀어나갔다. 돌무더기의 뒤편을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순식간에 돌무더기의 뒤편으로 돌아갔음에도, 나는 그 누구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때, 다시 돌무더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래. 돌무더기 너머. 바로 내가 방금 전까지 서있던 그 방향에서 말이다.
-나를 데려가면 더 열심히 소원을 들어줄게요. 어쩌면 지폐도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요. 동전을 바꾸러 매번 은행에 가는 건 귀찮고 힘든 일이잖아요.
나는 정말 오싹해졌다. 어쩌면 이 목소리는 내가 어디에 서 있던 무조건 돌무더기 너머에서 말을 걸어오는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이라면 내가 모르는 새에 계속해서 돌무더기의 건너편으로 갈 수 없었을 것 같았다.
-나는…….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다시 말을 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마침표를 찍기도 전에 걸음아 날 살려라 산길을 뛰어 도망가 버렸다.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밤엔 아르바이트를 하고, 낮엔 자격증 공부를 하고 가끔은 이력서를 썼다. 종종 산에 올라가서 동전을 가지고 오고 싶은 마음이 들곤 했지만, 그럴 때마다 참아내고 다른 곳으로 운동을 갔다. 그러나 4주 째 되는 날, 결국 나는 다시 산에 올라가고 말았다.
나라고 그러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늘 나를 도와주던 동아리 선배가 결혼을 한단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 초대장까지 보내줬는데 가지 않거나, 푼돈을 축의금으로 내고 싶진 않았다. 나는 다시 소원을 빌었다. 돈, 돈, 돈.
-나를 데려가요.
새하얀 동전들을 배낭 안에 쏟아 넣고 있으려니, 돌무더기가 다시 말을 걸었다. 나는 무시하고 싶었지만, 20만원 축의금을 하려면 계속 소원을 빌어야했기에 굳이 돌무더기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미안해. 데려가는 건 부담스러워. 나는 그냥 가끔 소원만 빌고 싶거든.”
-왜 부담스러운 데요?
내 말에 돌무더기가 되물었다. 나는 ‘네가 괴물이니까’라는 말을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그걸 겨우 삼키고 그럴듯한 핑계를 댔다.
“난 고시원에 살아. 넌 잘 모르겠지만 고시원은 아주 좁다고. 널 둘 자리가 없어.”
-전 그렇게 자리를 차지하지 않을 거예요. 보기와는 다르다고요.
“게다가 고시원에선 통화도 안 된다고. 너랑 이렇게 떠들면 쫓겨날 수도 있어.
-작게 속삭이면 되잖아요. 그냥 좀 생각해봐요. 나를 집에 두면 얼마나 편할지.
돌무더기는 끈질기게 나를 설득하려고 했다. 그리고 문제는, 나도 돌무더기의 말에 조금씩 설득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돈 나오는 돌무더기가 집에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나는 조금씩 상상해보기 시작했다. 일단 아르바이트를 갈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취직 때문에 매일같이 피 말리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나는 자아실현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돈을 위해서 일자리를 찾고 있었으니까.
-일단 가져가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도로 돌려놓으면 되잖아요. 별 일 아니라고요.
돌무더기는 계속해서 나를 유혹했다. 유혹하고, 유혹하다가 마지막엔 쐐기를 박았다.
-안 가져가면, 축의금 20만원 맞출 때까지 여기에 계속 찾아올 거예요? 난 소원은 하루에 한 번 밖에 안 들어줘요. 적어도 두세 번은 더 여기에 와야 될 거라고요. 정말 그러고 싶어요?
돌무더기의 마지막 말에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계속해서 꺼릴 것이 뭐가 있겠는가. 돌무더기의 말대로 일단 집에 가져갔다가, 아니면 도로 가져다 놓으면 되는 것 아닌가. 나는 입술을 꾹 다문 채 빠르게 돌무더기의 돌들을 내 가방 안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내 작은 고시원 방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나는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 챘다.
첫째로, 내 가방은 절대로 돌무더기가 다 들어갈 정도로 크지 않았으며, 둘째는 나는 그 커다란 돌무더기를 한 번에 짊어지고 올 정도로 힘이 세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내 가방이 돌무더기가 든 것 치고는 이상하게 가볍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방 안에 돌무더기가 들어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어떻게 했는지는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정말 돌무더기를 가방 안에 다 넣었고, 그걸 이 곳까지 가져왔다.
나는 의아함에 고개를 까닥거리며 가방의 지퍼를 잡았다. 손끝에 힘을 주자 지퍼를 지익하는 마찰음을 내며 벌어졌고, 가방 안이 고시원이 형광등 아래에 드러났다.
분명히 나는 돌무더기를 전부 가방 안에 넣었는데, 가방 안에는 몇 개의 돌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돌은 이상하게도, 그리고 아주 기묘하게도 사람의 형상을 닮아 있었다. 몸통 격의 타원형의 돌이 가운데에 있었고, 다리와 팔처럼 보이는 길쭉한 돌들이 위쪽에 두 개, 아래쪽에 두 개 붙어있었다. 그리고 머리처럼 보이는 동그란 돌은 몸통 돌 위에 붙어있었다.
맹세컨대, 내가 소원을 빌었던 돌무더기는 결코 이런 모양이 아니었다.
귀신에라도 홀린 기분이었다. 내가 돌무더기가 아닌, 아주 이상한 다른 것을 가져와 버렸다고? 내가 지끈 거리는 머리를 쥔 채 어찌해야 할지 생각하는 순간, 이번엔 내 손에 들린 돌 인형의 뒤편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곧 12시야.
돌 인형의 그 말은 좀 소름끼치게 들리는 데가 있었다. 12시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공포 영화나, 소설에서 귀신이 나온다면 꼭 그 시간쯤에 나오지 않는가. 그리고 이 정체모를 돌 인형이 그것을 내게 상기시켜주는 것은 전혀 좋은 징조 같지가 않았다.
“조금 소름끼친다.”
-12시가 지나면, 다시 한 번 내게 소원을 빌어봐.
돌 인형이 다시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내 손목시계를 내려다 봤다. 돌 인형의 말대로 이제 곧 열두시였다. 나는 40초에 닿아있는 초침이 움직이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38초, 37초, 36초…3초, 2초, 1초, 그리고 12시 정각. 12시 정각이 되는 순간, 나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이전처럼 두 손도 모으지 않고 소원을 빌었다.
“돈. 돈. 돈.”
그리고 그 순간 발밑으로 지폐 수십 장이 쏟아졌다.
비록 천 원짜리지만, 수북이 쌓이는 것을 보아하니 100장은 될 것 같았다.
나는 매일 소원을 빌었다. 돌무더기를 집에 들여온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 덕분에 나는 나를 하루 종일 지치게 했던, 그리고 공부를 할 기운마저 없게 했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수 있었다. 처음엔 쌩쌩한 정신으로 공부 할 시간이 많아졌다고 좋아했지만, 어째서인지 막상 시간이 많아지고 나니 공부를 이전보다 덜 하게 되었다. 나는 현실을 외면하고 순간에 탐닉하기 시작했다.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고, 맛있는 것을 먹거나 잠을 잤다. 그렇게 선배의 결혼식까지의 일주일 동안, 나는 아무런 의미도 없고, 떠올려보면 그다지 즐겁지도 않은 시간 낭비를 했다.
나는 당당하게 결혼식에 갔다. 비싼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새로 산 양복을 입고 새 구두도 신고, 이발도 하고. 나는 대학 시절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다. 대학 내에서 우리 동아리처럼 활동을 열심히 한 동아리도 없을 것이었다. 그때 우리들은 모두 가깝고 친한 사이였다. 그러나 세월이 지날수록, 우리 사이엔 보이지 않는 묘한 간극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재우 왔더라.”
“그러게. 안 올 줄 알았는데.”
“걔 아직도 취직 못했나?” 나는 담배를 끊은 지 오래다. 담배를 끊으면 건강적인 이득은 볼 수 있어도, 사회적으론 조금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바로 이런 때가 그럴 때다. 나를 빼고 담배 피우러 간 동아리 친구들 사이에서 내 이야기가 나올 때. 나는 커피 잔을 들고 꺾인 벽 건너편에 머쓱하게 서 있었다. 왼쪽 코너만 돌면 친구들이 있는데, 나는 그 쪽으로 갈 수가 없었다. 친구들이 내 얘기를 하고 있었고, 어쩐지 그건 분명 좋지 못한 얘기일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대학 졸업하고……. 몇 년 지났나? 4년? 아직까지 취직을 못하면 어떡해?”
“걔 그래도 나름 대학 때는 장학금도 받고 그랬는데.”
“대기업 들어간다고 쓸데없이 시간 버려서 그렇지. 우리 학교에서 대기업 들어가는 애들이 몇 명이나 된다고. 못 오를 나무를 쳐다봐서 그래.”
“요새는 공시한다고 했나?”
“공시도 아무나 못해. 요즘 다 공무원 한다고 난리치는데.”
식장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을 땐, 누구도 내게 이런 말들을 꺼내지 않았었다. 우리는 무난한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을 뿐이었다. 우리는 여자친구, 결혼, 취미, 추억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사실은 모두 이런 화제를 꺼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 자격지심에서 나온 착각일까? 친구들이 나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나를 한심하게 여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심장이 크게 뛰는 것을 느꼈다. 얼굴에 순식간에 열이 올랐다. 친구들에겐 그냥 별 거 아닌 잡담일지도 몰랐다. 그냥 아무런 의미 없이 시간을 때우기 위해 나누는 말들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내겐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이런 대화가 지나치게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왜냐면 그들이 굳이 상기시키지 않아도 나 스스로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난 한심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난 그 누구보다도, 내 한심함을 혐오하고 있었다.
나는 우르르 몰려있는 사람들 사이로 들어갔다. 상당히 많은 동아리 사람들이 뒤풀이를 가기 위해서 예식장 앞에 모여 있었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사람들 사이에 밀리다보니 나는 어느새 한 무리의 사람들 옆으로 밀려가게 되었다. 적당히 친한 동기들, 조금 전에 담배를 태우며 내 얘기를 나눴던 동기들의 옆이었다. 그들이 나를 보고 웃으며 어깨동무를 했다. 그 친근한 손짓과 말투. 내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얼굴들이었다. 뭐 알았다해도 어떻단 말인가. 그들이 대단한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닌데. 그냥 내가 지나치게 예민하고, 피해의식에 잠겨 있을 뿐이었다.
나는 입술을 달싹였다. 내 가슴 속에 어떤 충동이 일었다. 내가 이러는 것이 나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또한 새로운 문제들을 연달아 만들어낼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나는 그 충동을 이길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입을 열었다. 그들의 중요하지 않은 잡담 사이로 내 태연을 가장한, 우울한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얘들아. 나 취직했다.”
짧은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그 파급력은 대단했다. 긴 감탄사가 터지더니, 내 거짓말을 금세 사람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난 그들에게 나중에 한 턱 크게 쏠 것을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시곗바늘이 12시를 가리켰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두 손을 모아 빌었다.
“취직. 취직. 취직.”
이전까지의 소원과는 다른 소원이었다. 동전이 쓰러지는 소리도, 지폐가 팔랑거리며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랬기에 나는 소원이 이루어졌는가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책상 위의 작은 돌 인형을 바라보았다.
“소원을 들어준 거야?”
-응. 내일 네가 이력서를 넣은 회사에서 연락이 올 거야.
돌 인형은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문득 돌 인형의 말투가 언제부턴가 처음과 달라졌다는 것을 눈치 챘지만, 언제부터인지 기억을 할 수 없었음으로 나는 굳이 그런 데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내가 이력서를 넣었던 회사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큰 회사도 여럿 넣었었다. 어쩌면 남들이 선망하는 기업에 다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왜 진작 취직에 대해서 빌지 않았을까? 그동안 돈을 빌어도 오백 원 동전 나부랭이나, 천원 뭉치를 주는 돌 인형이라 나도 모르는 새 하찮게 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하찮게 보던 그 시선에 정면으로 반박하기라도 하듯, 돌 인형은 아무렇지도 않게 취직 소원을 들어주었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돌 인형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어떤 회산데? 내가 지원서 넣은 데가 여럿이라. 너무 대기업은 부담스럽고 적당히 이름 있는 기업이었으면 좋겠는데.”
-음……. 별로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을 텐데.
“뭐라고?”
하지만 기대에 찬 내 물음을, 돌 인형은 찜찜한 목소리로 받아쳐버렸다.
-분명 별 볼일 없는 곳에 합격할 거야. 최저임금에, 그것도 밀리기 일쑤고, 야근을 밥 먹듯 하는 회사에 합격할 거라고. 그리고 사장은 가-족같은 경영을 하겠지.
“그게 무슨 소리야?”
소원 성취로 기뻤던 마음이, 한 순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가라앉았다.
-말한 대로야. 난 그런 회사밖에 합격시켜줄 수 없어. 난 소원을 들어주긴 하지만, 그렇게 대단한 힘은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갑자기 널 번듯한 대기업에 취직시켜 줄 수는 없다고.
“말도 안 돼. 다 자랑했단 말이야. 좋은 회사에 취직했다고. 연봉도 좋고, 복지도 좋고, 괜찮은 회사라고.”
-괜찮을 거야. 회사 이름을 얼버무리면 돼. 누가 남들 일에 그렇게 관심이나 가지겠어?
“들키면 그게 무슨 망신이냐고!” 오백 원이나 천 원짜리를 줄 때부터 알아봤었다. 이 녀석은 별 볼일 없는 돌덩어리에 불과했다. 나는 참담한 기분에 고개를 숙였다. 친구들이 내가 합격한 회사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내가 어이없는 거짓말을 한다고 뒤에서 비웃을 게 분명했다. 내가 시뻘게진 얼굴을 구긴 채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씩씩거리고 있으니까, 돌 인형이 어쩔 수 없다는 목소리를 냈다.
-그럼 내일 다시 소원을 빌어봐.
그 말에 내 눈은 번쩍 뜨일 수밖에 없었다.
“다른 회사를 합격시켜 줄 수 있어?”
-아니.
돌 인형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잠깐 실망했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일단 돌 인형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돈을 더 만들어볼 수는 있어. 내일부터 오천 원을 만들어볼게.
돌 인형은 매일같이 80장에서 120장 정도의 지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만약 그 지폐가 천원에서 오천 원으로 변한다면, 내 불로소득이 한순간에 다섯 배로 뛰는 것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수익이 는다니. 기뻐야하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조금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네가 돈을 팍팍 쓴다면, 모두가 네가 잘 지내는 줄 알거야. 널 부러워 할 거라고. 아무런 문제없을 거야.
돌 인형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돌 인형이 만들어내는 돈으로 좋은 옷도 사고, 시계도 사고, 친구들에게 자주 쏜다면, 누구도 내가 잘 지낸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나는 찜찜하고 얼떨떨한 기분을 떨쳐내고, 당장의 문제가 해결됐음을 기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날 밤, 나는 잠들기 전 흐릿한 시야로 책상 위의 돌 인형을 바라보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창의 달빛에 비치는 돌 인형의 얼굴이 이전과는 달리 좀 말라보였기 때문이었다. 말랐다는 것은 좀 이상한 표현이었다. 정정하자면, 이전과는 달리 각이 생겨 보였다. 이전에는 그냥 동그란 얼굴이었는데, 이제는 꼭 사람의 얼굴 같이 여기저기 각이 져 보였다. 턱이라거나, 광대뼈부분이 특히. 그러나 하루 종일 가만히 책상 위에 서 있기만 하는 돌이 변할 리는 없었다. 나는 기분 탓이라고만 여기고,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나는 돌 인형이 합격시켜준 회사에 다니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취직 턱도 크게 쏘고, 어머니 아버지께 다달이 적잖은 돈을 송금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기뻐했다. 전에는 공부하는데 방해라며 술자리에 부르지 않던 친구들이 하루가 다르게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여자를 소개시켜주겠다는 놈들도 몇 명 생겼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기쁘게 한 것은 부모님께 매달 용돈 명목의 돈을 송금하는 일이었다. 처음 돈을 송금했을 때 어머니가 전화로 울먹이며 잘 되었다고 하는 목소리를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돈, 돈, 돈.”
내가 소원을 빌기가 무섭게 돌 인형의 발치에 5천 원짜리가 수북하게 쌓였다. 나는 어두운 고시원 방 안에서 그 돈을 주섬주섬 주웠다. 115장의 5천 원짜리를 주우며, 나는 내일은 그냥 회사를 그만둘까 생각했다. 나흘만 소원을 빌면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이 생겼다. 사장의 가-족같은 경영을 생각해볼 때, 고작 나흘 소원 빌면 얻을 돈을 위해 그런 회사를 다니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고 스트레스 받는 일 같았다. 나는 진지하게 고민을 하며 모든 돈을 탁탁 바닥에 치면서 정리했다. 그렇게 돈의 각을 맞추며 정리하던 중에 나는 무심코 책상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애써 모은 돈을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어…?”
파스슥 소리를 내며 5천 원짜리가 다시 바닥에 흩어졌다. 하지만 나는 그 돈을 다시 주울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스탠드 불빛이 돌 인형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돌 인형의 얼굴은, 어느 샌가 내 얼굴과 몹시 비슷해져 있었다.
“너……. 얼굴이 변한 것 같아.”
나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겨우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를 연기하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말을 꺼내는 내 마음은 공포와 두려움으로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이 녀석, 언제부터 이런 얼굴을 하고 있었지? 분명 돌 인형의 얼굴이 점점 사실적으로 변하는 것은 눈치 채고 있었다. 그러나 한동안 나는 돌 인형을 일부러 외면하고 있었다. 왜냐면 점점 변하는 돌 인형의 모습이 무서웠으니까. 하지만 외면하던 사이, 돌인형은 차근 차근 나의 얼굴로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가?
돌 인형이 어쩐지 싱글대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보고 말았다. 분명 단단한 돌이어야 할 돌 인형의 눈동자가 나를 향해 움직이는 모습을. 돌 인형의 눈엔 어느새 진짜 사람과 같은 번들번들한 윤기가 돌고 있었다.
내 입에선 헉헉 대는 숨이 나오고 있었다. 등에서는 차가운 땀이 배어나오고 있었고, 발은 점점 저려오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뒤에서 내 발을 잡아당기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런 꺼림칙한 기분은 아랑곳 않고 나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내 등 뒤에서 혹은 머리 위에서, 혹은 내 바로 옆에서 건조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다름 아닌 내 목소리였다.
-왜 이러는 거야? 우리 잘 지냈잖아.
-이래봤자 좋을 거 없어. 내가 주는 돈 없이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쓰레기 같은 회사, 계속 다닐 거야?
“시끄러, 시끄러!”
나는 미친 사람처럼 고개를 저으며 돌 인형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했다. 내 가방 안에는 괴물이 있었다. 당장 생기는 돈에 눈이 멀어 괴물이 점점 나로 변하는 것도 모르고 소원을 빌었다. 그대로 계속 소원을 빌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만 해도 오싹했다. 나는 힘들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결국은 돌무더기가 원래 있었던 자리에까지 도착했다. 작은 공터에 말없이 모여 있는 너덧 개의 돌무더기. 나는 내 가방 안에 있던 돌 인형을 꺼내, 그것이 원래 있었던 자리에 내려놓았다.
-한재우!
내가 돌 인형을 두고 가려고 하자, 돌 인형이 내 등 뒤에서 외쳤다.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돌 인형이 또 물기가 반질반질 흐르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을까봐 무서웠다.
-한재우! 다시 찾아와!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돌 인형은 조금 전까지의 필사적인 구석은 온데간데없이 호탕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목소리에 뒤이어 껄껄대는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히히, 하하, 호호. 돌 인형의 목소리뿐만이 아니었다. 젊은 여자의 목소리, 늙은 노인들의 목소리, 어린 아이들의 목소리, 알 수 없는 귀신들의 목소리가 전부 섞여 있었다. 그 웃음소리를 들은 나는 겁에 질려 어두운 산길을 미친 듯이 뛰어 내려갔다.
“꼴통 새끼야! 일을 이따위로 처리하면 어떡해!”
서류 뭉치가 내 머리 위로 내리쳐졌다. 퍽 소리와 함께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맞아본 적 없는 사람은 그깟 종이뭉치 뭐가 아프냐고 하겠지만, 서류 뭉치에 맞으면 생각보다 더 아프다. 그리고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자존심이 너무 상한다.
“사장님은 너 같은 놈을 왜 뽑았는지! 진짜 돈벌레가 따로 없다니까!” 부장이 나를 향해 폭언을 퍼부었다. 나는 정자세를 유지한 채 부장의 폭언을 들었다. 자세가 망가지면 더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슬쩍 돌린 시선 끝에 여직원들이 동정의 눈빛으로, 혹은 한심하단 표정으로 나를 보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에 나는 보지 못할 것이라도 본 것처럼 고개를 다시 정면으로 휙 돌렸다. 애써 유지하고 있었던 무표정이 한 순간에 뭉개지고, 콧등이 확 붉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부끄러웠고, 창피했고, 모멸감을 느꼈다.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았지만, 마지막 자존심으로 그것만은 겨우 참을 수 있었다.
-흑석 고기고기로 8시 집합
파란 모니터의 불빛아래 죽은 것처럼 까맣던 휴대폰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친구들로부터의 메시지였다. 나는 퀭한 눈으로 그 메시지를 한참 보다가, 겨우 힘을 내어 못 간다는 답장을 했다. 아무래도 오늘 모임에는 가지 못할 것 같았다. 내가 실수한 서류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다. 부장님이 오늘 이걸 다하기 전까진 퇴근할 생각도 하지 말라고 했으니, 아무래도 자정이 넘은 시간에서야 퇴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뭐야! 재우 안 오냐? -왜 안 와? 재우 안 오면 술맛이 없지.
휴대폰 화면이 다시금 연달아 반짝였다. 나는 피곤한 미간을 매만지며 고민하다가 짧게 야근한다고 답 메시지를 쳤다. 피곤하고 스트레스 받다 보니까 친구들과 메시지도 주고받기가 싫었다. 한때는 그렇게 연락이 오기를 바랐던 친구들인데, 막상 연락이 자주 오니까 귀찮고 불편했다. 내 답 메시지에 다시 답이 이어졌다. 늦게라도 오라는 친구들의 메시지를 보며, 나는 혼자 고개를 절레절레 들으며 휴대폰을 뒤집어 놓아 버렸다. 더는 휴대폰 메시지에 신경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생각보다 일이 일찍 끝나 12시 반에 회사를 나올 수 있었다. 나는 주정뱅이만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는, 죽은 듯한 거리를 걸어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서, 방에 오자마자 쓰러져서 잠에 들지 알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나는 방문을 닫자마자 백팩을 던진 채 그 앞에 주저앉았다. 무릎이 땅에 아프게 닿자마자, 꺼억꺼억대는 울음소리가 목구멍에서 기어 나왔다. 부딪친 무릎이 너무 아팠다. 그게 그렇게 서러웠다. 나는 무릎을 감싸 쥔 채 아기처럼 몸을 말고 울었다. 크게 울지도 못하고 소맷자락을 물어뜯으며 울고 또 울었다. 고시원에 산다는 것은, 힘껏 소리쳐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소리 없이 소리지르며 울었다. 얼굴이 퉁퉁 부을 때까지, 도저히 우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개새끼들. 그러고도 니들이 친구냐? 전화 안 받냐? 챠코에 있다. 조금 있다가 4차도 갈 거다. 빨리 다시 와라.
나는 한참을 울고 나서 휴대폰의 화면을 켰다. 시간을 확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휴대폰 화면을 켜자마자 보인 것은 시간이 아니라 친구들로부터의 메시지였다. 메시지 창을 끄고 휴대폰을 살펴보니 친구들로부터 전화가 여러 통 와 있었다. 전부 술버릇이 나쁜 친구들인 것을 보니 전처럼 술 마시고 여기저기 마구 전화를 돌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평소라면 짜증났을 그 메시지가 어쩐지 싫지 않았다. 왠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은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나를 지켜봐줬으면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게 꼭 나쁜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새벽 두 시고, 몸은 마치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지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에 젖은 눅눅한 소매로 얼굴을 닦으며 나는 비틀거리며 문 밖으로 나갔다.
나는 택시를 타고 친구들이 3차를 한다는 챠코로 갔다. 내 엉망인 얼굴을 보고 택시기사가 뭐라고 한 마디 할 줄 알았지만, 택시 기사를 내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를 주정뱅이로 본 것인지, 연관되기 싫다는 듯 사무적인 태도를 보였을 뿐이었다. 차는 어둡고 조용한 밤거리를 달리고 달려 드디어 술집이 있는 번화가에 도착했다. 반짝이는 네온사인의 간판이 내겐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 표지판처럼 보였다. 저 반짝이는 불빛 아래에 나를 위한 한 모금의 절실한 물 한 잔이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급하게 친구들이 있는 술집으로 가는데, 저 멀리 술집 앞에 남자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모여 있는 남자들은 전부 내 친구들이었다. 나는 친구들을 알아보고 그들을 향해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내가 그들의 이름을 부르기 전에, 친구들의 입에서 내 이름이 먼저 나왔다.
“한재우 병신 새끼, 끝까지 안 오네. 시벌 놈이.”
그 거친 목소리에 나는 슬쩍 웃었다. 말은 거칠었지만, 그래도 친구들이 나를 기다려줬다는 게 기뻤기 때문이었다. ‘이제라도 왔잖아, 자식아’ 나도 거친 목소리로 마주 욕을 해주려고 하는데, 친구들의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야, 야근한다잖아. 월급쟁이랑 너같이 가게 하는 놈이랑은 다르지.”
“무슨 회사도 웬 거지같은 데 다니면서 잘난 척은 혼자 다 하네.”
친구의 입에서 나온 말에 나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멈춰서고 말았다. 입 안에 머금고 있었던 반가운 말이 순식간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나는 친구의 당당한 목소리에 사형선고라도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도 모르고 친구들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뭐? 걔 회사 좋은 데 다니지 않아? 만날 돈도 엄청 쓰고 다니던데.”
“그거 다 거짓말이라니까? 걔 무슨 이상한 회사 다녀. 길거리에서 상사 같은 놈한테 머리나 쳐 맞고 있더라.”
“진짜?”
“진짜라니까! 나 아는 척 하려다가 머리 맞는 거 보고 민망해서 도망쳤잖아. 생각해보니까 내가 왜 도망쳐야 돼냐? 도망치려면 거짓말 한 그 새끼가 도망쳐야지.”
맞는 말이었다. 왜 그 녀석이 도망쳐야 했겠는가. 도망치려면, 거짓말한 사람이 도망쳐야겠지. 그래서 나는 도망쳤다. 친구들이 나를 보지 못하기만을 빌면서 필사적으로 차가운 밤거리를 달려 도망쳤다.
새벽이 오고 있었다. 부드럽고 따사로운 빛이 어둠을 그 하얀 손으로 걷어내고 있었다. 나는 나무 벤치에 앉아 해가 뜨는 것을 바라보았다. 조용히,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부드러운 태양빛이 내 더러운 뺨을 매만지자,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새로 시작하고 싶은 마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내 힘으로 다시 한 번 나를 일궈보고 싶은 마음.
나는 머뭇거리고 머뭇거리다가 휴대폰을 다시 켰다. 밤새 충전도 하지 않았던 휴대폰 배터리는 이제 20퍼센트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전화 한번 하면 다 닳아버릴 양이었다. 나는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화면을 만져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대기음이 휴대폰 너머로 흘러나오다가, 어느 순간 음악이 뚝 끊기며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언제 들어도 그립고 다정한 엄마의 목소리였다.
“응. 재우야. 무슨 일이야?”
엄마는 조금 놀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이런 새벽부터 아들에게 전화가 와서 조금 불안한 모양이었다. 나는 엄마의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침 운동 중에, 보고 싶어서.”
“얘는, 별일이야.”
긴장으로 당겨져 있던 엄마의 목소리가 한 순간에 풀렸다. 엄마는 조금 쑥스러우면서도, 그래도 좋은 듯한 기색으로 웃었다. 나는 가만히 그 웃음소리를 듣다가 망설이던 말을 꺼냈다. 어려운 말이었지만, 계속 망설이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있잖아. 엄마, 나…….”
“잠깐만. 아들. 엄마 먼저 할 말해도 될까?”
하지만 내가 말을 마치기 전에 엄마가 먼저 불쑥 말을 끊었다. 나는 조금 놀랐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말이었다. 말을 끝내고 나면 분위기가 좋지 않을 테니 엄마가 할 말이 있다면 먼저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왜 안 되겠어. 엄마 먼저 말해.”
나는 알았다며 엄마의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어째서인지 엄마는 바로 이야기를 이어 하지 않았다. 엄마는 어쩐지 부끄러운 듯 음, 음 하는 콧소리를 몇 번 내다가, 어느 순간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마음에 있던 말을 털어놓았다.
“있잖아. 아들. 정말 고마워. 아들이 이렇게 잘 살아줘서…….”
엄마의 목소리는 정말 행복한 것처럼 들렸다. 감사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엄마는 아들이 이렇게 잘 사는 거, 그거 하나밖에 바라는 거 없어. 엄마는 살면서 지금이 가장 행복해.”
나는 멍하니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을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새겼다. 엄마가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취직하지 못하던 4년 동안, 단 한 번도 내게 압박을 준 적이 없었지만, 항상 어딘지 힘들어보였던 엄마가 지금 내게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목에 가시가 걸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도 하려던 말이 있었지만, 그 말은 가시에 걸린 듯 도저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말 같은 건 할 수 없었다. 다시금 언제 끝날지 모르는 취준 생활을 다시 시작한다는 말 따위는 정말 할 수 없었다.
나는 조금 오랫동안 멈춰있다가, 이윽고 아프고 힘든 말 대신 행복하고 평화로운 말을 꺼냈다.
“응. 그래. 엄마가 행복하면 나도 기뻐.”
하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나는 정말 기뻤다. 엄마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다만, 그 기쁨 속에 조금의 슬픔이 섞여있었을 뿐…….
“정말로 기뻐.”
나는 엄마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같은 말은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했다. 다행히도 엄마는 내 목소리에 섞인 괴로움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곳에 다시 왔다. 돌무더기들이 모여 있는 작은 공터. 그곳에 그 돌 인형은 거짓말처럼 두고 간 모양 그대로 앉아있었다. 이렇게 이상한 돌 인형을 왜 다른 사람들이 가만히 내버려둔 것일까. 치우던지, 아니면 하다못해 보기 싫다며 발로 차 넘어뜨릴 법도 한데. 하지만 나는 이미 이성적인 생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그 돌 인형 앞에 주저앉아 소원을 빌었다.
“행복, 행복, 행복.”
소원을 빌고 나는 필사적인 얼굴을 하고 고개를 들어 돌 인형을 다시 보았다. 하지만 돌 인형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소원이 이뤄졌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일전에 취직 때 돌 인형은 대단한 소원은 들어주지 못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아주 작은 행복이라도 좋았다. 나는 아주 조금이라도 행복해지고 싶었다.
소원이 이뤄진 건지 아닌지 고민하던 나는 뒤늦게 무언가 떠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처음에 산에서 빌 때, 소원을 빌고 돌무더기를 지나쳐 걸었었던 것이 기억났다. 어쩌면 이번에도 그런 과정이 필요할지도 몰랐다. 나는 얼른 돌 인형을 지나쳐 몇 걸음 걸어갔다. 하지만 이전처럼 동전이 무너지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당연했다. 행복은 소리를 내지 않으니까. 그래도 혹시나 하고 뒤를 돌아봤더니, 뒤에는 예상치 못한 것이 서 있었다.
“넌 행복해 질 거야.”
돌 인형이 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아니, 이제 그걸 더 이상 돌 인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거기에 서 있는 건 다름 아닌 바로 나였다. 내가, 나를 보면서 웃고 있었다. 나는 돌 인형이 비어있는 자리를 보고서야 비로소 돌 인형이 나로 완전히 변했음을 알 수 있었다.
“너는 좋은 회사에 취직할 거고, 친구들은 너를 좋아할 거고, 부모님께도 효도 할 거야. 물론 돈도 많이 벌겠지.”
“그, 그래. 고마워.”
나는 돌 인형의 말에 더듬거리며 감사 인사를 했다. 돌 인형이 나로 변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는 당장 내 소원이 이뤄졌다는 게 중요했다. 나와 같은 얼굴이 있더라도 어떠한가. 내가 행복해진다는데.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친구들도 나를 좋아하고, 부모님도 행복해진다는데. 지금 돌 인형이 나로 변한 것은 내가 얻은 것에 비해선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였다. 내 얼떨떨한 표정을 보고 돌 인형이 입술 끝을 쭈욱 끌어올려 미소를 지었다. 그 얼굴 가죽이 움직이자, 아직 입가에 남아있는 돌가루가 바닥으로 투둑 투둑 떨어졌다.
“그렇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저 자리를 채워야 해.”
“뭐?”
돌 인형의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돌 인형이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그 손끝을 쫓았다. 그 손끝이 가리키는 곳을 보는 순간, 나는 심장이 바닥으로 툭하고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 손끝은 방금 전에 돌 인형이 앉아있던 자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내가 뭘 어쩌지도 못하고 입만 벌리고 있자 돌 인형이 다시 빙글빙글 웃으며 물어봤다.
“어떻게 할래?”
돌 인형은 강요하지 않았다. 그 괴물을 나를 강요하고 겁박하는 대신 내게 선택권을 주었다. 나는 선택할 수 있었다. 행복해질 것인지, 아닌지. 나는 길고 긴 시간 동안 고민했다. 아니, 어쩌면 내 생각보다 긴 시간이 아닐 수도 있었다. 긴장하면 시간은 실제보다 훨씬 길게 느껴지기 마련이니까. 돌 인형은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내 선택을 기다려줄 뿐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돌 인형이 재촉하지 않은 것은,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저 빈 자리를 채우면, 나는 행복해진다. 정확히 말하면, ‘한재우’가 행복해지는 것이지만.
나는 비틀거리며 빈자리로 다가갔다. 돌 인형이 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 내가 그 빈자리에 앉자마자, 돌 인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길을 내려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잠깐 바라보다가 그냥 고개를 바닥으로 숙여버렸다.
바닥이 차가웠다. 몸을 웅크리니 조금은 견딜만해 졌다. 추운 것을 빼면, 이 자리는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 어떤 것도 고민하고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그랬다.
나는 뒤늦게, 내가 평안 비슷한 것을 얻어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그러한 평안을 오랫동안 꿈꾸고 있었다는 것도.
그것이 내게 주어진 행복이라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비로소 나를 괴롭히던 모든 고통에서 해방된 것이었다. 눈물 고인 내 눈이 점점 굳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저항하지 않았다. 내가 변하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마침내, 내 모든 것이 변했다.
한재우가 앉아있던 자리엔 새로 생긴 돌무더기 하나만이 조용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공기 중에 스며들어 있던 새벽의 기운도 모두 날아가 버렸다. 긴 밤이 지나고 마침내 완전한 아침이 오고 있었다. 깊고 깊은 산속. 바람이 불고, 누군가가 우는 듯한, 웃는 듯한 소리가 돌무더기 사이를 외롭게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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