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리맘 Jul 25. 2023

독일 공대의 오리 오케스트라

이 귀여운 이름을 학교 교수님과 연구소 소장님 같은 연륜이 있으신 분들이 지었다는 말에 한참이나 웃었다.


학생은 물론이고 교수님과 연구원등 나이에 관계없이 멤버가 될 수 있어 우리나라의 동아리와는 조금 다른 개념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이다.


Whatsapp(카카오톡과 비슷한 채팅 서비스)에 저장된 그룹 채팅의 이름과 사진만 봐도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오리 오케스트라 그룹채팅


이 오케스트라는 아헨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아헨은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국경을 맞닿은 도시이며 로마시대부터 브뤼셀을 거쳐 파리까지 왕래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지리적 특성을 파악한 독일은 일찌감치 유럽 내 규모가 제일 큰 아헨공대와 더불어 연구단지를 만들어서 과학 기술 강국의 자리매김에 기여를 하도록 하였다.


실리콘 밸리를 모범으로 삼아 만든 아헨의 연구단지 Melaten. 면적이 80만 제곱미터에 달한다


그곳에 사는 많은 연구원들은 학창 시절부터 시작하여 졸업 후에는 연구 단지에서 근무를 하며 생의 많은 시간을 아헨에서 살게 된다.


보수적인 독일인들 속에서도 진짜로 이공계 출신들은 할 말이 없을 지경인데 일말의 틈이 보이지 않는다고 흔히들 말한다.


안정된 일자리에서 일하는 그들이 즐기는 취미생활은 단연 스포츠가 제일 많고,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면 몇 시간 안에 유럽 곳곳에 도착하니 여행도 많이 할 것이다.


그리고 클래식의 나라답게 어릴 때부터 악기를 배우고 연주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헨에만 큰 규모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가 세 개가 있고 그중 하나의 오케스트라에 우리 아이가 퍼스트 바이올린 멤버로 나가고 있다.


오케스트라의 접근은 쉽지 않았다.


바이올린 전공으로 음대를 2학년까지 다녔고 이태리에서 열리는 국제 콩쿠르에서 2번이나 일등을 한 아이의 이력에도 티오가 없어서 기다리라는 메일을 받고 오디션 기회조차 없이 서류에서 미루어지는 불상사가 있었다.


일 년을 넘게 기다리다가 오디션을 보고 들어가니 그곳은 예상한 대로 연구원과 교수님을 비롯해 공대와 의대학생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첫 연습을 마치고 예상하지 못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엄마... 외국인이 단 한 명도 없어. 

                나 혼자 외국인이야!


인근 유럽국가의 유학생 비율이 높은 국제적인 분위기의 학교라 예상치 못했던 사실이었다.


악기를 전공자 수준으로 다루는 사람들을 독일에서는 종종 볼 수 있는데 오랜 세월 동안 독일을 음악의 나라라고 하는 이유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더불어 음악을 즐기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의 활동도 한몫을 하는 것 같다.


즐기는 사람이 없으면 훌륭한 연주자가 나올 수 없는 게 공연 문화이기 때문이다.


단원들 중에는 음대를 졸업하고 가업인 와인농장을 운영하는 사람도 있었고 컴공과를 졸업하고 개발자로 일하면서 오랫동안 즐기던 음악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도 있었다.


독일은 어릴 때부터 취미와 전공을 구별하지 않고 레슨을 받고 콩쿠르도 같이 참여한다.


물론 가르치는 선생님도 구별이 없다.


유명한 교수님께 배워도 다른 전공으로 가는 경우는 독일에서 흔한 일이다.


시험기간을 빼고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연습하고 연주 직전인 크리스마스 시즌에 효율적인 연습을 위해 쾰른 인근 산속의 콘도를 통째로 빌려서 뮤직 캠프를 하는데 MT조차 없는 독일 대학에서는 굉장한 친목과 더불어 전공 외의 사적인 시간이다.


그들은 계획한 대로 빵과 커피를 먹으면서 묵묵하게 연습을 하고 유럽에서 흔한 바베큐 파티조차 하지 않는다.


모든 관객의 주목을 받은 검은 머리 아이


이번 시즌은 3일 동안 연속으로 연주를 한다고 하였다.


마지막 3일째는 쾰른 음대의 지휘과 학생들의 졸업 시험이었다.


여기 오리 오케스트라를 잘 리드해서 함께 좋은 연주를 하느냐가 지휘과 학생의 실력으로 음대 교수는 점수를 매긴다고 했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인데도 지역에서 주어진 일들이 있고 책임감을 갖기에 충분한거 같다.


연주회 티켓은 매진이 되었고 수많은 관객들이 함께 했다.

가장 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로 서 있는 우리 아이

연주 내내 관객들은 독일인들 속에서 혼자 아시아인으로서 연주하는 한 아이에게 시선이 집중 되었고 관객들 중 아시아 사람들은 그야말로 흥분이 되어 몸을 같이 움직였다고 한다.


연주가 끝나고 여기저기에서 핸드폰으로 우리 아이의 모습을 확대해서 찍은 사진들을 내밀면서 환호를 하고 아시아 학생의 참여에 감동을 받았다며 한참을 이야기했었다고 한다.


염색을 할까 고민을 했었다는데 오히려 검은 머리가 눈에 띄어 아이의 시그니처가 되었고 많은 독일인들은 관심과 환호를 보내 주었다고 한다.


무슨 세계적인 콩쿠르나 연주가 아닌데도 난리가 난 건 그들의 문화에 들어가서 프로페셔널! 엘레강스하게!

이런 게 가능하다는 기쁨이 아닐까?


뿌듯했던 연주 후

독일의 의사는 인도주의랄까? 의사로의 사명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보다 편하게 진료하고 돈을 번다고 알려진 성형외과가 아예 없고 피부과도 미용적인 거보다 치료의 개념이 많다.


힘든 의대 공부를 마치고 의사가 되어서 환자를 진료하면서 사는 삶을 독일인들은 쉽지 않은 길로 여겨 가업이나 특별한 신념으로의 직업으로 생각하고 그런 자존심을 느꼈었다.


반면 공대도 엄청난 학업의 부담은 있지만 직업의 선택은 넓은 편이다.


16년간 집권했던 메르켈 전 총리가 물리학을 전공했다는 게 미국이나 우리나라 정치인들과 전공이 확연히 다른 것을 볼 수 있는데 독일의 이공계의 활동은 정치권에도 영향을 준다.


엔지니어뿐만 아니라 정치인, 기업가등 다양한 곳에서 이미 인프라가 조성되어 있는 그들의 자부심과 문화에 아직은 외국인에게는 문턱이 높은 거 같다.


이공계에 유학을 온 아시아 학생들은 독어로 공부를 해야 하는 어려움과 높은 환율로 생활도 쉽지 않고 체력도 서양인들이 나은 편이라 힘든 부분들이 많다.


이와 같은 버거운 환경에서도 노력하는 아시아인들에게 기쁨을 준 연주회로 우리 아이도 함께 뿌듯했으리라.


연주가 끝난 후 다들 도서관으로 뛰어가서 밤늦은 시간, 문을 닫을 때까지 공부를 했다는 게 오리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그날의 스케줄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