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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아안 Jan 25. 2023

평온할 수 있다면

  뜻대로 되는 일이 별로 없다. 완벽한 일상을 간절히 원해도 내 뜻대로 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인정하고 사는 게 속 편하다. 운이 없으면 사람을 수단으로만 여기는 이기적인 인간을 만나 맘고생한다. 아무리 스케줄을 잘 짜고 효율적으로 동선을 구성해도 의도치 않은 사고나 뜻밖의 재난을 당하면 많은 시간과 기회를 상실한다. 항상 같은 마음으로 평정심을 유지한 채 일상의 절차와 순서에 대한 올바른 기다림과 담박한 행동을 추구해도 다양한 외부 요인과 타인의 간섭, 통제, 몰상식한 매너 등에 의해서 뜻대로 실현할 수 없는 게 보통의 삶이다. 그런 것들에 초연하면 된다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가슴은 아니다. 수양이 덜 된 탓이겠지.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온전하게 사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미 어두워진 도심에서 길게 늘어선 빨간색 정지등 수 백개를 볼 때 그런 생각이 든다. 카페 창가 자리에 봄날 제비처럼 횡으로 쭉 앉아서 노트북과 책을 펴놓고 공부인지, 보고서인지에 몰입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말없이 컴퓨터를 응시하고 있는 동료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아무 일 없이 온전하게 완벽한 일상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심정을 모르니까 그럴 것이다.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 단서도 없는 게 오늘날 우리가 일상을 보내는 방식이다. 서로 오해한 상태로 그들과 섞여 살고 있다. 서로의 평온을 부러워하면서. 우리는 서로 오해하고 있는지 모른다.


  창조의 원천이 사랑의 힘이라는 것은 고전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더 좋은 성과를 낸다. 전에 없던 초월적 창조물을 만들어 내고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경우는 사랑의 스토리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다. 초한지에서 중국을 통일한 유방이 위대하게 묘사되지만 항우가 더 매력적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전장에서 사랑하는 여인 우희와의 아름답고도 슬픈 사랑이야기 때문이다. 그 스토리가 후세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뭔가를 좋아하는 감정은 창조의 원천이다. 진심이 담긴 마음은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에너지를 갖는다. 그래서 사랑의 힘이 위대하다.


  사랑함으로 창조하는 역동적인 삶과 완벽한 일상, 남과 다름없는 평온한 삶은 왠지 서로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 않다. 서로 밀접하게 닿아 있다. 자신을 성찰하고 일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를 행복으로 이끈다. 그것은 변함없는 진리이다.    


  평온한 삶, 완벽한 일상을 위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독서, 사색(명상), 완벽한 식사, 운동 그리고 타인과의 원만한 관계. 순서대로 잘 가다가 뭐라도 하나가 틀어지면 그다음 요소들도 대개 틀어진다. 마치 기계식 시계의 작동원리와 같다. 하나의 톱니바퀴가 한번 헛돌면 맞물린 4개의 톱니바퀴는 자연스럽게 어긋나게 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필자가 제시하는 다섯 가지는 이렇다.


  첫째, 습관적으로 책을 읽는 행위는 인식하고 상상하고 일상의 현상을 논리화해 차분한 삶의 태도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책을 읽는 것은 필연적으로 타인의 인식 흐름을 따르고 사고과정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해와 수용, 질문과 문제해결의 과정을 거치게 한다. 일상에서 책을 읽는 습관은 사건과 사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스케줄을 정할 때 여유를 준다. 멈춰 서서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을 준다. 일상 곳곳에 독서하는 시간을 두면 아주 명확하지는 않을 수 있으나 똑똑 떨어지는 삶, 절차와 순서에 대한 올바른 기다림으로 하루를 차분하게 보내는 삶을 살 수 있다.


  두 번째, 사색과 명상은 우리도 모르는 우리의 마음을 케어하고 재충전하게 한다. 또한 외부 위험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스마트 워치에서 “마음 챙김”을 아무리 독촉해도 Skip이 습관인 게 보통의 우리 일상이다. 먼 산 바라보고, 한숨을 쉬어보고, 낙엽을 밟아 보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면 직접 내 눈으로 먼산을 잠깐이라도 바라봐야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 한번 길게 쉬어 봐야 하고,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잠깐이라도 길을 걸어봐야 내 마음속에서 하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 사람 마음은 스스로도 알 수 없다. 먼 산과 푸른 하늘이 거울처럼 우리의 마음을 비춰주고 밟고 지나가는 낙엽소리와 내 숨소리가 마음의 숨결을 느끼게 해 준다. 평온하고 완벽한 하루를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절차다.


  우리는 먹는 것으로 구성된다.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에너지가 되고 형태가 되며 하루가 된다. 사람마다 완벽한 식사에 대한 정의는 다를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프링글스 한 통은 한 달 동안 뚜껑을 반복해 여닫으며 조금씩 먹어야 되는 간식이지만 누군가는 앉은자리에서 다 먹어 버리는 게 적정량일 수 있다. 육식주의자와 채식주의자, 그리고 그 중간 어디쯤 있는 사람들 각자가 자신의 완벽한 식사기준이 있다. 그러나 필자가 제안하는 완벽한 식사는 매일 반복되는 음식물의 질과 위생과 양이 20년, 30년 후의 내 건강에 반드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염두 판단해야 한다는 점이다. 오늘 한 끼는 대충, 혹은 오랜만이니까 오늘은 좀 과식해도 괜찮다고 생각하지 말고 스스로 먹어야 하는 적정 데이터를 확정해서 가급적 그 범주를 넘지 않는 선에서 식사를 해야 한다. 설령 회식을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먹어야 한다면 다음 끼니는 없애거나 줄이거나… 해야 한다.


  넷째, 운동은 호흡과 같은 것이다. 매일매일 해야 하는 것이다. 천만 배우 유해진이 “삼시 세 끼”에 출연하면서 제작진에 요청한 것 한 가지가 매일 아침 뛸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소설을 쓰는데 재능과 함께 꼭 필요한 것이 체력이라며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10km 정도 달리기를 한다. 매일의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 그들이 호흡처럼 하는 것이 운동이다. 완벽한 일상을 위해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 운동이다. 운동 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아무 운동을 하지 않는 게 신기하다고 얘기하면 그들은 늘 “숨쉬기” 운동을 강조한다. 오랫동안 숨 쉬면서 살고 싶으면 매일 운동을 해야 한다. 운동을 통해 뇌와 전신의 근육과 마음의 활력을 자극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운동으로 땀과 함께 몸에 쌓인 노폐물, 화학물질을 배출하고 스트레스로 인해 망가진 각종 세포의 재생을 촉진해야 한다. 이상하게 변형된 세포를 올바르게 재생시켜야 암으로 커지지 않는다. 완벽한 일상에 운동이 빠지면 절대 완벽한 일상이 될 수 없다.


  마지막으로 타인과의 원만한 관계다. 좀 어려운 과제다. 앞서 네 가지는 내가 노력하면 되는데, 마지막 한 가지는 나만 잘한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다. 타인과의 원만한 관계 유지를 위해서 비굴하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좋은 말로 겸손하게 처신한다고 해서 관계를 좋게 유지할 수 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기적이다. 타인을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자신의 안위와 목적 달성을 위해서 전략적으로만 처신하는 사람들이 대도시의 아파트단지처럼 여기저기에 널렸다. 그 사람들에게 끌려다니다 보면 시나브로 영혼이 소진된다. 필연적으로 같은 공간, 같은 사무실, 같은 시기에 존재하여 만나게 되는 악인이라면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부디 아무 일없이 스쳐 지나가기를 바라야 할지도 모른다. 다만 절대 끌려다니지 말고 적정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만나지 않을 수 있으면 최대한 만나지 말고, 미룰 수 있으면 최대한 접촉을 미루는 수밖에 없다. 결국 그 사람과는 곧 헤어질 것이고, 그러면 또 다른 세상이 온다. 신(하나님, 부처님, 조상님 등)께서도 양심은 있어서 웬만하면 계속 그런 사람을 붙여 주지는 않는 것 같다(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X이 아니면). 평온하고 완벽한 일상을 위해 그나마 최선을 다할 것은 마지막 다섯 번째 ’ 타인과의 원만한 관계‘다. 나머지 네 가지는 살짝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빚에 시달리지 않고, 악인에 휘둘리지 않고, 걱정으로 불안하지 않고 온전히 평온할 수만 있다면 무엇을 대가로 지불하겠는가? 김초엽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평온함에 이르기 위해서는 “나의 결함에 대한 단서”를 찾아야 하는지 모른다. 소유가 아니라 지금에 온전히 존재하기 위해 생각을 바꿔야 하는지 모른다. 지금에 온전히 존재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이유는 오늘, 지금을 사는 것만이 진실이고 확정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습관이 평온한 삶, 완벽한 일상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준다. 타인에 의존하거나 시스템의 영향을 받으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오로지 혼자서 우뚝 서야 한다.

평온하고 완벽한 삶을 위해 섬세함이 필요하다.(출처: 블로거1004)


 그때 나는 그것이 나를 제외한 모든 로몬들의 일상적인 상태라는 것을 알았다. 그 평온함을 내가 영구적으로 획득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다 걸어도 좋을 것 같았다. 나는 평생 내가 가진 결함의 근원을 찾아 헤맸다. 나는 처음으로 평온함을 느낀 장소, 3420ED에 오면 나의 결함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김초엽 저, 방금 떠나온 세계, 한겨레출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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