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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상담을 할 때 빙빙 돌려서 말하나요?

정신과 방문 전 알면 좋은 것들(3)

by 정신과 의사 Dr MCT

난 참 유튜브를 좋아한다. 요즘 가장 많이 보는 컨텐츠는 드라마를 요약해주는 컨텐츠인데 성격이 급해서 한 드라마를 끝까지 잘 볼 수 없는 나로서는 보고 싶었던 드라마를 요약해주면 빠르게 줄거리를 파악할 수 있어서 참 좋다. 요약본을 보고 나서도 흥미가 생기면 본 드라마도 다시 보는 편인데 최근에 흥미롭게 본 요약본은 '맵다 매워, 지미의 상담소'이다. 이 드라마는 한글 제목과 영어 제목이 많이 다른데 영어 제목이 드라마의 내용과 더 어울린다고 볼 수 있을것 같다. 영어 제목은 'shrinking’인데 shrink라는 단어는 미국에서 '심리상담사'라는 뜻으로 쓰이기 때문에 ‘shrinking’이라는 제목을 직역하자면 '상담을 하다'라는 뜻이 될 것이다. 물론 이 단어가 실제로 쓰이는 용어는 아니다.


드라마의 내용은 제목 그대로 심리 상담을 하는 내용인데 재밌는 것이 심리 상담을 받는 환자의 입장에서 드라마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고 심리 상담사의 입장에서 진행된다는 것이다. 자신만의 심리적 문제를 가진 '지미'라는 상담사가 마음의 상처를 가진 환자를 담당하며 생기는 일들, 그리고 '지미'의 성장을 보여준다. 재밌는 점은 여태껏 다른 드라마나 영화 등의 매체에서 심리 상담사 혹은 정신과의사가 늘 냉정하고 차분한 모습, 전문가적인 모습을 보여줬다면 여기서는 어리버리한 모습, 화를 내는 모습 등의 인간적인 모습도 보여준다는 점이다. 환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상담자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볼 수 있는 재밌는 드라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전문가의 입장에서 봤을 때 '지미'는 엉망진창이다. 실제로 그런 상담사가 있다면 다른 직업을 알아봐야 할 것이다. 심리 상담사가 하지 말아야할 행동은 모조리 다 하는 느낌이다. 드라마답게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현실이라면 그럴 가능성은 굉장히 낮았을 것이다. 아마 현실에서는 환자의 증상은 악화되고 상담사도 상당한 곤욕을 치뤘을 것이다.


내용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요약본을 보고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그 영상에 달린 댓글이다. 제일 위쪽에 달린 댓글이 '왜 답답한 사람들의 상담에 단도직입적이고 시원한 방법이 아닌 장황한 말과 조언과 분석의 연속인가 싶었더니 환자 본인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는 거였군요'라는 내용이었다. 아마 그 드라마가 말하고 싶었던 내용 중의 일부가 아닐까 싶었다. 댓글을 단 사람이 이 방면으로 기본 지식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통찰력이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왜 답답한 사람들의 상담에 단도직입적이고 시원한 방법이 아닌 장황한 말과 조언과 분석의 연속인가 싶었더니 환자 본인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는 거였군요



실제로 나의 진료실에 들어오는 환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 해답을 찾고 싶어서 오는 경우들이 많다. 보통 그들은 한두번의 진료 후에 마법처럼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을 듣기를 바란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난 뒤에 '그래서 선생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질문한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대부분의 문제들은 얽히고 설켜있어 그 실타래를 풀고 끝을 따라가려고 하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설령 그 실타래의 끝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명확한 해답이나 방법이 없는 경우들도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상담에서는 명확한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만약 상담을 하러 갔는데 몇번의 상담만에 명확한 답을 알려주는 경우 그 상담사는 좋은 상담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뭔가를 배울 때도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잡는 법을 알려줘라'라는 말이 있다.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어떠한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이 헤쳐나가는 방법을 모른다면 똑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그래서 정신과의사나 상담사들이 그 해답을 찾는 길을 알려줄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더 상세하고 많은 도움이 필요하고 어떤 사람은 약간의 힌트만 있어도 길을 찾아갈 수 있다. 한번 길을 찾아가본 사람은 다음에는 도움 없이도 마음에 생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정신건강의학과를 처음 찾아가는 것이라면 한두번만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해서 치료가 효과 없다고 생각하거나 너무 답답해할 필요는 없다.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마음의 상처가 낫는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조금은 더 시간을 두고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 그동안에 꾸준히 병원을 가고 도움을 받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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