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진료실에서 못한말(15)
개인적으로 운동 선수의 정신건강에 대해 굉장히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스포츠 정신의학이라는 특수한 정신과의 영역에 대해서도 공부를 하고 운동 선수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꽤 있었다. 일반인과 비교 했을 때 우리나라 엘리트 운동 선수의 인생은 다른 점이 꽤 많은데 그 중에서 한가지는 은퇴 시기가 다른 직업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을 해서 선수의 생명이 길어졌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은 평균적으로 30대 초중반에 은퇴를 하는 편이고 부상, 사생활, 기량 저하 등 여러가지 이유로 20대에도 은퇴 하는 경우들이 더러 있다. 또 많은 운동 선수들이 프로 선수가 되기 전에 유소년부터 10년 동안 하던 운동을 그만둬야 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아무리 어리더라도 사실상 은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많은 운동 선수들이 은퇴 후에 길을 잃고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한 막막함으로 인해 우울증에 빠지기도 하고, 도박이나 음주 등의 중독에 쉽게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어떤 운동 선수들은 은퇴를 하고도 제 2의 삶을 잘 살고 어쩌면 훨씬 더 에너제틱하게 일을 하며 그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그 두 그룹 간의 차이는 대체 어떤 것일까? 개인적으로 나는 가장 큰 차이가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 본 사람과 그럴 기회가 없었던 사람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어릴 때부터 배우는 것이 참 많다. 공교육으로 부족한 부분은 사교육으로도 채우기도 하고 공부 뿐만 아니라 체계적인 태권도 도장들을 통한 운동, 피아노 학원을 통한 음악 등의 다양한 활동들을 할 수 있다. 물론 세세하게 들어가자면 많은 문제점들을 짚어낼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런 부분들은 배울 수 있는 기회라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전혀 배우지 않는 부분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부모님, 선생님, 사회, 심지어 국가가 보여주는 이정표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이정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뒤쳐지지 않을 수 있을까’인 경우가 많다. 그 질문의 답이 돈이 경우가 대다수이지만(적어도 지금까지는), 아무도 신기할 정도로 ‘왜 이렇게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해 주지는 않는다. 단순히 ‘무시 받지 않기 위해?’ 혹은 ‘돈이 있으면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서?’라는 기계적이고 막연한 대답들은 그 질문에 대한 궁극적인 대답이 될 수 없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알지 못한 채 맹목적으로 달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유도 모른채 돈을 쫓던 사람들이 그 ‘많은 돈’을 벌게 되면 행복해진다는 보장이 있을까? 정신과의사로서 과감히 절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도달한 사람들조차도 그 ‘많은 돈’으로 무엇을 할지 앞으로는 어떤 삶을 살지 모르기 때문에 결국에는 불행해질 수 밖에 없다. 돈으로 잠깐의 희열을 살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인 행복은 결코 살 수 없다. 뇌과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잠깐 동안 도파민 발산의 고점은 찍을 수 있겠지만 행복과 안녕 등 다른 감정을 담당하는 세로토닌, 옥시토신 등은 오히려 줄어들수도 있다.
열심히는 살고 있지만 내가 왜 살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 목표를 이뤘지만 허무하고 공허한 사람들은 이제는 ‘어떤 삶을 살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해결해왔던 많은 질문과는 다르게 이 질문에는 답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대답하려고 노력해야하고 그 과정에서 삶의 의미, 행복,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연극은 하나의 막으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다. 여러개의 막이 있으며 그 막에는 여러개의 장이 있고 각 장에는 또 다른 주제와 재미들이 있다. 하지만 연극 전체에는 그 연극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있다. 우리 인생도 이와 비슷하다 생각한다. 각 장, 막에 희노애락이 있겠지만 각각 내용이 따로논다면 재미 없는 연극일 것이다. 우리 인생을 관통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내 인생은 어떤 ‘연극’이 되었으면 좋겠는지 고민하는 시간들이 있기를 바란다.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