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진료실에서 못한 말(17)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한 개그프로에서 유행어로 당시 많은 사람의 공감을 끌어냈다. 그 개그프로가 폐지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문장이다. 결과를 중요시하는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일이라고만 보기는 힘들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을 중요시하고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는 정말로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것일까?
학창 시절 시험 칠 때 정답을 바꿔서 틀린 경우가 한 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똑같이 한 문제를 틀린 것인데 내가 몰라서 틀린 문제보다 답을 바꿔서 틀린 경우가 더 아쉽다. ‘바꾸지 말걸…’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똑같이 한 문제일 뿐인데 왜 그런 것일까?
우리 뇌는 생각보다 과정을 중요시한다. 똑같은 결과라도 어떤 과정을 통해서 결론이 나왔는지에 대해 평가한다. 노벨상을 받은 다니엘 카너먼을 통해 증명되었다. 우리는 바꾼 선택의 결과를 훨씬 후회한다. 선택을 바꾼 것만으로도 결과가 안 좋게 보일 때도 있다. 뇌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만큼 내 마음의 변화에 더 민감하다. 그래서 과정과 결과 사이에 명확한 인과관계가 없을 때도 선택을 후회한다. 그리고 그 후회 무한 굴레에 빠진다. 마치 후회하면 지금의 결과가 바뀔 것처럼.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다. 중간에 어떤 선택을 했던 과장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선택을 바꾸지 않았어도 그 일은 일어났을 수 있고,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아무 영향이 없었을 수도 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만일이라는 가정을 할 필요가 없다. 과정에 집중한다면 후회는 더 커지는 법이다. 이미 일어난 일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노력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시험 칠 때 문제를 틀렸다면 다음에는 맞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왜 문제를 틀렸는지 봐야 한다. 마지막에 선택을 바꿔서 문제를 틀렸을까? 아니다. 그 문제를 몰라서 틀렸다. 그러면 다음에는 더 공부를 많이 하면 된다. 우리는 같은 오답을 두 번 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선택에 대해 후회할 필요가 없을 뿐이다. 후회는 사후 판단 후 생기는 감정이자 스스로 내리는 형벌이다.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과정에 대해 후회하지 말라’는 말은 이상적이다. 우리가 현자고 잃을 것이 없어야만 그럴 수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후회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니엘 카너먼은 이렇게 얘기한다. ‘장기적 결과를 가져올 결정을 내릴 때 아주 신중하든가 아주 대충하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라고.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사람도 자신의 선택에 후회할까 봐 이렇게 말하는 데 우리도 지나치게 후회에 무게를 두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