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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Dr MCT Nov 18. 2024

돈과 행복(3)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과학적 근거

저는 돈이 부족해서 행복하지 않다고 얘기하는 사람에게 꼭 물어보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상태에서 돈이 얼마 정도 생기면 행복하시겠어요?’라고. 그러면 사람들은 보통 ‘한 10억 정도? 그냥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것 같아요’라고 두루뭉술하게 얘기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얼마가 필요한지 잘 모릅니다. 그저 막연하게 ‘돈이 많으면 행복하지 않을까?’라고 상상만 합니다. 하지만 수많은 연구에서 그런 생각은 잘못되었다고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시행한 한 연구에서 1946년부터 1989년 사이에 개인 소득과 행복의 상관관계를 관찰했습니다. 이 구간에서 소득은 약 2.4배 증가했지만 행복 수준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또 미국에서 10년 동안 봉급 인상이나 인하된 개인들의 행복을 비교했을 때도 연구자들이 예상했던 것과 반대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돈이 적기 때문에 그렇지. 압도적으로 부자가 되면 다를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평균 재산이 1600억 원인 ‘포브스’ 선정 100대 갑부들의 행복이 일반 시민들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는 결과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단순 소득이 많다고 행복해지지는 않습니다. 


갑자기 큰 어마어마한 큰돈이 들어오는 복권에 당첨된다고 해서 다를까요? 전체적인 측면에서 복권 당첨자들은 초기 기쁨 이후로 복권 당첨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일부 당첨자들은 부정적인 결과도 있었습니다. 당첨자의 70%는 직장을 그만둬서 직업에서 오는 만족과 직장 동료를 잃었습니다. 또 대부분이 새 집으로 이사하지만 새로운 이웃들 사이에서 적응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복권 당첨이 된 사람들의 연구에 참여한 한 24세 여성은 23억 복권에 당첨되고 인생이 바뀌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좋은 차를 사도 운전을 즐기는 법은 몰랐고, 많은 옷을 샀지만 결국 창고에만 박아 두었습니다. 고급 레스토랑에 가도 자신이 원래 먹던 음식이 더 맛있었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녀는 일을 하지 않았으며 복권 당첨 후에도 여전히 공허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갑작스럽게 생긴 많은 돈도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병원에 오시는 분들 중 우울증이나 불안증이 있는 분들께서 처음에는 돈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러한 증상이 생겼다고 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딱 20분만 얘기해 보면 증상이 생긴 가장 중요한 문제는 돈이 아니라 대인관계나 과거의 트라우마와 같은 다른 이유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가끔 예외인 경우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돈은 행복을 결정하는 요인이 아니지만 극단적으로 돈이 부족한 경우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극단적으로 돈이 부족한 경우란 얼마 정도를 얘기하는 걸까요? 많은 사람들은 내가 여기에 포함된다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돈이 많고 잘 사는 사람은 늘 많아 보이니까요. 심지어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제 지인들 중에서도 몇몇은 자신이 상대적으로 돈이 늘 부족하다고 느낀다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행복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돈이 부족한 경우는 말 그래도 먹고사는 것이 힘들 정도를 얘기합니다. 


이는 국가 간의 비교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1인당 국민 총생산(GDP)이 15000달러를 넘어가면 생활만족도와 부는 상관관계가 없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1인 국민 총생산이 높은 선진국들, 예를 들어 아일랜드, 노르웨이, 미국 등의 국민을 서로 비교해 보면 부와 생활 만족도는 큰 관계가 없다고 합니다. 반대로 슬로베니아, 남아프리카, 터키, 에스토니아 등의 상대적으로 가난한 국가들에서는 수입과 행복의 상관이 상당히 높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가난이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극빈 국가에서는 부가 더 큰 행복을 예측하는 잣대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기본적인 사회 안정망이 탄탄한 선진국에서는 부의 증가가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해도 좋을 만큼 하찮다.’ 


우리나라는 1995년 처음으로 1인당 GDP가 1만 달러를 돌파하고 12년 후 2007년에는 2만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그 후 7년 만에 3만 달러를 넘으면서 다른 선진국들에 근접해가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 돈이 행복에 영향을 강하게 미친다는 생각에서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이유는 집단주의의 영향도 크겠지만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직 가난한 시절을 벗어난 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한 인간의 인생에서 50년은 긴 세월이지만 한 나라의 문화가 바뀌기에는 짧은 시간입니다. 1인당 600달러였던 1970년에는 우리나라는 확실히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가 컸습니다. 이때를 기억하는 부모 세대는 경제적 결핍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 아픔은 1인당 GDP가 50배 이상 늘어난 현재의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합니다. 현재 세대에서는 돈과 행복이 유의미한 상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부모의 결핍을 마치 자신의 결핍처럼 느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핍의 대물림이 우리나라에서 희석되는데 아마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대학교 시절 실습을 나갔을 때 동기들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한 적 있습니다. 당시 코골이가 매우 심한 친구가 있었는데 정말 잠을 자다가도 중간에 그 친구의 코골이 소리에 깰 정도였습니다. 그 친구의 코골이는 파도처럼 잔잔하게 골다가 갑자기 ‘커컹’하고 크게 골 때가 있었습니다. 갑작스러운 큰 코골이에 저를 비롯한 동기들이 깜짝 놀라서 깬 기억이 있습니다. 잔잔한 코골이에는 적응하다가 갑자기 큰 변화에 뇌가 깜짝 놀란 것입니다. 


우리 뇌는 절대적인 수준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항상 상대적인 변화에 더 민감합니다. 특히 의사결정의 과정에서 우리는 상대적 가치에 더 중점을 둡니다. 이때 사용되는 뇌의 영역도 절대적 가치 평가에 사용되는 뇌의 영역과도 다릅니다. 돈도 절대적 수치가 중요하지만 우리는 상대적 변화에 대해 더 민감합니다. 그래서 수입이 증가하면 일시적으로 행복이 증가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효과 또한 오래가지 않습니다. 인간에게는 적응이라는 축복이자 저주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 연구에서는 수입의 증가가 있더라도 4년 후에는 행복 수준이 거의 원위치된다는 결과를 보였습니다. ‘그러면 4년 정도에 한 번씩 임금 조정을 해서 행복할 수 있겠네? 그 정도는 할 수 있겠는데?’ 싶으시다면 한 가지 추가로 말씀드려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4년 동안 유지되는 것은 50%의 임금 인상이 있을 때를 가정하고 있습니다. 즉 수입의 증가로 높은 행복감을 유지하고 싶다면 매년 12.5% 정도의 임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능력이 매우 뛰어나신 분들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저는 그럴 자신은 없습니다. 수입의 증가로만 행복을 살 수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면 행복하려면 돈이 불필요한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얼마를 버느냐보다 번 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여행, 콘서트, 스포츠 활동, 문화 활동 등과 같은 경험적 구매를 하는 것이 쇼핑을 하는 것과 같이 물질적 소비보다 행복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보였습니다. 또 경험적 구매는 시간이 지나며 만족감이 더 증가하고, 물질적 구매는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습니다. 물질적 구매는 끊임없이 다른 물질과 비교를 하게 하는 반면, 경험적 구매는 그 경험에 대한 나의 주관적 판단에 중점을 두기 때문입니다. 또 스포츠 활동, 공연과 같은 경험적 구매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행복을 더 증진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런 결과들은 가족보다 돈이 우선시 되는 사람들이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할 주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돈이 대인관계, 그중에서도 특히 가족관계도 돈으로 해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많은 아버지들이 자녀와 보내는 시간보다 더 많은 부를 쌓는데 집중을 합니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우면 결국엔 자녀들도 자신을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 연구에서는 부모의 직업적 스트레스와 긴 근무시간이 가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부모가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보내는 시간이 자녀의 정서적 행복과 삶의 만족도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그 결과 경제적 자원이 많더라도 부모와의 시간이 부족하면 자녀의 행복은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가족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나에게 행복을 주는 관계는 돈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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