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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홀로길에 Sep 14. 2024

안녕? 프란체스카

아스토르가 - 폰세바돈 25.4km

삐걱거리는 마룻바닥 소리에 잠에서 깼다. 일어나지 않고 침대에 누워 눈만 살포시 떴다. 천정에 있던 유리창 밖으로 조금씩 붉어지는 구름들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바람이 많이 부는 모양이다. 오늘은 해발 1,400m에 위치한 ‘폰세바돈’이라는 마을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바람은 전혀 반갑지 않았다. 이곳 ‘아스토르가’도 해발 800m에 위치한 탓에 바람이 불면 금방 기온이 뚝 떨어졌다.



다행히 밤새 무너지지 않고 잘 버텨준 알베르게를 나서며 입구에 있던 오래된 나무 기둥에 손을 대 보았다. 손끝에 느껴지는 거친 나뭇결이 오랜 역사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13세기라면 고려시대인데, 스페인에서는 이토록 튼튼하고 멋진 건물을 지을 수 있었다니 놀라웠다. 더군다나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순례자를 위한 알베르게로 운영되고 있는 건 더욱더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공기는 차가웠지만, 아침햇살로 인해 몸에선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하나둘씩 인사하며 나를 빠르게 앞질러 갔다. 나도 힘을 내 보았지만, 근본적으로 타고난 그들의 체격과 체력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오히려 빨리 걷기에 부적합한 적당한 길이의 다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길 위의 모든 순간을 느끼며 천천히 걸었다. 출발했던 때보다 바람이 강해져서인지 그늘을 지나갈 때면 살짝 춥다고 느껴졌다.




마을 입구에 있던 Bar의 벽에 태극기가 걸려있었다. 해외에 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던데, 맞는 말 같다. 한국에서는 그 흔한 태극기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스페인의 시골 마을에 걸려있는 태극기는 왠지 자랑스럽고 멋있어 보였다. 더군다나 주문한 빵도 맛있었고 주인 할머니의 친절이 찬바람에 떨었던 나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급한 경사는 아니지만 계속해서 오르막길을 걸었다. 한동안 걸어가는 방향의 오른쪽은 숲이었다. 키가 매우 큰 나무가 빽빽하게 서 있어서 그런지 안쪽은 컴컴해서 잘 보이지가 않았다. 바람이 숲으로 불어 들어가 나무 사이를 훑고 지나가며 이상한 소리를 만들어 냈다. 나무의 잎들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로 인해 음산한 느낌이 들었다. 앞을 보니 조금씩 오르막의 경사가 심해지고 있었다. 



‘라바날 데 카미노’라는 마을에 접어들었을 때 골목 한쪽 구석에 앉아 주섬주섬 배낭을 뒤적거리는 사람이 보였다. 인사를 하고 도와줄까? 물으니, 배낭에서 커다란 빵 하나를 꺼내며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걸어오는 동안 빵이 짐들 사이로 움직여 배낭의 바닥까지 내려간 모양이었다. 그녀는 이탈리아에서 온 ‘프란체스카’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난 웃으며, 이탈리아 여자들은 왜 전부 ‘프란체스카’냐고 되물었다. 김 씨, 이 씨 성을 가진 한국인을 만난 외국인도 이런 느낌일까?



이제 본격적인 급경사 구간으로 접어들었다. 그동안 넓게 펼쳐진 길을 걸어왔는데, 마치 한국에 있는 산에 오르는 것 같은 등산로가 계속 이어졌다. 주변 풍경이 보이지 않는 길을 한참 동안 걷다 보니 어느 순간 숲이 사라지고 날카로운 바위로 된 길을 올라가야 했다. 먼발치에 오늘의 목적지 ‘폰세바돈’이 보였다. 해발 1,400m에 위치한 이곳은, 순례길 첫날 올랐던 피레네와 높이가 비슷했다. 마을 입구에 서서 보니 길이 산 아래로 까마득하게 보였다.



건물도 몇 채 없었고 그마저도 대부분 알베르게인 독특한 마을이었다. 그래서인지 분위기가 뭐랄까 관광지 같은 느낌이었다. 워낙 지대가 높아서인지 휴대전화의 안테나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알베르게의 와이파이는 1층에서는 나름 잘 됐는데, 2층에서는 그마저도 원활하지 않아 계속 1, 2층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다. 게다가 이층침대는 난간이 없어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다행히 난 한쪽이 벽에 붙어있는 침대를 선택할 수 있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 휴대전화로 검색을 해보니 한국인 평가가 좋은 식당이 있어 그리로 향했다. 식당은 입구부터 마치 중세 시대에 온 것처럼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내부는 더 옛 모습 그대로였다. 몇 테이블에 손님이 있었는데, 순례자는 나 혼자였다. 평가가 좋았던 생선요리를 주문하고 식당을 둘러보았다. 돌로 된 벽에 커다란 중세 시대 기사의 칼이 걸려 있었다. 천정은 무너진 채로 비닐을 덮어 비를 막고 그 아래를 나무 발을 이용해 가려놓았다.



문제는 음식이었다. 입맛의 문턱이 대단히 낮은 난, 어지간해서는 맛없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건 맛이 없었다. 생선의 담백함은 어디 가고 기름에 찌든 냄새로 인해 인상이 찌푸려졌다. 곁들여 나온, 아무런 간도 되어있지 않은 감자는 먹을 만했다. 16유로에 먹기에는 모양도 맛도 형편없었다. 나의 체력 보충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먹었다. 심지어 양도 많지 않아서, 돌아오는 길에 있던 슈퍼마켓에서 빵과 음료를 사 먹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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