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깐 결국 신혼집이 제일 문제야

나의 결혼 이야기

by aloha


그러니깐... 내가 너희 어머니한테 제일 고마운 게 뭔 줄 아냐? 빈털터리인 나를 믿고 따라와 준거, 그거야. 우와~ 우리 어머니가 나를 장가보낸다고 내 손을 잡고 선을 보이려 다니셨는데 세 번짼가 만에 너희 어머니를 봤지. 집에서 동생들 돌보고, 살림도 돕고 있는 참한 아가씨가 있다고 해서 보러 갔더니 그게 너희 어머니였어. 나는 그 뒤로 딱, 우리 어머니한테 선 그만 본다고 했어. 더 볼 필요도 없다고 했지. 강한 거절의 의사로 손을 뻗어 힘차게 내젓는 시늉을 하시는 시아버지를 보고 여자는 손뼉을 치고 탄성을 연발했다. 그야말로 너희 어머니한테 내가 첫눈에 반했단 말이다. 우와... 그럼 어머님도 아버님한테 첫눈에 반하셨어요? 반하길 뭘 반해. 공무원한테 시집 가려다가 네 아버지 만나서 이렇게 평생 고생만 하는데... 허허. 결혼하자니깐 군말 없이 따라와놓고는 무슨. 언제 봐도 여자의 눈에 시부모님은 사이좋게 나이 들어가는 부부의 모습이었다. 내가 부모님이 결혼 자금으로 주신 돈으로 사업 좀 해보겠다고 하다가 빈털터리가 된 거지. 당장 집을 비워줘야 하는데 방 얻을 돈도 없었다 그때. 그 때의 기억이 아직도 손에 잡힐 듯 시아버지의 눈이 먼 곳을 향하더니 힘찬 몸짓과 목소리도 어느새 가라앉고 있었다. 여자는 시아버지의 급격한 감정 변화에 잘 훈련받은 방청객처럼 또 안타까운 소리를 내었다. 아... 어떡해요... 잠시 회상에 잠긴 시아버지를 대신해 시어머니가 말을 이으셨다. 그래서 너희 아버지가가 당장 방 얻을 돈도 없다고 하길래 내가 결혼할 때 받은 패물을 내놓지 않았겠냐. 반지까지 뽑아서 줬어. 그거 팔아서 일단 단칸방이라도 하나 얻자고. 그때 시어머니의 이야기에 그때처럼 다시 힘이 나시는지 시아버지가 다시 등장하셨다. 그때 내가 너희 어머니한테 얼마나 미안하고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내가 열심히 일해서 그 양옥집 사지 않았냐? 그때가 내가 서른 좀 넘었었나? 동네 사람들이 아, 젊은 사람이 이렇게 좋은 집도 사고 능력 있다, 그랬었다. 허허. 그럼 뭐해요? 결국 또 다 날렸는데... 그래서 결국 아파트로 갔잖아. 그러다 겨우 이 집으로 다시 오게 된 거고. 그래, 그랬지. 너희 어머니 나 때문에 고생 많았다. 정말... 너희도 그건 알아야 한다. 많이 힘들었어. 마지막 말에 시아버님은 시어머님을 한 번 더 쳐다보는 걸 잊지 않으셨다. 여자는 생각했다. 시아버지의 사업에는 부침이 있었을지 몰라도 지난 시절 두 분의 사이의 정은 부침이란 게 없었구나 하고... 그래도 그렇게 힘들어도 너희 남편은 좋은 거 다 해주며 키웠다. 누나들이 맨날 **이는 아들이라고 갖고 싶은 거 다 사주고, 우리는 옷도 물려 입고한다고 불만이 많았지. 아직도 그 얘기를 한다니깐. 내가 뭘? 한 쪽에서 TV 채널을 열심히 돌리던 여자의 남편이 자신의 이름이 들리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자 쪽을 쳐다봤다. 우와, **씨는 귀한 아들이었네. 뭐? 내가? 무슨 소리야. 로버트며 장난감이며 사달라는 건 다 사주지 않았냐? 아... 로보트. 그거야 뭐. 여자의 남편은 별거 아니라는 듯 다시 TV 쪽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여자는 다시 시아버지의 이야기에 열성적인 방청객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여자의 남편은 의아하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꺼냈다. 나도 저런 이야기는 오늘 처음 들어. 진짜? 응, 옛날 얘기하시는 거 처음 봤어. 아마 여보한테 옛날 얘기해 주고 싶으셨나 보다. 신호가 걸린 틈에 여자를 보며 흐뭇하게 웃는 남편에게 여자는 불안한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여보 혹시... 어머님, 아버님께 돈 이야기했어? 응? 아... 그거... 뭐... 그냥 이사해야 하는 데... 좀 힘들다고... 그냥 지나가듯이 슬쩍... 여자의 남편은 계속 끊어질 듯 이어질 듯 말을 하는 통에 여자는 남편의 대답을 얼른 한 문장으로 완성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하긴 한 거네. 응. 했어.



여자는 남편과 결혼을 결심할 때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애당초 사이가 좋지 않으셨던 부모님을 보고 자란 여자는 결혼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때는 여자도 꼭 엄마처럼 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철저하게 혼자가 된 기분을 느꼈을 때 여자는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마음이 따뜻하고 착한 사람.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산책을 하고 싶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때 여자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뿐이었다. 내내 결혼에 부정적이었던 여자를 걱정하던 친정엄마도 응원해 주셨다. 혼자보다 둘이 살면 재밌지 않겠냐, 재밌게 살면 되지... 그거면 되지.



결혼을 결심하고 함께 살기로 했다. 여자와 남편의 첫 집은 원룸형 복층 오피스텔이었다. 말이 복층이지 2층은 층고가 너무 낮고 난방이 되지 않아 집을 보러 갔을 때는 그냥 박스가 뒹굴고 있는 공간이었다. 넓지 않은 1층에 깔려진 이불이 대충 밀쳐져 있었고, TV, 소파, 빨래 건조대가 한데 뒤엉켜 있었다. 하지만 여자와 남편의 눈에 그 집은 그들의 신혼집으로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오히려 뭔가 희망과 설렘의 빛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둘이 합쳐 보증금을 내고, 부담스러운 월세는 조금만 깎아 달라고 했을 때 처음으로 현실의 벽을 느꼈다고 할까. 깎아 주기는커녕 오피스텔은 2년 계약해 주는 경우도 거의 없다며 그것으로 만족하라는 대답만 돌아왔던 것이다.





여자는 신혼집으로 이사하던 날이 생각났다. 어느 평범한 토요일 아침, 여자는 자신의 살림을 챙기고 남편은 자신의 살림을 챙겨서 신혼집으로 '이사'를 했다. 본가에서 옷만 챙겨 나온 남편과 달리 여자는 진작에 독립해서 혼자 살고 있어 이미 생활에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살림살이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이삿짐 차를 부르기는 애매한 양이었지만 여자의 짐은 운전석과 운전석 앞 유리만 겨우 비울 수 있을 정도로 많았고, 그것을 지하 주차장에서 고층으로 올리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퇴근 후 둘이서 며칠 동안 청소했던 깨끗한 집은 여자의 궁색한 살림살이가 점점 들어차자 그 빛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대충 짐을 다 올렸을 때 둘은 거의 녹초가 되었고, 한 끼도 먹지 못한 배가 아우성칠 때 해는 벌써 떨어지고 있었다. 대충 라면이라도 먹을까? 어딘가 챙겨 온 라면이 있을 거야. 식탁은 놓을 자리가 없고, 밥상도 아직 마련하지 못한 여자와 남편은 바닥에 라면을 놓고 마주 앉았다. 한쪽 벽을 채우고 있던 TV는 아직 연결되지 않아 깜깜했다. 문득 세상과 연결이 끊어진 듯 적막이 흐르는 방에 낯선 사람과 마주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여자의 남편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전에도 밥 먹을 때 이렇게 바닥에 놓고 먹었어? 이거 영 불편한데. 응, 책상에서 주로 먹었지. 밥상을 사면 살림이 늘잖아. 그래도 이번에는 사야겠지. 아... 근데, 엄마 말대로 이불이라도 하나 새로 살 걸 그랬나? 내가 쓰던 이불 그냥 써도 괜찮아? 내 눈에는 아직 새것 같아서 들고 왔는데 여기 와서 보니깐 왜 이렇게 궁색해 보이지? 괜찮아. 아니면 나중에 사면 되지. 안 그래도 엄마한테 등짝 맞았어. 엄마가 사준다고 해도 싫다고 했더니. 신혼집에 새 이불도 하나 없고, 새 그릇도 하나 없다고... 근데... 여자는 남편과 집을 구하는 데 돈을 다 쓰고, 이제부터 결혼식과 신혼여행에 들어갈 돈을 모으기로 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시어머님께서 언제가 됐든 결혼식을 하고 함께 살면 어떠냐고 하신 말씀도 생각났다. 뭔가 '동거'라는 말이 찝찝하셨나 봐. 하지만 여자의 원룸 계약기간이 거의 끝나고 있는 시점이었고, 그 시기에 결혼식과 신혼집 마련까지 다 해내는 것이 두 사람에게는 무리였다. 뭐 어때? 어린애들도 아닌데 싸웠다고 헤어질 것도 아니고, 형식적인 건 좀 뒤로 미뤄도 되는 거 아니야, 하며 찝찝해 하시는 시어머니의 그 눈길을 애써 피해왔던 것이다.


근데... 라면 그릇에 얼굴에 박고 있던 여자가 갑자기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많이 매워? 왜 그래? 아니... 근데... 어떻게 아무도 우리 이사하는 데 관심이 없으시지? 우리가 결혼식도 안 하고 먼저 같이 살아서 그러시는 걸까? 아무도 전화 한통 없으시잖아. 게다가 자기네는 대식구가 있는데 아무도 우리한테 관심이 없는 거야? 결혼식만 아니지 오늘이 우리 진짜 결혼하는 날이나 마찬가진데?... 갑자기 설움이 복받친 이유를 설명한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한 여자는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뭔가 서러운 것 같아.... 뭐가? 우리 둘이 별일 없이 이사 잘하고 이렇게 저녁도 먹고 있는데... 나는 오늘 너무 힘들었단 말이야... 자기가 너무 이사를 열정적으로 해서 그렇잖아. 천천히 하면 되는데. 그럼 짐들이 아직 지하 주차장에 널브러져 있을걸. 엘리베이터 앞에도, 복도에도 말이야. 어차피 우리가 다 해야 할 일인데 뭘.



여자는 어쩌면 오늘 짐을 옳기다가 옛 기억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너희들 키울 때 길을 걸어 다니면 전봇대만 보고 걸었어. 어디에 너희들을 뉘일 방 한 칸이 있나 하고 말이야... 여자의 엄마는 지금도 간간이 그 시절을 한숨으로 떠올리고 계셨다. 이사를 나오는 집이나 이사를 가는 집이나 별 차이 없는 누구네 집 문간방이었는데 도대체 왜 끊임없이 이사를 해야 하는지 그 시절 여자는 알 수 없었다. 언젠가 동사무소에서 초본을 뽑아 들고는 무척 당황한 적이 있었다. 이걸 제출해야 하는 데, 페이지를 헤아릴 수 없이 딸려 나온 그것은 여자의 가족이 걸었던 초라한 발자취 같았다. 그 부끄러움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여자는 그저 당황스럽기만 했던 기억이 났다.



부모님은 일하러 가셔야 하니깐, 이삿짐 정리는 언제나 내 몫이었어. 이사는 후딱후딱 해버려야지. 천천히 하는게 어딨어? 살아가면서 정리한다는 건 계속 안 하겠다는 말이랑 똑같은 거야. 여자는 머릿속으로 눈물의 시작이 과연 어디였는지 헤매며 콧물을 훌쩍거리고 있었다. 이삿짐을 쌀 때의 막막함도, 집을 옮기고 정리할 때의 피로감도 여자에게는 익숙한 것이었다. 여자가 어릴 때는 포장이사 같은 것은 들어보지도 못했고, 언제가 이삿날이다 하면 그때까지 여자가 쌀 수 있는 짐은 모두 싸 두어야 했다. 박스를 구해와서 하나하나 담다 보면 가난한 살림에도 짐은 끝이 없이 나왔다. 그 짐들은 죄다 지금 당장 내다 버려도 전혀 아까울 것이 없는 그런 것들이었다. 지금도 길을 걷다가 세월의 흔적이 묻은 허름한 살림살이를 실은 트럭이 지나가면 그 시절이 생각난다. 보자기로 꽁꽁 동여매어진 이불이 마지막으로 얹혀지면 고무 밧줄 같은 끈으로 이삿짐을 이리저리 묶어서 출발하던 트럭이 떠오르는 것이다. 햇살 아래 나와 더 부끄러워진 살림살이가 실려 떠나는 그 모습을 여자는 많이도 지켜봤었다.



그렇게 2년을 여자와 남편은 그 집에서 살았다. 월세와 관리비, 각종 공과금을 내고 남은 돈으로 허리띠를 꽉 졸라매봤지만, 1년을 살고 결혼식을 올리는 바람에 통장에는 구멍이 숭숭 나 있었다. 무섭게 오르는 집값을 보자니 그 집에서 2년을 더 살아도 그들에게는 별 수가 없어 보였다. 그러다가 여자가 어디서 'LH 전세자금 대출'이란 걸 알게 되었다. 이거 어때? 우리가 전셋집을 구하면 LH가 주인이랑 전세 계약을 하고 최대 9천만원 까지 대출해 준대. 이거 괜찮은 거 아니야? 그러면 우리도 작은 전세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어? 하지만 다음날 부동산에 가보고서야 여자는 또 한 번 현실의 벽을 직면했다. 몇 군데 부동산을 돌아 본 결과 LH와의 계약에 난색을 표하는 주인들이 많아 일단 전세 매물을 찾기가 무척 어렵다는 게 공통된 이야기였다. 그래도 좀 부탁드려요. 그렇게 부동산에서 오는 연락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결국 재계약을 결정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올 때까지 어느 부동산에서도 연락이 없었다. 게다가 LH에서도 전세자금으로 확보된 예산이 거의 소진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우리는 구하지 못한 집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구한 거야? 9천을 보태도 우리 돈이 너무 적었나 보다. 아니면 부동산에서 아예 알아봐 주지 않은 건지도 몰라. 그치?






어릴 때 여자의 엄마는 여자의 작은 손을 잡고 옆 동네에 새로 생긴 아파트 단지를 돌아보러 가곤 했었다. 그럴 때면 여자의 엄마는 저 멀리 우뚝 솟은 아파트를 보며 저렇게 많은 불빛 중에 왜 우리 집은 없을까 하고 낮은 숨을 내쉬었다. 그 당시 여자의 가족이 살던 곳은 2층 높이 이상의 건물을 볼 수 없었던 도시 외곽의 시골 같은 곳이었다. 그곳의 못이 메워지고 논과, 밭이 아파트로 변하고 있던 중이었다. 까맣던 하늘은 아파트의 빽빽이 들어찬 유리 저마다에서 새어 나오는 빛으로 대낮처럼 밝아졌다. 여자의 엄마는 하루의 고단함을 달래려 좁은 방을 벗어나 슬리퍼 차림으로 그곳을 터덜터덜 걷곤했다. 누구야, 너는 이담에 커서 꼭 저 아파트 같은데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 딸은 공부도 잘하고 착하니깐 꼭 그렇게 될 거야. 하시며 여자의 작은 손을 힘껏 잡으셨다. 그 힘에는 어떤 믿은 같은 것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딸이 이제 어느덧 마흔이 다 되었다. 그 믿음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여자는 그 옛날의 엄마처럼 터덜터덜 걸으며 저 멀리 높이 솟은 아파트를 바라보고 한숨짓고 있었다. 다행히 꼭 붙잡을 작은 손을 가진 딸이 없다는 건 행운일까 불행일까. 나도 결국 엄마처럼 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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