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결혼이 흔히 말하는 적령기를 훌쩍 넘기기도 했고 그동안의 삶이 워낙 연애나 결혼과 담을 쌓은 듯 보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처음 결혼이라는 말을 꺼냈을 때 여자는 주변의 반응이 너무나도 신기했다. 너 나 할 것 없이 축하해 주는 모습과 자신의 일이 아닌데도 뭔가 기대에 찬 그 모습이 말이다. 살면서 여자는 그렇게 주변의 관심을 끌고 축하를 받아 본 적이 없다. 결혼이 뭐가 그리도 대단한 일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그 기대하는 눈빛이라니.
하지만 여자의 진짜 불편함은 그 다음부터였다. 남편은 뭐 하는 사람이냐, 몇 살이냐, 학교는 어디 등등 남편 될 사람에 대한 관심에서 끝나면 좋으련만... 시부모님은 뭐 하시는 분이냐, 어느 동네에 사시냐, 남편 형제들은 뭐 하냐, 신혼집은 어느 동네냐, 자가냐 전세냐 등등 계속 이어지는 질문들...
그런데 이 중 하나도 여자는 속 시원하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여자가 결혼을 결심하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않은 질문들인 것이다. 그리고 여자는 그런 질문을 받으면서 왠지 낯설지 않은 기분을 느꼈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기분, 딱 그것이었다. 그 유명한, 그느 아부지 뭐 하시노? 같은 거 말이다. 부모님의 학벌이나 직업부터, 집은 자가인지 전세인지, 형제들은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같은 질문들에 여자는 지금처럼 입이 딱 붙어버렸다.
여자는 제발 여자 자신에 대한 질문들을 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시부모님에 대한 또는 남편에 대한 질문의 답이야말로 여자에 대해 가잘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인가 보다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어쨌든 미혼이었을 때와 다르게 사람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여자의 경제적 상황이나 사회적 위치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사람들이 갑자기 무례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여자는 원룸 같은 오피스텔을 구해서 진작부터 독립해서 쓰고 있던 살림살이들을 들여놨다. 반전세라고 불렀지만 월세가 나름 부담스러웠으니 그냥 월세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보증금은 둘이 함께 마련했다. 사실 그 돈이 그들의 전 재산이었다. 그래서 여자는 남편과 함께 살면서 1년 가까이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위한 돈을 모았다. 그러니깐 주변에 결혼 사실을 알린 것은 이미 함께 산지 1년이 되어 갈 때 즈음이었다. 여자는 그 때 결혼식이나 신혼여행에 대한 기대는커녕 이미 마음속 'stop'버튼을 몇 번이고 눌러대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자는 결혼이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똑같이 밖에서 일을 해도 여자는 매일 헐떡이며 저녁밥을 준비해야 하는 일상이 낯설었고 - 혼자 있을 때는 대충 때웠던 그 저녁 말이다!-, 친정엄마는 여자만 만나면 남편 밥해줬냐는 질문만 쏟아냈다. 결혼하기 전보다 해야 할 일과 신경 써야 할 일이 배로 늘어났다. 시부모님을 뵈러 가면 그저 죄인마냥 여자 자신도 모르게 안절부절 하기 일쑤였다. 이게 도대체 뭐지... 여자는 거의 매일 밤 남편이 잠들고 나면 창가에 앉아서 울던 시간들이 있었다. 방이 따로 없으니 그것도 할 짓이 못되었지만.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고 매일매일 쉽게 잠들지 못했고 설움이 복받쳤던 시간이었다. 창밖 저 아래 캄캄한 어둠이 여자의 마음과 똑같았다. 가늘게 비추는 희미한 가로등조차 여자의 마음속에는 없는 것 같았다.
이제 결혼을 했으니 넌 이제 따로 해야 해. 엄마가 집안 대소사를 챙기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친척 집에 무슨 일이 있어서 엄마가 봉투라도 전해줄라치면 이제 여자는 거기에 얹혀갈 수 없다는 뜻이다. 이제 여자도 '어른'이 되었으니 뭐든 따로 준비해야 한다. 부모님 생신이나 명절뿐만 아니라 시시때때로 챙겨야 할 일들이 넘쳤고 집안 대소사가 끊이지 않았다. 여자는 벌이가 넉넉지 않아 지금껏 부모님께서도 적당히 넘어가 주셨는데, 이제는 도망갈 구실이 없었다. 여자는 당연히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더 열심히 노력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을. 그런데 결혼을 한다고 해서 갑자기 수입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도 아닌데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눈앞에 쏟아진 기분이었다. 여자는 결혼 전의 여자와 똑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여자의 세상이 돌변했다. 결혼한 사람들에게는 도달해야 할 눈에 보이지 않는 기준선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여자는 아직 한참 모자란 사람인데 드레스 입고 입장 한 번 했더니 다른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도리'를 '돌'로 확 치고 싶은 심정이랄까. 여자 앞에 펼쳐진 '도리'가 너무 많았다. 아내의 도리, 며느리의 도리, 자식의 도리 무슨 도리 무슨 도리... 그럼 난 뭘 얻을 수 있는 거야? 결혼식 때 폐백을 생략했더니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 시어머니가 여자를 데리고 인사 투어를 다니셨다. 가는 곳마다 절을 하고 '덕담'을 들었다. 과일 하나 변변히 내놓는 집이 없었는데도 무슨 대단한 집안인 양 거만을 떨었다. '덕담'이라는 말은 듣다 보니 기가 찼다. 여자는 인사 투어 후 며칠을 또 잠들지 못했다. 시댁일에 생략할 수 있는 일이란 없었다. 새벽마다 도시락 싸서 학교 보내고 4년 동안 사립대학 학비 대느라 등골이 빠진 부모님이 이제 여자가 남편 밥을 잘 하고 있는지 걱정하고 계신다. 생전 처음 보는 남편의 부모님은 이제 며느리 밥 얻어먹겠다고 하신다. 그럼 난 뭘 얻는 거냐고?
여자의 부모님도 여자의 시부모님도 좋은 분들이라고 여자는 항상 생각했다. 다만 무슨 귀신 씌인 것처럼 구시대의 관습에 사로잡혀 계신 것뿐이라고. 여자는 자신이라도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다짐하곤 했다.
하지만 진짜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은 여자 자신인지도 모른다. 여자는 자신이 시부모님이나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지 않으면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것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인지 여자는 새삼 깨닫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으면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마흔이 넘어도 여전히 가난하고 여전히 죄 많은 며느리가 된 여자는 이제 와서 인터넷 게시판이나 훑고 있었다. 내가 순진했구나... 내 팔자를 내가 꼬았구나... 하며 자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혼자 살면 어땠을까. 따뜻하게 여자의 손을 잡아주던 남편은 없었겠지만, 주말마다 헐떡거리며 시댁 경조사를 챙기는 대신 따뜻한 방바닥을 굴러다니는 자유는 누릴 수 있었겠지. 여자는 그 생각을 하자 못내 아쉬운듯 입맛을 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