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반결혼은 허상이었나 I

나의 결혼 이야기

by aloha






여자는 30분째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그 작은 창 안에 도대체 무엇이 있는지.


여자는 인터넷에서 결혼 준비를 하다가 파혼한 커플의 사연을 읽고 있었다. 남자에게 인 서울의 신혼집을 요구하면서 정작 여자는 경제적 부담을 피하기 위해 요리조리 핑계를 대다가 결국 파혼했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출처도 불명확하고 내용의 사실 여부도 알 수 없으니 댓글에는 '주작이다'라는 말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사실 여자가 보기에도 이런 글의 의도는 뻔하다. 예비신부를 염치도 모르는 여자로 만들어 실컷 욕을 듣게 하고, 결국 불특정 다수의 여자들을 욕먹게 할 속셈인 것이다. 여자는 쓴웃음이 나왔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런 의도를 가지고 글을 쓴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이 생겼다. 그 사람도 아마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행복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사람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여자처럼 말이다. 인터넷에서 자극적인 기사나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글들을 많이 읽다 보면 그것이 마치 일상적으로 흔히 일어나는 일인 것 같다. 그리고 그 아래 댓글들에서 사람들이 쏟아내는 극단적인 감정들에 이입하다 보면 여자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안도감을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나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는.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면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인터넷에서 보면 모두들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않낳 는 것 같지만 카톡 프로필은 죄다 결혼사진 애기 사진뿐이라는 누구의 말처럼 말이다.



남편이 핸드폰에 빠져있는 여자를 본다. 아, 미안. 이제 잘게. 뭘 그렇게 보는 거야. 응, 인터넷 게시판 글 좀 읽는다고. 무슨 글인데? 아, 결혼 준비하다가 파혼한 사람 글이야. 왜 파혼했데? 그게... 사람들이 결혼에 대한 생각이 우리랑 좀 많이 다른가 봐. 응? 저번에 이런 비슷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댓글에 결혼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평생 친구 하나 찾는다 생각하면 어떨까 하는 의견이 있더라고. 우리랑 비슷하네! 그러니깐, 그냥 뭐든 혼자 하면 심심하니깐 둘이 하는 게 더 낫지 않겠냐 이 정도로 생각하면 어떠냐고. 근데 많은 댓글 중에 그 글에 동조하는 의견은 없었어... 내가 결혼을 너무 가볍게 생각한 걸까? 뭐? 사실은 결혼이 엄청 무시무시한 거면 어떡하지? 아직 내가 모르는 뭐가 큰일이 날 기다리면 어떡하냐고? 에이, 무슨 소리야~ 그래서 이런 얘기 할 친구도 없고 해서 게시판을 보고 있는 거야. 왜 친구가 없어? 다들 연락 안 하고 산 지 꽤 됐잖아. 다들 애들 키우느라 정신없이 바쁘고 또 이제는 형편이 너무 차이 나니깐 만나서도 괜히 불편해. 친구끼리 형편 따지니깐 이상하지? 근데 그렇게 되더라고... 괜히 기가 죽기도 하고 그래. 웃기지?


나 있잖아. 내가 제일 친한 친구아니였어? 그래, 하지만 우린 입장이 다를 때가 있잖아. 나는 부인이고 며느리, 딸인데 여보는 남편이고, 아들이고 사위니깐. 그래, 그건 그럴 수 있겠다. 여자의 남편은 마치 말 잘 듣는 학생처럼 고분고분 여자의 말에 잘도 호응해 준다. 그런 남편에게 행여나 상처가 되는 말을 할까 여자는 말을 고르고 고르는 중이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정작 여자가 말하고 싶었던 내용은 다 빠지고 알맹이 없이 겉도는 대화가 될 뿐이다. 다들 따지고 또 따져서 시잡 잘 간 것 같아 부럽다고... 나도 그렇게 좀 약게 굴었어야 하는 건데 말이야. 하지만 이런 말은 차마 할 수 없겠지. 여자는 생각했다. 가끔은 남편이 여자를 자극해 감정이 격해진다면, 그 동안 품고 있었던 말들을 다 꺼내놓고 싶다고. 나도 좀 따져보고 결혼 할걸 그랬다고. 다들 이렇게 얌체처럼 자기 실속만 차리며 잘만 결혼하는데, 나만 다 잃어버린 것 같다고... 그럼 조금은 시원하지 않을까. 하지만 남편의 지나치게 빠른 수긍은 오히려 여자에 대한 최대의 방어막이 되어버렸다.





한때 같은 곳에 서 있던 우리



우린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났어. 다들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 출신 이었지만 고등학교가서 처음 같은 반이 된거야. 어쨌든 다들 좀 외곽에 있다가 시내 학교에 가게 됐어. 사립 고등학교라 그런지 잘 사는 집 애들이 엄청 많았어. 선생님들도 차별이 심했고. 그래서 우리 넷은 번호도 앞뒤 번호였지만 형편도 비슷해서 정말 빨리 친해졌던 것 같아. 사실은 내가 제일 어렵기는 했지만... 왠지 모를 소외감이 우리를 뭉치게 한 것 같아. 그리고 졸업하고 하고 나는 4년제 대학을 갔지만 다들 전문대를 갔어. 내가 제일 공부를 잘하기도 했지만, 큭큭. 사실 다들 동생이 기다리고 있었거든. 나는 막내였고. 그게 큰 이유였던 것 같아. 학과도 여자들이 빨리 취업할 수 있는 그런 과로 말이야. 그때 내 눈에는 그 게 정말 신기해 보였어. 삶을 그렇게 컨트롤할 수 있다는 거 말이야. 그 안에 고민이란 게 없더라고, 2년 후 졸업하고는 숨도 안 쉬고 취업해서 5년 직장 다니다가 숨도 안 쉬고 다들 결혼해 버렸어. 그 때 나이가 스물 일곱, 여덟 정도였던 건 같은데. 그때 부잣집에 시집간 친구는 말할 것도 없고, 다들 집을 사서 시작한 친구들이라 그런 지 15년 정도 지나고 보니 형편이 다들 좋아져 있는 거야. 게다가 그때는 별생각 없었던 남편들의 직업이 지금 보니 다들 대기업, 공기업 이런데 잖아. 내 친구들이 그렇게 야무진 애들이었나 정말 놀랐다니깐. 정말 착실하고 똑똑한 애들이라 운도 따라줬나 봐. 우리 다 형편이 어려웠으니 정말 잘 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 친구들을 다시 보자니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나는 뭐 하고 살았나 싶고. 분명히 비슷한 길을 나란히 걷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내 인생만 옆길로 쭉 새버린 기분이야...



그래서 도대체 뭐가 부끄러운 걸까 생각해 봤어. 나는 나 나름대로 정말 노.오.력하고 살았거든. 그런데 있잖아... 여자의 말은 이제 정처 없는 곳을 헤매고 있는 듯했다. 남편이 물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된 것 같아? 아내의 고민에 대해 남편의 이 명확한 객관화가 여자는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말하는 것 같았다. 이건 다 네 문제니깐... 그 이유를 굳이 생각해 보자면 말이야, 자신감도 없었고, 세상물정도 몰랐던 것 같아. 아니아니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서 그랬나? 여자가 혼자서 묻고 답하며 자신의 이야기로 빠져드는 사이 남편은 잠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점점 귓가에 울리는 여자의 목소리가 희미해진다.



여자의 인생은 언제나 약간 위화감에 싸여 있었다. 여자에게 남편의 존재 역시 그랬는데... 이런 말이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남편 같은 사람은 여자에게는 사치였다. 여자가 결혼을 결심했을 때는 이미 서른 중반을 지나가고 있는 나이였고, 가진 돈이 얼마 없었다. 남편 역시 여자보다 나이가 어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삼십대 중반이었고, 역시나 가진 돈이 얼마 없었다. 무엇보다 그 나이까지 그들은 안정된 직업이나 학벌, 사회적이 위치 랄 것이 없었고, 양가 부모님 모두 그들을 지원해 주실 형편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여자는 살기위해 필사적으로 거기에 걸맛는 남편을 찾았어야했다. 사랑은 사치가 아니였을까.



하지만 그때 여자는 결혼을 대단한 것이라 여기지 않았다. 나이가 찰 대로 찬 자식들에게 양가 부모님 역시 '결혼하겠습니다' 했더니 '그러냐, 결혼하냐' 그 정도였다. 혼자 먹는 밥을 같이 먹고, tv를 보면서 같이 웃고, 공과금이랑 매달 월세를 나눠서 내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자는 결혼을 한 후에도 여자 자신으로 남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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