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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리케 Aug 04. 2021

#3.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너 어떻게 살래?"

  외국에선 중고등학교 때 자아를 찾으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대학에 와서는 공부를 하지.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중고등학교 때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만 하고, 대학에 와서 자아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지. 내가 보기엔 네가 그런 것 같아.


  대학교 1학년 때였는지 3학년 즈음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대학에서 만나 친해진 친구가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충격이었다. 사실일까? 정확한 답은 찾기 힘들었지만 내 자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친구의 그 말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확실한 답을 찾지 못했다. 아니, 나의 자아는 고정불변이 아니라 계속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나는 나를 사랑하고, 나의 다양한 모습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르겠다던 장자의 호접몽은 결국 '나도 나이고, 나비도 나'라는 것이라고 한다. 좋은 부분도, 모자란 부분도 나로 받아들이고 있다.


  퇴사 후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질문이다. 나는 흑백으로 구분 짓는 것을 싫어한다. 그것이 나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어느 한 가지 방식만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디지털 노마드와 1인 기업에 관심 있지만, 나를 공개하고 소통하는 부분은 자신 없다. 싫은 일을 피해 또 다른 싫은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내 삶의 방향을 정하기 위해 중요한 몇 가지를 설정하고자 한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원하는 것은 '자유'이고, 궁극적으로는 '행복'이다. 신해철 님이 부르짖던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에 대해 생각해 본다. 코로나로 전염 위험성이 높은 직장에 꼭 나가지 않아도 되는 자유.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일하기 싫을 때는 하지 않을 자유.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을 자유. 쭈구리로 사람들 눈치 보며 살지 않을 자유.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다양한 경험을 함께할 수 있는 자유. 이런 자유를 누리며 행복하고 싶다.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내가 원하는 자유를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나와 가족을 사랑하고, 함께하는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많은 것을 희생해서 성공한들 그것을 함께 기뻐하고 나눌 가족의 사랑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리고 자유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제적 자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호화로운 삶에는 관심 없다. 나와 가족들이 함께 적당히 살 수 있는 정도의 경제력만 있으면 된다. 그래서 '파이어족'의 삶의 방식을 추구하고자 한다.


 내가 원하는 파이어족은 어떤 방식의 삶일까? 파이어족(FIRE- :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은 경제적 자립을 통해 빠른 시기에 은퇴하려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다. 이를 위해 젊어서부터 지출을 줄이고 투자를 하여 적당한 수준의 은퇴자금을 만들어 40대 이전에 퇴직하여 본인이 살고 싶은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찾아보니 25년 치 생활비 정도의 은퇴자금을 마련하여 대락 연 4% 정도의 투자 수익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를 쭈구리로 만드는 회사생활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매우 매력적인 삶의 방식이다. 다만 젊은 시절에 그 정도의 은퇴자금을 마련하기가 꽤나 어렵다는 큰 문제가 있다. 또한 은퇴 후에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파이어족으로서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회사 동료분 부부의 목표는 조기 은퇴이고, 둘이서 장구도 치고 텃밭도 가꾸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한다. 나는 원하는 만큼 쉬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하기 싫은 일은 안 하고 싶다. 그냥 게으름을 파이어니 뭐니 하며 포장하는 건 아닐까 생각도 해봤다. 그런데 '게으르면 왜 안되지? 때론 지칠 때까지 게으름을 부려도 문제 될 게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하기 싫은 뭘까? 내가 재미있어하는 일을 하고 싶다. 나를 잃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 때론 다른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여행을 떠나고 싶다.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곳곳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싶다. 아이와 하루 종일 함께 하고 싶고, 또 온전히 혼자 있고도 싶다. 눈뜨면 바닷가로 뛰어들어 놀고, 공기 좋은 숲을 산책하고 싶다. 그림도 그리고, 피아노도 치고, 기타도 치고 싶다.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다. 푸른 바다가 보이는 발코니에서 그림도 그리고, 음악도 듣고, 글도 쓰고 싶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요가도 해보고 싶다. 엄마와 바다를 보고 싶다. 엄마와 크루즈 여행을 가고 싶다. 엄마와 여동생과 눈 맞으며 맥주를 마시며 온천욕을 하고 싶다. 마당에서 맘껏 뛰어놀고, 밤에는 한잔 하며 즐겁게 떠들고 싶다. 운동을 좋아하진 않지만 재미있게 운동도 해보고 싶다. 하루 종일 재미있는 TV를 보고 싶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 감동적인 공연도 보고 싶다. 나무를 기르고 싶다. 텃밭을 가꾸고 싶다. 과실수와 꽃도 기르고 싶다. 남편과 짝을 이뤄 탁구나 배드민턴을 치고 싶다. 마사지를 받고 싶다. 사진을 잘 찍고 싶다. 공기가 좋은 곳에서 살고 싶다.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가고 싶다. 정신병리학과 심리치료, 금융과 경제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 수학을 다시 공부해 보고 싶다. 영어를 잘하고 싶다. 다른 외국어도 조금이라도 배우고 싶다. 다양한 책을 많이 읽고 싶다. 책을 많이, 잘 읽고 싶다. 목공을 배우고 싶다. 세계의 다양한 요리를 배워보고 싶다. 직장에 다니진 않아도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쓸모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식수를 구하기 힘든 아이들에게 수도를 놓아주고 싶다. 목숨 걸고 학교 다니는 아이들에게 학교도 지어주고 싶다. 북극곰을 돕고 싶다.


  꽉 막힌 출퇴근길이 싫다. 밥벌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나를 죽이고,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아닌 모습으로 사는 것이 싫다. 말도 안 되는 직장 내에서의 많은 파도를 온몸으로 맞고 싶지도 않다. 생활에 치여 살고 싶지 않다. 아이가 지나친 경쟁 속에서 시들어 가는 게 싫다. 다툼이 싫다. 안 맞는 사람과 있고 싶지 않다. 쓸데없는 모임이 싫다. 다른 사람의 험담이 싫다. 지나친 간섭을 받고 싶지 않다. 쭈구리로 살고 싶지 않다. 치열함 뒤의 피로와 절망이 싫다.


  파이어족이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싶은 일을 적다 보니 너무 많아서 놀랐다. 흥미롭다. 그리고 돈이 드는 일이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결국은 경제력이 관건이다. 특히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외국에서 한 달 살기가 꽤나 많은 비용이 들 것 같은데, 생각해 보면 서울에서 사는 비용에 조금만 더 보태면 되는 경우가 많다. 철저한 계산 없이 미리 겁먹지는 않았으면 한다. 일단은 일을 하며 절약과 투자를 통해 은퇴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방향을 정하고, 방식을 계획하고, 그것을 위해 공부해야 한다.


  최소한의 생활과 때로는 하고 싶은 고비용의 생활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파이어족의 시작인 미국에서는 주로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이 극도의 절약과 투자를 통해 대략 10억 정도의 은퇴자금을 마련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젊은 나이에 10억을 온전히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부동산을 이용하고자 하며, 주식투자도 하려 한다. 집값 상승의 파도를 온전히 타지는 못했지만, 끝물 즈음에 탔으니 수년 뒤의 목표를 어느 정도는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주식은 미국 배당주를 모아 매월 어느 정도의 배당금을 확보할 생각이다. 일부는 ETF와 성장주에 투자할 계획이다. 남편은 완전히 은퇴하지는 않겠다고 한다. 일주일에 이틀 정도만 일하면서 자동으로 굴러가는 시스템을 두세 개쯤 만들겠다고 한다. 그 계획을 완벽하게 환영하며 응원한다.


  아이 학교와 교육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문제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을 위해 지나치게 경쟁시키고 싶지는 않다. 명문대와 대기업을 위한 사교육으로 나와 아이를 희생하고 싶지 않다. 미래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여러 곳에서의 한 달 살기나 잦은 이동이 학교생활에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학교는 꼭 다녀야 하는 걸까? 다른 방식의 교육은 어떨까? 고민이 많다. 교육에 있어서는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일단 아이가 원하는 삶을 살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다. 누군가는 1등 하려고 힘들게 지낼 시간에 5등 정도로 만족하며 즐기고 싶어 한다. 반면 어떤 이들은 치열하게 살고, 어려운 것을 성취하고, 내부보다 외부에서 가치를 찾고자 한다. 살아가는 데에 정답이 있을까? 범죄와 범법이 아니고, 다른 이에게 피해 주지 않으면 본인 인생은 본인이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다. 대신 책임은 철저하게 본인의 것이다. 나는 느슨하게 살고 싶다. 치열한 것만이 길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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