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이버링 Mar 14. 2024

초등 방과 후 수강신청, 다들 성공하셨나요?

슬기로운 정보 생활

올해 2학년이 되는 아이의 학교 방과 후 수강신청을 앞두고 종일 조마조마한 하루를 보냈다. 나는 만약 이 수강신청이 실패하면 한 학기 내내 아이가 다닐 학원을 알아봐야 하는 워킹맘 신세다. 좋은 학원을 알아보는 것도 힘들고, 추가로 지출하는 사교육비도 무시할 수 없다. 방과 후 수강신청에 성공한다는 전제 하에 다른 학원 시간과 모든 스케줄이 맞춰져 있다. 이 계획이 조금이라도 틀어지는 상상은 하고 싶지 않다.


수강신청은 저녁 8시부터인데 나는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두려움에 떨었다. 실패의 경험이 한 번 있기 때문이다. 작년 아이의 1학년 1학기 1부 수강신청을 실패해서 2부만 신청하게 되는 바람에 1부 시간이 구멍이 났다. 다행히 내가 작년에는 휴직을 해서 방법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딸아이의 구멍 난 짧은 시간(40분)을 억지로 메꿀 거리를 찾기 위해 도서관, 놀이터를 전전했다.

누군가 취소를 한다는 전제 하에 매달 수강신청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인기강좌는 좀처럼 취소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나는 한 학기 내내 구멍 난 1부 방과 후 수업 시간에 아이에게 질질 끌려다녀야 했다. 2학기에는 모든 수강과목이 초기화되면서 새롭게 신청할 수 있었고, 1학기와는 다르게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다. 수강신청 성공여부는 나의 하루를 통째로 차지할 만큼 중요한 사안이 된 것이다.




저녁 8시, 수강신청을 한 시간 앞두고 같은 라인에 사는  아이친구 엄마로부터 연락이 왔다.


“언니, 오늘 수강신청 하시죠?”

“네! 안 그래도 오늘 하루 종일 조마조마하고 있어요. 혹시 성공 못하면 전 끝장이거든요.”

“언니 그럼 지금 수강신청 홈페이지 로그인 하셔서 보호자 이름 연락처 정보 입력해 주세요.”

“아, 전 그거 작년에 이미 했는데 또 해야 돼요?”

“네, 또 해야 된대요. 2학년이 되면 정보가 초기화되나 봐요. 만약에 그 정보가 입력 안 돼 있으면 수강신청 버튼을 누르고 나서도 그걸 입력하느라 시간이 지체돼 수강신청 못 할 수 있거든요.”


그런 이유로 작년에 수강신청에 실패한 전적이 있어서 다시는 그 실패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서둘러 그녀의 말을 듣고 정보를 입력해 두었다. 드디어 8시가 됐다. 동시접속이 가능해서 월, 수 수강신청과목과 화, 목 수강신청과목을 남편과 나눠서 했다.


8시가 되자마자 빠르게 희망과목 수강신청 버튼을 눌렀다. 보호자의 이름과 휴대폰 번호는 아까 미리 입력해 둔 덕에 지체 없이 '수강신청 완료'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수강신청은 '1초 컷'이었다. 1초 만에 1부 과목인 한자와 과학실험 수강신청에 성공했다. 연이어 2부 미술공예 수강신청도 신속하게 마쳤다. 5초 만에 희망하는 3과목의 수강신청이 이루어졌다. 인기가 많은 1부 개설 방과 후 과목들은 모두 신청이 마감되었다.


"휴...진짜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 일인가 싶네. 밥 먹자!"

"고생했다..."


남편은 수강신청을 성공한 후에야 저녁을 차리는 나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바쁜 마음으로 저녁을 준비하면서 '미리 보호자 이름과 연락처를 입력해 두라는 정보'를 알려 준 아이친구 엄마가 떠올랐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 정보가 없었더라면...’


나는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고 그 엄마에게 치킨 쿠폰과 함께메시지를 보냈다.


'나의 6개월(한 학기)을 구해줘서 고마워요.'


혹시 몰라 알려준 건데 기프티콘까지 보내냐고 놀라워하는 반응에, 나는 치킨쿠폰보다 더한 고마움을 느낀다고, 재차 고마워했다.


며칠 뒤 아이의 다른 친구 엄마를 만났는데 그 엄마는 남편과 나눠 수강신청을 했지만, 남편이 보호자 정보를 입력하느라 시간이 지체 돼 한 과목을 신청하지 못했다며 대역죄인이 된 웃픈 이야기를 했다. 나도 수강신청 한 시간 전에 누가 말해줘서 알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연락해 줄 걸 그랬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나도 도움을 받은 처지라 누구를 챙겨 줄 상황은 아니었던 것)

다시 한번 <정보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내가 받은 '고급정보'는 온라인으로 수강신청이 경쟁이 되는 시대에 돈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교환가치'를 지녔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는 없던 정보다. 클릭 한 번으로 많은 것이 달라지는 오늘날 정보의 가치는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이 상당하다.



대학 신입생이 된 조카를 태우고 집에 돌아오는 길, 수강신청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덧붙였다.


"우리는 정보가 진짜 값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시대를 살고 있어, 지금 너에게 중요한 건 그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의 네트워킹이야. 그런 사람들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 줄 알아? 무언가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그 의욕적인 사람들의 무리에 속하게 되면 그중 누구라도 너에게 지름길로 가는 '패스워드'를 알려 줄 거야. 그러니 늘 열심히 뭔가를 하는 좋은 사람 곁에 있으렴. 그래서 학교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면 좋겠어."



힘주어 이 말을 하면서 다시금 생각했다. 정보가 돈보다 더 가치 있는 사회. 눈에 보이지 않는 비트코인이 일억에 거래되는 되는 사회에서 나를 성공하게 만드는 정보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나에게 성공의 지름길로 가는 패스워드를 알려줄 멋진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매거진의 이전글 살찌지 않는 뷔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