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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지니 Feb 05. 2023

조현병이 조울증이 되는 날

 

Brief psychotic Disorder 유도된 정신병적 장애/

schizophreniform disorder 정신분열형 장애     


2018년, 모든 것들을 접고 포항에 내려와서 검사 후에 받은 진단명이다. 이 상태에서 6개월 이상 지속이 되면 우리가 흔히 아는 조현병, 정신분열증이 된다. 짧게는 3년, 어쩌면 평생 병원에 다니며 약을 먹어야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이를 악물었다. 반드시 나을 것이고, 이 말이 나를 규정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을 현실로 만들었다. 3개월 만에 증상이 거의 회복되었고 ‘조현병은 아니다’로 결론지을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이때 병원에 가서 다시 제대로 된 진단을 받았어야 하는데 혹시나 생각했던 그게 아니라면? 하고 회피했던 결과 더 오랜 시간 고통스러워했던 것 같다. 이후에도 처음처럼 심한 상태를 겪진 않았지만 계속 병원에 다닐 정도였고, 약을 먹었기 때문이다.     


작년에 라섹 수술을 하면서 앓고 있는 병에 대해서 처음으로 다른 병원에서 이야기를 했고, 일이 커지는 바람에 진단서, 처방전을 떼서 제출하고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서명 확인하는 동의서까지 작성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사람들이 가진 정신과적인 병에 대한 편견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고, 사람들에게 마음을 더 닫고 스스로를 꽁꽁 숨기게 되었다. 하지만 내 병에 대해서는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계기 또한 되었다. 진단서에 병명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동안 회피해 왔던 나의 병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이다.     


F31.8 기타의 양극성 정동장애(2형)

추적 검사 진행 중이며 좋아지면 약도, 병원도 안 와도 될 정도로 좋아졌다는 결과이다. 양극성 정동장애는 쉽게는 조울증이라고 보면 되는데 이도 1형과 2형으로 나뉜다. 1형은 조증일 때의 증상이 더욱 두드러지는 반면 2형은 조증일 때의 증상이 상대적으로 미미하며 울증일 때의 증상은 동일한 기분장애를 말한다.     


처음에 조현병이 아니라 조울증이었다는 것을 판명받았을 때는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조현병과 조울증은 어감부터가 다르다. 둘은 증상이 과도할 때는 비슷하기 때문에 그 차이를 진단하기가 쉽지 않다. 조현병과 조울증은 조증일 때와 상태가 비슷한데, 조현병은 사이클이 없다. 쉽게 얘기하면 울증일 때의 증상이 없다는 것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선 사이클을 봐야 하기 때문에 6개월에서 1년 정도 지켜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번에 글을 쓰기 위해서 담당 선생님에게도 자문을 구했다. 관련된 자료를 요청하면서 왜 내가 조현병과 조울증 사이에서 헷갈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정신과 의사들도 발병 초기에는 조현병과 조울증을 구분하는 것이 굉장히 까다롭기 때문에 매년 정신과 시험에 등장하는 주제라고 했다. 하지만 또 전문적으로 정신과 의사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구별해야만 하는 가장 기초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오히려 자료가 별로 없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런 이야기들을 조금 더 빨리 들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겪어온 병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

오늘은 이렇게 병이 발병한 배경과 증상들까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처음에 병이 발병했을 때는 이직 준비 중이었다. 제약회사에서 QA로 활동했던 경력을 살려 존슨앤드존슨, 대웅제약, 한미약품 등 다양한 회사의 서류, 면접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를 준비하기 위해 대전에서 서울까지 일주일에 2번 정도 여의도 We work로 가서 당시 전 제약회사 인사팀장님에게 취업컨설팅을 들었다. 그동안 있었던 사회생활의 부당함이나 억울함들이 모두 터지고 회복하는 순간들이었던 것 같다.      


이 과정에서 너무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처음에는 잠이 잘 오지도 않았고 자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배도 고프지 않아서 라테 한 잔이면 하루 식사로 충분했다. 모든 것이 아까웠다. 특히 시간. 밤새 스스로에 대해 고찰했다. 자기소개서에는 회사의 잘못이 있었어도 ‘내 잘못입니다’ 해야 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감정을 없애고 오로지 입사를 위한 글을 쓰려고 고민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환멸에 시달리고, 왔다 갔다 하는 기차역에선 매번 사람들 틈에 둘러싸여 있어도 오열하는 순간들이 쌓였다.     


이러한 사색과 고민들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문제가 생겼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에만 잠겨있느라 상대방이 ‘무례하다, 서운하다’의 감정을 느끼게끔 했고 밥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대화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과잉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나 같은 경우는 너무 큰 리액션, 목청이 좋은데 너무 크게 웃는 모습. 이런 행동은 가식적으로 보였을 수 있다. 나도 왜 그랬는지 몰랐던 행동들을 되돌아보니 많이 했구나 싶다. 이러한 모습들만으로도 가까운 사람들이(너무 감사한 건 이때 떠난 사람들은 없었다..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한 듯하다.) 힘들어하거나 떠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이후에는 인지 능력을 점차 잃기 시작했다. 서울역에서 누군가가 쫓아온다며 아무 기차에 올라타고선 다급하게 아빠를 찾는 전화를 하거나, 대전에서는 반나절 동안 같은 곳을 빙글빙글 돌며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다. 간단한 은행 업무도 처리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사람들을 의심하고 이상한 망상에 시달리는 모습이 나타날 때쯤 돼서는 가족들도 심각성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다음날 첫차를 타고 엄마가 올라왔다. 증상은 점점 더 심해졌다.     


다음날이었나. 엄마, 아빠, 동생이 모두 대전에 모였다. 온갖 망상에 시달리던 나를 위해 온 가족이 손을 잡고 밤새도록 기도했다. 주 기도문과 성모송을 밤새도록 외웠다. 몰래카메라나 감시자가 나를 감시하는 것 같은 생각, TV 속 사람들의 모습이 이상하게 보이거나 뉴스 기사 중에 잔인한 것들이 나에게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외에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나에게 해를 가할 것 같은 망상, 환청에 시달렸다. 음식, 심지어는 물에도 독을 탄 것 같은 생각에 아무것도 먹지 못하거나 입에 넣었다가 뱉어내는 등 이상 행동들을 했다. 집에는 두 명 정도가 자살한 것이 보인다며 당장 이사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부모님은 동생을 다른 원룸에 이사시키고, 나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포항으로 데려가기로 결정하셨다.    

 

그렇게 3개월 정도 포항에서 통원치료를 했다. 그동안은 치료에만 집중했고, 처음에 입원을 해야 할 정도였던 나의 상태는 점차 나아졌다. 상태는 호전되었지만 PTSD, 다시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에 지독하게 시달리기도 했다. 이럴 때도 가족들의 도움을 받았다. 처음에는 포항에서 도서관에 다니며 공부를 했다. 아픈 와중에도 컴퓨터 활용능력 2급을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막상 시험을 보러 가서는 쉬워서 아직 완전히 바보가 된 건 아닌가? 하고 희망을 가지기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왜 그런 생각을 했냐? 당시 했던 지능검사 결과 때문이다. 정신적으로 문제를 겪고 있을 때 정신과에서 IQ 검사는 통상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그때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검사를 했었고, 아니나 다를까 평상시보다 훨씬 낮은 IQ 결과를 봤기 때문에(평균 수준 범위 내이긴 했지만) 바보가 됐다는 생각을 솔직히 아직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이렇게 병을 앓고 나면 뇌세포가 5%씩은 줄어든다는 결과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더더욱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약을 먹어야 하며 임의 단약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게 정말 말이 쉽지 않다. 상태가 호전이 되긴 하지만 호르몬에 영향을 주는 약들이기 때문에 살도 30kg가 넘게 쪘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너무 힘들지 않으면 자꾸 ‘그만 먹고 싶다, 병원 가기 싫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사람 마음이 간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드는 생각이지만, 이 생각과 부단히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다. 길게 보면 완전히 낫기 위해, 병원도 가지 않기 위해 꼭 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단약은 반드시 전문의, 담당의와 충분한 상의 끝에 결정해야 한다.     


두려워하긴 하지만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다는 판단하에 부모님은 다시 원래 생활공간인 대전으로 이를 악물고 쫓아내듯 보냈다. 마치 사자들이 새끼를 벼랑에서 밀어 살아남는 녀석들만 키우는 것처럼 다시 독립적인 개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것이다. 처음에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나에게, 아직 준비를 충분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코너로 모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나에게 그 순간, 그 조치는 꼭 필요했던 최선임을 안다.      


하지만 처음에 언급했듯 여러 가지 문제들을 여전히 안고 있었다. 대인 기피, 관계 망상, 의심,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가끔 증상이 심해지면 티비에 나오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이거나 영상물, 음악을 잔잔한 것만 들어야 하는 등의 문제들. 또, 이제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지만 온전히 나를 드러낼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답답함도 느꼈다. 나를 숨겨야 하기에 거짓말을 하는 듯한 죄책감에도 시달렸다. ‘그래. 그럼 솔직하게 밝히자’ 하고 밝혔다가 편견, 프레임에 씌는 경험도 하지 않았던가?     


이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2021년 12월, 2022년 11월. 더 이상 병원에 올 필요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 이후에도 심리적 트리거가 발생하는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다시 병원에 가기도 하지만, 평생 약을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결과는 감개무량하다.     



앞으로는 어떤 계기로 이러한 변화를 얻게 되었는지, 마음먹은 것들을 행동에 옮기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고, 어떤 용기를 내었는지 써보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만나왔던, 또 새롭게 만난 사람들은 나의 세계를 넓혀주었는데, 잊지 못할 이 사람들에 대해서도 언급할 것이다. 마지막은 이렇게 완전히 부서졌던 내가 다시 일어서기까지의 과정에서 내가 쌓아온 작은 성공 경험들과 앞으로의 도전에 대해서 언급해 보고자 한다.      


에피소드가 쌓일수록 나란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길 바라고, 나의 이야기가 지금 힘듦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엄치는 당신에게 비밀스러운 위로가 되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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