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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지니 Jun 30. 2023

미치려면 곱게 미치자

음악, 버스킹

'아프니까 인생이다' 한 때 이 말이 유행했던 시기가 있었다. 젊은 사람들을 갈아넣기 좋은 명분이 되곤 했다. 열정 페이를 요구하고 책임질 가정도 빚도 없는, 그렇지만 사회생활 경험을 쌓을 기회도 없는 어린 친구들은 그렇게 총알받이가 됐다. 나도 예외는 없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웃어야지, 아무리 힘들어도 버텨내야지. 다들 이 정도는 아파. 그리고 네가 겪는 그 정도의 아픔이 아픔이야?'라는 사회적 시선들. 나는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조울증'이라는 병에 걸려버렸다. 입원을 고려할 수준까지 가고 나서야 모든 것을 멈출 수 있었던 나는 이제는 '나 자신'이 없어질 정도로 아프고 힘들다면 그 무엇도 버텨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나락으로 한 번 떨어져 버리면 '완전한' 회복이 힘들 뿐 아니라 낫기 위한 기간도 무한정 길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선택에 대한 책임도 내 몫이다. 대책 없이 관두기엔 숨 쉬는 것만으로도 나가는 돈을 무시할 순 없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미래의 나를 위한 조건들을 고려했을 때 지금 잠깐의 행복을 보류하고 버티는 것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나를 챙길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에너지가 생겨야만 할 수 있다. 어차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고, 이미 나는 미쳐버린 상황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아는가?


어차피 미쳐버린 것이라면, 진짜 미칠 것이라면 '곱게' 미치자는 것.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예의를 차리는 편이다. 하지만 병을 겪으면서 타인에게 민폐를 많이 끼쳤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업으로 삼으면서, 지독한 무기력에 시달리고 너무 많은 생각들을 감당할 수 없어서 일상생활에도 지장이 생겼다. 가장 문제는 업무 할 때였는데, 메모를 해놓고도 자의적, 타의적으로 일을 놓치거나 잠깐 잊거나 하는 일들이 잦았다. 상사가 놓치지 말라며 업무를 리마인드 해주는 경우도 많았다. 친구와 대화를 하거나 밥을 먹을 때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를 생각에 잠겨 멍 때리거나 방금 한 얘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이번에는 사람 복이 있는 시기인지, 약으로 다시 집중력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고 놓치는 업무를 다정하게 챙겨주는 상사를 만났다. 친구는 도대체 어떤 생각들이 나의 머릿속을 장악해 버렸는지 궁금해해 주고, 말로 뱉기 힘들어하는 나에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정말 '끝까지' 기다려줬다.


그렇게 '남'만 생각하던 나는 '나'를 생각하는 시간들을 갖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어르신은 나를 보고 '저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것'이라고 욕할 순간들이 스쳐서 괴롭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무너지길 했나? 얄밉게 세상은 더 잘 굴러가는 듯 보인다. 그렇지만 갑자기 그 말이 떠오른다. '나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야!' 모두가 싫어하고 배척했지만 자기 멋대로 일하고 나를 괴롭히던 과장이 매번 하던 말이다. 물론 이 때도 해주고 싶은 말은 항상 같았다. '미칠 거면 곱게 미치던가'

그걸 나한테 적용하게 될 줄이야.






작년에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일 중에 하나는 결혼까지 생각했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것이었다. 가장 빛나고 소중한 청춘 시기인 20대와 30대 초반을 함께 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8년 여를 만났고, 헤어짐은 힘들었지만 서로 지저분하거나 질척거리게 하지 않았다. 우리의 마지막은 꽤나 아름다웠다. 내가 아프기 시작했던 순간, 아파서 헤어지자고 했을 때, 아픔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며 다른 사람에게 갔을 때, 결국 너만 한 사람은 없었노라며 다시 돌아왔을 때. 쉽게 이해하기 힘든 모든 순간에 '나'를 선택해 준 사람이었다. 그 세상을 버리고 온전히 혼자 남는다는 것은 사실 자유롭기보다는 공포에 가까웠다.


그 공포를 이겨내고, 외로움을 견뎌낸 후에야 비로소 자유를 얻었다. '혼자서도 괜찮아'라는 생각이 들 때쯤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은 '대중 앞에서 노래 부르기'였다. 혼자 흥얼거리거나 가족과 같은 사람들과 있을 때만 아주 가끔 노래방에 가는 정도였다. 그나마도 코로나 때문에 2년 만에 코인노래방을 갔었던 기억이 난다. 내 동생은 항상 '언니는 노래 참 잘해'라며 나의 취향을 응원해 줬지만 사람들 앞에만 서면 덜덜 떨리는 목소리를 감출 수가 없었다. 사실 이때는 대인기피와 사람에 대한 의심도 너무 커서 나에게 이목이 집중되거나 말을 해야 하는 상황만 와도 목소리가 떨리고 불편했다. 근데 노래를 부른다니?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도 조금 더 '무모해지자'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것은, 보컬레슨을 받는 것이었다.


뮬란 OST였던 'Reflection'을 염소처럼 덜덜 떨면서 불렀다. 그때의 내 모습은 '한껏 말린 등, 잔뜩 움츠러든 어깨,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정도가 생각이 난다. 실력을 떠나 누가 봐도 자신감 없어 보이는 모습. 그런 모습일지라도 용기를 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때의 내가 세상에 말하고 싶었던 것을 잘 드러내주는 곡이었다.



뮬란 OST - 'Reflection'


Look at me

I will never pass for a perfect bride or a perfect daughter

Can it be

I'm not meant to play this part

Now I see

That if i were truly to be myself

I would break family's heart

Who is that girl I see

Staring straight back at me?

Why is my reflection someone I don't know?

Somehow I cannot hide who I am

Though I've tried

When will my reflection show

Who I am inside?

When will my reflection show

who I am inside?



3개월을 다니면서, 선생님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떨리지 않을 정도가 됐다. 연습 중간에 수다를 떨면서 참 많이 웃기도 했는데, 웃을 때면 원래의 내 목청이 돌아와서 '웃는 것만큼만 노래하셔도..'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처음에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를 때는 50점으로 시작했고, 스스로를 음치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점수 없이 노래를 불러도 덜 긴장할 정도로 성장했다. 친구와 커버곡을 준비할 정도로 자신감도 찾았다.







자신감을 회복하고, 혼자서 가는 코인노래방이 익숙해질 때쯤 보컬레슨을 중단하고 버스킹을 했다. 정말 단 한 번이었다. 대전에 있는 엑스포 다리 위에서 '아이유-내 손을 잡아'라는 노래를 불렀다.


열몇 명의 사람들이 호응해 주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분이 '잘한다~'며 응원해주기도 했다. 난생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버스킹을 하고 박수를 받았다. 그때 내 머리를 흔드는 바람의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살랑살랑-'



'아, 나는 눈물겹게도 여전히 살아있구나..'



한 번으로 끝날 것 같던 버스킹은 계속 이어졌다. 보컬모임에 가입해서 더 수월하게 도전하고 있다. 이 때는 '아이유-이름에게'라는 곡을 부를 때였는데, 사람들이 플래시를 켜고 흔들어줬다. 너무나 예쁜 빛들이 눈앞에서 흔들렸다. 가슴이 벅찼다.





모든 것이 변했지만 나는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이다. 여전히 목소리는 떨리고,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노래로 다 풀어내지 못한다. 답답하기도 하다. 차이점은 이제는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생각만 하던 것들을 '미쳐보자'하고 행동에 옮기면서 더 이상 꿈이 아닌 현실로 만들었다. 노래를 잘하지도 못하면서 고작 몇 곡 불러놓고 버스킹 했다고 말하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예술이 '삶의 위대한 자극제'라고 말했다. 의미는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예술은 쓸모가 있어야만 예술이 아닌 것.


삶을 살아가면서 시기별로 해야만 하는 일들과 과제는 쌓여있다. 해야 할 것들이 무수히 많기에 선택과 집중이 더욱 필요해졌다. 선택의 순간들. 더 현명한 방향으로 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있다면 한 번쯤 용기를 내봐도 좋지 않을까?



어차피 미쳐야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라면 '곱게' 한번 미쳐보자.

어떤 예상밖의 답이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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