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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지니 Jul 04. 2023

혼자가 아니야

음악, 뮤지컬

MBTI가 어떻게 되시죠? 처음 보는 사람들이거나 스몰 토크가 필요할 때, 그 사람의 성격을 유추해보고 싶을 때 MBTI를 많이 물어보는 것 같다. 예전에는 혈액형을 많이 물어봤던 것 같다. 가볍게, 우스갯소리로 넘길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나는 성격 유형을 제한해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게 유쾌하진 않다. 모든 성격에는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단점을 가지고 상대방을 놀리는 듯하는 게 싫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는 너는 완벽해?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왜 네가 날 그렇게 쉽게 판단해?’ 친한 친구들한테 살짝 이런 속마음을 비추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칭할 때 ‘나 진지충이야’라고 말하곤 한다.     


회복기에 접어들면서 더욱 ‘나’에 집중하게 됐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에 대한 생각이 많다. 나의 특징 중에 도드라지는 것, 지인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을 되돌아봤다. ‘모든 것들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걱정이 많은 걱정 인형이라는 점.’ ‘너는 생각이 너무 많아..’라는 말을 항상 들어왔던 것 같다.

그런 생각들이 나를 완전히 잠식하고 건강을 해칠 지경이 돼서야 조금 가볍게 넘기는 것도 필요하단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생각들은 행동을 제한하기도 해서 무언가를 시작하기 힘들어하기도 했다. 의심도 많다. 이건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 적용되기도 하는데 이는 심한 자기 검열로 이어진다. 누굴 만나기 전에는 ‘너무 친해져서 말실수하면 어떻게 하지? 지금은 나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데, 나에 대해 알고 나면 달라지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만나고 와서는 ‘안되는데, 생각보다 너무 친해져 버렸는데..’ ‘나에 대한 얘기를 너무 많이 한 것 같은데.. 말 실수한 건가? 두렵다.’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조울증’이라는 병이 내게 준 후유증 같은 걸까? 어쩌면 병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기질적인 문제는 아닐까도 생각했다. 이미 고착화된 나의 성격적 결함. 왜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걸까? 왜 이렇게 별난 성격을 가졌을까? 생각할 때도 많다. 이런 수많은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실제로는 ‘너 진짜 특이해, 너는 진짜 성격 이상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메타 인지, 자기 객관화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작년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때를 회상했을 때 가장 좋아졌던 점은 ‘생각’을 줄이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 초점을 많이 맞췄다는 것이다. 변화가 크게 일어난 것은 병이 발병하고 3년 차가 돼서다. 사실 3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직도 하고 커리어를 위해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치료가 필요했고, 약을 복용해야만 지속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제는 문제가 생겨도 상의할 어른, 전문가, 주치의가 곁에 있다. 그를 기반으로 해서 자신감도 어느 정도 생기고, 든든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여전히 도움을 받아야 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진정한 변화는 그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서는 것. 처음에는 ‘무모해지자’라는 단어만 계속해서 되뇌었다. 많은 생각들이 몰아닥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을 때일수록 더더욱 ‘무모해지자’ ‘무모해지자’를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겼다. 차차 어떤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는지 풀어나갈 예정이다.


이번에 말할 것은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악’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이다. 개개인마다 방법은 다 다르겠지만, 나의 위기 극복법인 ‘음악’은 가장 효과 좋은 치료제였다. 특히 나는 감정, 생각 조절이 힘들었기 때문에 이를 조절하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방법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의사 선생님의 표현으로는 감정을 ‘가두는 것’. 너무 들뜨지도 너무 가라앉지도 않게 해주는 것이 중요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가장 먼저 했던 것은 ‘기록’이었음을 말했다. 그중에서도 일기를 언급했었는데, 내가 한 번에 생각하는 것들은 너무나 많았고 빠르게 바뀌었기 때문에 그 속도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 속도 조절을 ‘음악’이 해줬다. 순간의 감정의 흐름에 따라 음악을 다르게 들었다. 가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너무 많은 생각들에 복잡해질 때는 가사가 없는 음악을 들었다. 오히려 혼란이 가중되기도 했기에.      





짧은 인생이지만, 이렇게 그간 겪었던 수많은 고비들에 지친 영혼을 음악이 달래줬기에 ‘음악’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자연스럽게 찾게 됐다. 계기는 이렇다.     


주치의 선생님으로부터 치료와 상담을 받으면서 어느 순간부터 미션처럼 수행했던 것들이 있다. 약을 끊고 병원을 안 와도 된다는 진단을 받기 위해 마지막으로 해내야 했던 미션은 ‘작은 것부터 성취하는 것’이었다. ‘음악’에서는 작년부터 쌓아온 작은 경험들이 있었기 때문에 빌드업할 수 있는 ‘뮤지컬’에 눈을 돌리게 됐다. ‘음치가 보컬 레슨을 받고, 버스킹을 하고, 뮤지컬에도 도전한다.’ 상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 아, ‘너목보’에 ‘음치’로 출연한 것은 아니었다.      


친구와 우연히 보러 가게 된 ‘빨래’라는 뮤지컬이 그 시작이었다. 각자의 삶의 사정들을 서로 껴안아주며 그럼에도 희망을 찾아가는 점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10년 전에도 봤던 뮤지컬이기 때문에 울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는데, 감정 이입이 너무 심하게 되어버린 탓인가? 친구와 휴지 한 조각을 나눠가며 엉엉 울며 봤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보기만 해도 좋은데, 내가 직접 저 무대에 서서 공연을 하면 어떨까?’      

그리고 바로 찾았다. ‘뮤지컬 갈라쇼’를 준비하는 직장인 소모임을! 3개월 동안 보컬과 춤, 연기 레슨을 받고, 개인적으로도 모여서 연습했다. 나이도 많게는 10살까지 차이가 났고, 직업도 다양했지만 뮤지컬 공연을 잘 올리겠다는 목표 하나로 똘똘 뭉쳤다.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영웅’, ‘맘마미아’ 세 개의 작품을 연습했다.      


사실 처음부터 이 멤버들이 너무 좋았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시작은 배역을 정하기 위한 오디션을 볼 때였다. 내가 선택한 오디션 곡은 ‘번지점프를 하다’라는 뮤지컬의 ‘그게 나의 전부란 걸’이라는 넘버였다. 높은 음역대가 오히려 편했고, 가사가 너무 좋아서 선택했던 넘버였다. ‘만약에, 추운 바람이 우리를 괴롭혀도, 서롤 더 꼭 안아줄 이유일 뿐야♪’ 나는 당연히(?) 목소리가 벌벌 떨렸다. 평가를 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앉아있던 멤버들이 다 같이 불러줬다. 덕분에 노래를 끝까지 부를 수 있었다. 놀랍지 않은가? 더 비중 있는 역할을 맡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 아니었다. 원하는 배역을 얻지 못하면 싸우거나 나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렇지 않았다. 다들 진심으로 서로를 응원해 주고, 즐기는 분위기였다.      


결과는 ‘번지점프를 하다’의 주인공인 ‘태희’ 역할! ‘영웅’은 안중근의 어머니 역할인 ‘조마리아’ 여사, 주인게이샤, 사진기사를 맡았다. ‘맘마미아’에서는 센터 오른쪽을 맡았다.      


용기를 내면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생긴다. 내가 주인공을 맡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부담스럽기도 했다. 과분한 역할을 맡아서 해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솔로곡은 솔로곡이기 때문에 부담스러웠고, 듀엣곡이나 앙상블 곡은 다른 멤버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 두려웠다. 그렇지만 이번에 뮤지컬을 하면서 몸소 깨달은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문제들을 겪었지만 우리는 늘 함께였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앙상블 곡 중에서 ‘영웅’의 ‘단지동맹’이라는 넘버가 가장 좋았다. 합창 연습 때 다 같이 입을 모아 노래를 부르고 합이 맞춰질 때마다 느꼈던 그 짜릿한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다들 같은 마음이었는지 새벽 두 시가 돼도, 세 시가 돼도 여운을 놓지 못해 뒤풀이를 하면서 풀곤 했다. 다음날 출근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피곤할 텐데도 어느 누구도 먼저 집에 가잔 얘기를 안 했다. 정말 신기하고, 멋진 사람들이다. 드디어 공연 날이 되고, 관객들 앞에서 조명을 받으며 공연을 했다. 얼굴에 붙인 마이크를 어색해하면서도, 망치진 않을까 두려운 와중에도 너무 설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든 순간을 ‘함께’했다.




그리고, 나는 진단을 받았다. ‘더 이상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됩니다.’      


기쁜 마음과 동시에, 서운했다. ‘선생님, 보고 싶거나 안부 묻고 싶어도 이제 못 온다는 게 슬퍼요.’ 의사 선생님은 웃으며 달래주셨다. ‘살다가, 또 힘든 일이 있거나 괴로우면 언제든지 와. 나는 항상 여기에 있으니까.’


그리고 마지막 미션을 주셨다. 이제는 ‘작은 일부터 성취하라’는 자신감을 어느 정도 얻었으니, ‘꾸준히’에 집중해 보라고. 다시 병원을 오지 않기 위한 미션이었다.     


사실 이 미션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다시 와르르 무너져서 병원을 다시 가게 되기도 했다. ‘나 이렇게 해서 병을 완전히 극복했어요!’라고 쓰고 싶었던 내 다짐은 처참히 부서졌다.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작지만 확실한 위로를 전해주고 싶었던 마음은 아직은 실현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회복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도 번번이 실패를 해서 괴롭기도 하다.     


이렇게 여전히 극복 중에 있지만, ‘내가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이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 의지만으로는 힘든 영역이 분명히 있다. 그것은 본인이 나약하거나 정신력이 부족해서가 절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치료나 상담을 받는다고 본인의 인생이 실패하거나 망한 것도 절대 아니라는 것. 정신과에 가도, 진료 기록이 남아도 생각보다 본인의 커리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도 말해주고 싶다. 당사자가 아니면 진단 결과나 진료 기록은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병력이 있어도 가입 가능한 보험도 있다. 사실 지금 내가 말하는 것들은 한 때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들이다. 이미 답이 있는 걱정들을 하면서 혼자서 더 끙끙 앓고, 병을 키웠던 때가 있었기 때문에 꼭 말을 해주고 싶었다.     


'넌 혼자가 아니야. 너를 위해 말을 아끼고 곁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줘.

서로가 서로를 돕고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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