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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지니 Jul 06. 2023

힘들 때 드는 생각에 속지 말자

운동, 걷기

‘기분이 안 좋을 때 푸는 법은?’




“그럴 때는 빨리 몸을 움직여야 한다. 집 안에라도 돌아다니고 설거지라도 한다든지 안 뜯었던 소포를 뜯는다든지 우울한 기분이 들 때 그 기분에 진짜 속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 기분 절대 영원하지 않고 5분 안에 내가 바꿀 수 있어’라고 생각하면서 몸을 움직여야 한다.”


- 아이유



5분 동안 아무것도 아닌 일을 하라.     

크리스틴은 부정적 감정들 때문에 집중력이 흩어질 때는 하던 일을 멈추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을 하라고 권유한다. 특히 마감기한이 촉박할 때는 5분 동안 아무것도 아닌 일을 최선을 다해한다. 초조하고 압도적인 현재 상태에 완전히 머무른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면서 물이 목을 타고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당황스러운 상태에 대해 마음껏 불평한다. 그러면 기분이 좋아진다. 고양이의 부드러운 배를 만지면서 내가 그 순간 멍하고 바보 같은 상태라는 사실을 가만히 음미하기도 한다. 이렇게 순간적인 현실에 굴복하면 안도감이 느껴질 뿐 아니라 놀라운 일이 생긴다! 아무런 강요와 강제 없이 또 다른 현실을 수용할 수 있게 된다.      


5분 후에는 유기적인 에너지가 생겨 또다시 힘을 낼 준비가 갖춰진다.      


그녀는 말한다. “당신의 현재 기분을 먼저 존중해야 한다. 새로운 현실을 강요하지 말고 지금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슬플 때 슬퍼하고, 두려울 때 두려워하고, 당혹스러울 때 당혹스러워하면 된다. 두려움이나 산만함 등은 호수 속의 물처럼 삶에 들어가고 또 흘러나온다. 그대로 흐르게 놓아두면 새로운 것이 들어올 공간이 저절로 생긴다.”     


-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_팀페리스 책 중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 가장 먼저 집중하는 부분은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공통적으로 궁금해하는 것은 그 기분이 왜 드는지, 어떻게 하면 빨리 빠져나올 수 있는가일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이야기하면 사실은 너무 포괄적이다. 오늘은 내가 오랜 시간 동안 겪어왔던 문제인 무기력에 대해서 좀 더 집중해서 이야기하고, 어떻게 극복해 왔는지를 써보고자 한다.      


김경일 교수님이 강연하신 ‘심리 읽어드립니다. 팬데믹 시대 : 무기력증’에 나온 무기력에 대해 언급해 보겠다. 먼저 “번아웃”과 “무기력증”을 구분해야 한다. “번아웃”은 무언가라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조금도 남아 있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무기력증”은 에너지는 있지만 쓰지를 못하고 있을 때를 말한다. 예를 들면, 지금 해야 하는 것은 시험공부인데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것. 이런 상태는 나의 에너지가 완전히 바닥난 게 아니라 어디에 쓸 수 있는가를 모르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잘못된 방향에 의미 없는 일을 하게 되고 무기력을 느끼는 것이다. 무기력 전에 오는 것이 우울감인데, 우울감이 지속되면서 에너지는 있어도 무엇인가 할 수 없는 상태로 가버리면 무기력에 빠지게 된다. 이럴 때는 능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빠져나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무리 심리적인 문제라고 해도 물리적인 운동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우선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데 설거지가 제일 좋은 방법이다. 왜? 결과가 빨리 나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기력에 대해 빠져나오는 방법에 대해서는 다양하게 제시할 수 있다. 왜냐? 무기력을 오랫동안 겪어왔고 시행착오를 무수히 많이 겪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서, 무기력에서 잘 빠져나왔는가?’ 물어본다면, 슬프게도 ‘아니, 절대’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나는 솔직히 에너지가 없으면, 에너지가 있어도 의미를 잃어버린 무기력 상태에 이미 빠졌다면 몸을 움직여도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내가 가장 공감 가는 말은 이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얇은 이불 한 장이다.’


내가 겪었던 ‘조울증’은 감정 변화의 폭이 굉장히 크기 때문에, 우울한 감정이나 무기력에도 쉽게, 깊게 빠질 수밖에 없다. 높이 올라갈수록 떨어질 때는 가속도가 붙어서 더 강하게, 깊게 빠져드는 것처럼. 이럴 때는 어떤 방법을 제시해도 사실 와닿지가 않는다. 이불속에서 일어나 무엇을 한다는 것이 정말 세상에서 가장 무겁게 느껴진다. 이럴 때야말로 도움이 필요하다. 나는 가족, 친구들이 도움을 많이 줬다. 실제로 이렇게만 있어서는 안 된다며 겨드랑이 사이로 두 손을 넣어서 이불 밖으로 끌어내 샤워라도 하게 만들어준 친구도 있었고, 병원도 갈 에너지가 없을까 봐 주치의 선생님은 내원일이 오거나 지나면 문자로 항상 병원에 올 때임을 알려주셨다.      


에너지 자체가 없을 때는 치료와 휴식이 먼저였지만, 에너지가 어느 정도 생기고 나서는 무엇이든 할 일을 찾기 시작했다. 시작은 정말 ‘아무 의미 없는 것에서부터’ 여야만 한다. 계속 이야기하던 ‘작은 일부터 성취하라’와 같은 말이다.      





작년 3월, 8년을 만난 남자친구와 헤어지면서, 회복기에 접어들던 나는 증세가 다시 심각해졌다. TV에 나오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이고, 특정한 인물들이 나를 해칠 것만 같아서 극도로 두려웠다. 음악도 가사가 없는 잔잔한 음악만 들을 수 있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실수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괴로워하다가 다시 아프게 된 것 같다. 너무 화가 났고, 억울했고, 괴로웠다.      



이때 시작한 것이 바로 ‘걷기’이다.      


‘에스키모인들은 화가 나면 무작정 걷는다고 한다. 아무 말없이 화가 풀릴 때까지 얼음 평원을 걷고 또 걷는다고 한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또 걸어 화가 다 풀리면 그때 비로소 멈춰 서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다시 걸어 되돌아온다고 한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은 뉘우침과 이해와 용서의 길이라고 한다.’     


무작정 걸었다. 5시 반이면 기상해서 부모님과 안부 전화를 하면서 집 앞 천변을 걷기 시작했다. 새벽, 퇴근한 후, 주말, 날씨도 가리지 않았다. 이제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용서하기 위해서 걷고 또 걸었다. 니체는 생각은 걷는 사람의 발 끝에서 나온다고 했다. ‘걷기’는 나에게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해 주었고 이는 새로운 기회로 이어졌다.      


다음 스텝은 걷기 모임에 가입한 것. 혼자서는 적당히 걷고 힘들면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기에 강제성을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예상치 못한 효과도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대인기피도 심했는데, 사람들과 같이 걸으면서 조금씩 섞이기 시작했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어디까지 해야 하고, 어떤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으면서도 좋은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지 새롭게 배우기 시작했다. 물론 가만히 얘기를 듣거나, 소심하게 있을 때가 대부분이긴 했다. 소수 인원에서부터, 10명이 넘는 인원을 통솔하여 걷기도 했다.


한 번 모이면 2~3시간 이상, 만 보 걷기는 걷는 축에도 낄 수 없을 정도로 걸었다. 열심히 걷기만 했는데, 아직 얼굴을 보지도 않았던 모임 운영진에게 인정을 받고 운영진 제안을 받기도 했다. 약 26km, 6시간 정도를 천변을 따라 무한정 걷기도 하고, 걷기 모임을 나갈 때마다 비가 와서 비 요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비가 세차게 오는 날 오히려 걷고 싶다며 모인 사람들과 비바람을 맞으면서 오히려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걷기를 하다 보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할 수 없고, 내 이야기도 분명히 해야 되는 순간들이 오는데 그 순간들이 매번 너무나도 불편하고 스트레스였지만 또 내 방식대로 풀어나갔던 날들이 쌓였다. 걸음이 빠른 탓에 할 말이 없어서 그런 거냐는 오해도 받았지만, 어느 정도 내 심경이 반영된 것임을 이제는 인정한다.   

   

탄력을 받으니 몸을 더 움직이게 됐을 뿐만 아니라, 그 당시 만났던 사람들은 나를 정신적인 문제가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만큼 ‘추진력 있고, 활기찬 사람’으로 기억해 줬다. 건강도 많이 좋아졌다. 허리디스크가 있어서 주기적으로 척추 주사를 맞던 것도 개선이 되었다. 걷기 시작하면서 단 한 번도 허리가 아파서 병원을 간 적이 없었으니까. 이렇게 가시적인 성과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주변 사람들이 두고두고 이야기하고, 멋진 사람으로 기억해 주는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최근에는 일이 많아져서 걷기를 생각보다 많이 하지 못했는데, 그래도 점심식사 후에 잠시라도 산책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제는 자신감도 많이 생겨서 조금 덜 걷게 되더라도 스스로를 괴롭히지는 않는다. ‘나는 매일은 아니어도 스스로를 언제든지 통제할 수 있고, 절제할 수 있으니까’     


세상에서 이불이 가장 무겁다 느낄 때, 벗어나기 힘들다 느낄 때 드는 무수한 생각들에 속지 말자.

‘아무것도 아닌 일’부터 시작해 보자.

그중에 하나인 ‘걷기’를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거창할 필요 없다. 튼튼한 다리와 운동화 한 켤레면 충분하다.

이렇게 구제 불능이었던 나도 해내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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