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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지니 Jun 29. 2023

일기 쓰기로 작가되기

기록

나는 자기혐오가 심한 사람이다. 너무나도 쉽게 ‘난 어차피 안될 거야’, ‘역시 안될 줄 알았어’라는 생각에 빠진다. 가끔 무서운 건 그 생각을 하면서 안도하기까지 한다는 점이다. 현실에 안주하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그래서 생기는 문제들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자기애가 높은 사람들을 보면 쉽게 동경하고 이상화한다는 점이다. 나한테 없는 부분을 가진 사람. 그 사람을 가지면 ‘나도 쓸모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타인 의존적인 발상에도 쉽게 빠진다. 망상이다. 사실 알고 있다. 내가 나 자신이 되지 않는 이상 나는 누굴 얻어도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이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은 다른 영역이다. 요새 이 말에 공감이 많이 간다.     


이 얘길 하는 이유는 요즘 들어 가장 많이 고민했던 답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다. 머리와 마음이 모두 인정하는 내 병의 회복 시점이 언제인지 말이다. 처음 ‘조울증’의 발병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한 것 같다. 이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생각들과 행동이 회복기에 접어든 ‘나’를 만들어 줬는지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처음 시작은 ‘기록’이다. 나는 위기의 순간이 올 때마다 글을 찾았다. 읽기 건 쓰기 건 듣기 건 가리지 않는 편이다. 그렇다고 모든 책을 다 읽는 건 아니다. 내가 가장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건 사실 SNS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네이버 블로그, 밀리의 서재도 당연히 구독했다. 사실 밀리의 서재는 책 표지나 디자인을 훨씬 많이 본 것 같다. 그래서 이름만 아는 책들도 당연히 많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지 않으면 본 것이라 말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책을 다 읽어도 돌아서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책들도 많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보다 한 귀퉁이라도, 기억에 남는 글귀가 한 줄이라도 있다면 그리고 그에 대한 내 생각들을 알려주고 싶고, 그 생각이 확장된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실 거기서 브런치 작가가 될 발판을 만들었다. 시작은 이렇다. 조울증이 발병하면서 하고 있던 SNS를 모두 지웠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쌓아왔던 기록들을 단 하나도 저장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 내 흔적 자체를 남기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나는 이 세상에 오점이니까. 그리고 전과 같은 나는 이제 이 세상에 없으니까. 남들과는 다른 사람이니까.’라는 생각을 했다. 일도, 친구도, 사랑도 모두 잃었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포항에 내려와서 요양하면서 5년을 넘게 만난 남자친구에게도 이별을 고했다. 이제 나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다시는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것만 같았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그렇게 내 모든 족적을 지웠다. 정말로 우연은 교통사고처럼 다가온다. 모든 것의 의미를 상실할 때가 말이다. 가장 좋아하던 것들부터 흥미를 잃어버리곤 했다. 무기력한 하루들이 지나가고, 7층이었던 집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뛰어내리기 무서운지, 편안해 보이는지를 가늠하며 살아있고자 하는지를 확인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불필요하다고 느낄 정도로 괜찮아졌을 때, 이후의 삶은 보너스로 주어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점차 내가 좋아지면서 가장 먼저 다시 시작한 건, SNS였다. 인스타를 보며 와닿는 글귀나 성장시켜줄 영상들을 찾았다. 이렇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하는 나에게 친구는 출처를 명확하게 밝히고 글을 인용한 다음 내 생각을 써보라고 했다. 그게 바로 ‘큐레이션’이라며.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가 전혀 없다면서 옆에서 격려해 줬다. 나는 그렇게 블로그에 ‘영감’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었고, 하루를 살아갈 동기를 주는 글귀들을 끌어모았다. 그게 어느새 쌓이고 쌓여서 100개의 글을 포스팅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사실 ‘조울증’이라는 병을 겪는 나 자신을 많이 되돌아봤다. 나의 유년기, 학창시절, 현재를 돌아보며 ‘왜 나는 이런 병을 앓을 수 밖에 없었을까?’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했다. 나의 유년기는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정서적인 ‘사랑’과 ‘학대’가 공존한 시기다.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아주 어렸을 때도 우리 집은 참 가족 여행을 참 많이 다녔다. 길이 밝은 아버지 덕분에 내비게이션 없이 지도 한 장 가지고도 우리는 전국 일주를 했다. 심지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에는 아버지는 주 6일 출근이었는데, 매주 가까운 곳이라도 나가서 바람을 쐬게 해주셨다.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면 충분히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는 거리임에도 내 동생과 나는 아버지의 출근길을 항상 길게 만들었다. 야자가 끝나면 저녁 열시를 훌쩍 넘긴다. 거기다가 과외나 학원을 하나 더 다니면 열두시가 넘는 시간인데 항상 데리러 오셨다. 대학에 가고 나서도 이어졌다. 방학을 포항에서 보낼 때면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항상 데리러 오시곤 했다. 말수가 적은 경상도 아버지의 사랑은 그러했다.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틀어주던 오디오북이었다. 거실에 있던 검은색 소파에 앉아서 주황색 책을 펼쳐놓고 오디오북을 들었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잠들 때도 항상 틀어주셨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나 마음이 편안하다. 이때의 경험들과 기억들이 책을 읽는 것을 숙제로 여기지 않게 해준 것 같다.      


학창 시절에는 부모님이 여러 가지 삶의 문제로 많이 싸우셨고, 장녀라는 이유로 여러 가지 압박들이 있기도 했다. 우유부단한 성격과 좋은 게 좋은 거지~하며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어 하는 내 성격은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라는 어머니의 성격과는 정반대였기 때문에 마찰이 많았다. 그럼에도, 항상 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 또한 지나갈 거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엇을 했는가는 남을 거야.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자.”     


20대 초 중반에는 드디어 부모님에게서 물리적 독립을 했다. 하지만 경제적, 정서적으로 완전히 독립할 정도로 강인하지는 못했다. 여전히 이어지는 언어폭력과 정서적 학대는 견디기 힘들었지만, 이미 목사슬에 익숙해진 코끼리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빙글빙글 제 자리를 맴돌았다. 그래서 그런지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글귀를 수집하는 것에 집착했다. 그래도 좋았던 점은 있다. 신기하게도 그날 하루하루 가슴을 울리는 글이 나타났고, 당시에 하던 페이스북에 올리면 공감하는 사람들도, 그 글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며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읽으면 기분이 좋긴 하지만 당시에는 조회 수나 공감 수에 대한 기대감이 별로 없었다는 점이다. 한 사람에게라도 위로가 되거나 그날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글을 올렸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사실 견디기 힘든 하루하루를 버티기 위한 발버둥이었던 것 같다. 가족마저도 나를 저버린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때라 스스로 위로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었다.     


 




이쯤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 힘든 순간에도 절대로 놓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마음의 여력이 될 때 ‘일기를 쓰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나를 지우고 싶은 마음에 모든 기록들을 지웠고, 많은 일기들을 찢어서 버렸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나의 나쁜 과거들은 불에 태워 없애기도 하고, 찢어서 변기에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순간들이 남아있다. 좋았던 순간들, 도망가고 싶었던 순간들, 힘들고 아팠던 순간들, 그럼에도 해냈던 나 자신이 뿌듯한 순간들이 내 일기장에 여전히 남아있다. 내가 썼던 많은 기록들이 이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사라진 게 아니라는 것을 일기장이 말해준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이고, 나도 하루가 다르게 변해간다. 가끔은 나를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로 감정 기복도 심하고 예민하다. 하지만, 그때와 변함없는 생각을 가진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거기서 용기를 얻었다가도 다시는 전처럼 글을 쓸 수 없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많은 생각들과 이야기들을 버린 스스로를 탓하기도 했다. 잘 잊어버리는 성격 탓에 기억력을 탓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드는 생각들을 글로 쓰다가 예전 일기장을 보면 같은 이야기를 하는 나 자신도 발견된다. 내가 잊고 있었지만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는 이야기야말로 지금의 나를 있게 하는, 근간이 되는 가치관이라는 점이다. 내가 읽고 듣고 경험하고, 그것에 대한 내 생각들을 꾹꾹 눌러 적었던 그 순간들은 비록 실물은 이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나의 무의식에 깊숙하게 박혔다. ‘새로운’ 내가 된 것이 아니라 ‘잊고 있던’ 나 자신을 재 발견하는 과정인 것. 그것 하나 믿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현재의 나란 사람에게 맞는 글귀들은 얼마든지 존재할 터이니, 오히려 농도 짙은 생각들을 이끌어 내보자고.     


중요한 것은 절대 ‘일기 쓰기’라는 행위가 과제가 돼선 안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기를 쓰기 가장 적절한 시점은 바로 마음의 여력이 될 때이다. 비슷한 생각을 2018년에도 했던 것 같은데, 몇 가지 일기를 소개한다.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것뿐이고 난 할 일이 많다. 내 인생에서 다시 언제 올지 모르는 갭 이어. 안식년, 연구 년이 될지도 모른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루에도 몇 번씩 울컥하는데 선풍기 바람을 쐬며 스피커로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일기를 써 내려가는 이 순간을 잊지 말았으면. 삶에 지칠 때, 고민이 많을 때, 선택하는 것이 주저될 때, 이제는 제발 다른 사람 찾지 말고 의존하지 말고 믿고. 믿고.     

제발 좀 믿고 펜을 들길. 떠오르는 생각을 끝없이 써내려가보길. 스스로 답을 찾고 옳은 선택을 해나갈 능력이 나에게는 있다. 너무나 자주 그것을 잊는다.”

2018.8.4 일기 중에서


항상 긍정적인 건 아니었다. 가끔은 무너지고 흔들리고, 좌절하기도 했다.





“어두운 시절에 남이 나를, 내 곁을 지켜줄 거라 생각하지 말라. 해가 지면 심지어 내 그림자도 나를 버리기 마련이다.”     


그렇게 한없이 가라앉다가도 나에게 힘이 되는 건 언젠가 썼던 일기를 다시 펼쳐봤을 때,





“힘들어도, 아무것도 하기 싫고 온갖 걱정이 내 몸을 한없이 바닥으로 끌어내려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후회하게 되더라. 훗날 내가 이런 감정으로 혹은 처음 겪는 일에 무너져내렸을 때도 결국 내가 살아있다면, 다시 일어서려 노력할 때 가장 먼저 찾는 것은 바로 이 일기장일 것이다.”

2019.9.17 일기 중에서


한때는 누군가가 이런 내 기록들을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싫었다. 나만의 것, 내가 오롯이 솔직해질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인데. 혹시나 내가 죽었을 때 일기장이 유품으로 발견된다면, 이런 생각들이 다 알려진다면? 죽어서도 부끄러울 것 같기도 했다. 하. 지금이라도 걸러서 버릴 것은 버려야 하는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기도 했다. 아예 한동안은 일기를 쓰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자연스러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잘 정제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순간 속에서 나는 최선의 선택을 내려왔고, 정답을 만들어왔다. 정답으로 가는 길에는 다양한 풀이 방법이 있기 마련이고,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버림'을 익히는 계기도 온다. 잘 버리는 것이야말로 잘 지키는 것일 테니 버린 것에 미련을 버리고, 잊지 말자. 스스로 답을 찾고 옳은 선택을 해나갈 능력이 나에게는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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