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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ON 다온 Jul 10. 2024

17. 그 아픔과 슬픔은 나의 것이 아니다

나의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기


아빠랑 결혼할래!’

아빠 같은 사람이랑 결혼할래!’  

나는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생각이다.     



 초등학교 4-5학년 무렵 나는 ‘28살 정도에는 나도 결혼하지 않을까? 그 나이 즈음에는 결혼해야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어린 나는 그때만 해도 내가 어머니가 결혼한 나이와 비슷한 그 나이쯤 결혼이라는 것을 하고 내 가정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별로 걱정되지 않았다. 연애와 결혼에 호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때였다. 


 중학교 2학년, 좋아하는 또래 남자아이가 있었다. 말 그대로 짝사랑이라는 것을 했었다. 지금은 생각해 보면 우습지만 당시에는 마음이 무척 아팠던 짝사랑이었다. 하지만 연애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좋아하는 것이 전부였다. 보면 설레고, 대화라도 한 마디 하면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이 뛰는 그런 풋사랑이었다.      


 대학생, 성인이 되었다. 그때에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사랑하는 것이 없었다. 아니, 사랑하는 존재들이 서로를 헐뜯는 것을 보고 듣고 있었고 그로 인해 나는 젖은 신문지처럼 축축하고, 군데군데 찢어지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나조차도 사랑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사랑받고 싶어서 찢어지고 있는 것을 티 내지 않으려고 발악하고 있었다. 그때는 이미 결혼은 물론이고 연애도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 일이었다. 남의 연애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부럽지만 정작 나는 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기회가 생겨서 하면 하는 거고, 안 해도 상관없는 일, 그 정도였다.      


 그 정도로 생각했던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일단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힘들어했고, 특히 이성을 상대하는 방법을 몰라 어려워했고 무서워했다. 사람을 무서워하는, 남자를 무서워하는 상태로 그 어떤 것도 상상할 수 없었다. 사람이 무서웠던 이유 중 하나는 관계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내가 상대의 날카로운 모습, 화내는 모습과 그걸 상대하며 안절부절못하는 나의 모습이 상상되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다툼을 질리도록 보고 지내온 결과 중에 하나였다. 모든 관계는 언제나 좋을 수만은 없다는 사실이 뼈 깊숙하게 새겨졌고, 상대의 저 좋은 얼굴이 한순간에 바뀔 수 있다는 불안감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논쟁을 더욱 싫어하게 되었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연애며 결혼이며 생각할 수 있었을까. 친한 친구와 지낸 그 10년 넘는 세월도 매번 쉽지도, 즐겁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렇게 나이가 들수록 외로움은 짙어졌고, 연애와 결혼은 나와 먼 이야기가 되었다.      

 스물 중반 즈음, 잠깐 누군가를 좋아했던 날들이 있었는데 그가 내게 해주는 표현들이 좋아서 어쩌면 그와의 연애가 내 생각을 바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날들은 이제는 내게 큰 의미가 없는 날들이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꽤 오래 힘들어했지만 결국에는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것을 몸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로는 연애라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누군가 나를 사랑해 준다면 좋겠지만 적극적으로 원하지 않았고, 시간이 좀 흐른 후에는 내가 나를 아끼지 않고, 사랑해주지 않는데 누가 나를 그렇게 여겨줄까 생각하게 되어서 다른 사람을 챙기기 전에 나를 먼저 생각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어느새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결혼을 상상하지 않는다. 그저 현재의 집중할 뿐이다. 그동안 내 곁에서 누군가는 떠나갔고, 새로운 사람이 다가왔다. 서른이 되던 해, 나는 내가 모든 관계에 있어서 불안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게 되었고 그것이 내가 맺는 관계와 나 자신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관찰하게 되었다. 그럴수록 나는 모든 관계에 있어서 불안에 떨지 않는, 안정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사랑을 갈구하지 않고, 주는 그대로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안정적인 사람이 되고, 안정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와 함께하는 앞날을 계속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불안을 안고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게 되면서 이 모든 불안의 시작은 어디인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 나오는 답은 집, 부모님, 특히 교류가 잦았던 어머니로부터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불만을 가졌고, 불안해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내게 과감히 들려주고 보여줬기에 나는 그것을 그대로 흡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때는 그것이 자식으로서 응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좀 적당히 받을 걸 그랬다고 생각한다. 내가 흡수한 불안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냈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좋을 수만은 없다는 불안감. 그 아픔을 내가 겪을 수 있다는 걱정. 하지만, 사람 자체가 다르지 않은가. 

어머니와 내가 다르고, 아버지와 나의 상대가 다르다. 그렇다면 같은 문제도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할 것이라는 생각을 불과 며칠 전에 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아픔은 그때도, 지금도 나의 것이 아니다. 그것을 함께 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이제는 내려놓아야 한다. 나를 위해서 , 나를 사랑해 주는 그 사람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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