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이 중요한 이유
내가 자존감이라는 단어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은 성인이 된 후였다. 가족,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학교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부쩍 힘에 부치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막내의 입장으로 가족을 대하는 것은, 그러니까 사이가 좋지 못한 부모님과 친하지만 너무나도 다른 언니를 막내로서 함께하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는 날이 많아지고, 친구에게 나의 생각과 감정을 말했을 때 받아들여지는 날이 현저히 적어지면서 나는 그런 현실이 힘들다고 생각하면서 무엇이 문제인가를 생각했을 때 ‘나’라는 존재, 내가 과거에 그들에게 보여줬던 행동들이 문제였다고 생각하면서 그 누군가와의 관계에서도 나는 ‘나’라는 사람으로 있을 수 없겠다는 위험신호가 느껴지면서 ‘자존감’이라는 단어에 더욱 신경 쓰기 시작했다. 그쯤부터 자존감에 대한 책들이 한 권, 두 권 부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도 한몫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다.
내가 나의 자존감이 밑바닥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달은 과정은 꽤 아팠다. 부모님의 관계는 좋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더욱 악화되고, 나는 어머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아버지의 대한 험담이나 하소연을 듣는 것이 일상이 되어있었지만 아무런 반응 없이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언니의 행동까지 겪으면서 이미 지칠 대로 지쳤지만 말할 곳이 없어서 나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 시작했다. 내가 기억하는 부모님의 첫 다툼부터 내가 바라는 가족의 모습까지 적으면서 나는 실제 있었던 일들을 만들어 낸 이야기와 섞어가며 쓰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나는 나를 좋아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나를 좋아하기 전에 누군가의 사랑을 필요로 했고, 그것이 제대로 충족되지 않자 그것을 채우기 위해 상대의 생각과 기분을 생각하며 맞추려고 아등바등거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치 어느 예능에서 나의 모습을 자료화면으로 보는 것 같은 경험을 나는 그렇게 했다.
자존감은 쉽게 말하면 내가 나를 존중해 주는 마음을 말하는데 내가 나를 어떻게 존중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되물어볼 것 같다.
‘직장동료나 친구를 대할 때 어떻게 대하나요?’
그들과 밥을 먹는다고 생각했을 때 분명 물어볼 것이다.
‘뭐 먹고 싶어요? 뭐 먹을래요?’라고.
그건 그들의 생각과 취향을 존중한다는 것이고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존감이 낮거나 없다면 본인의 선택을 본인이 믿지 못한다. ‘내가 정말 잘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것을 정도를 넘어서 과거에 실수했던 날로 돌아가고는 한다. 그리고 정말 실수를 하게 되었을 때 ‘그것 봐, 내가 이럴 줄 알았어.’라며 자책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자존감은 스스로를 믿어주고 인정하는 그런 마음이다. 그 자존감이 낮았던 나는 ‘내가 이걸 하면 그 사람이 좋아할까?’를 먼저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좋아할 것인지를 먼저 생각했고, 상대가 좋다면 그게 내가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떤 실수를 해도 그 실수로 인해 상대에게 폐를 끼쳤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스스로를 질책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수 없이 잘 해냈을 때는 그것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 넘어갔다. 그래서 누군가 칭찬을 해줬을 때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보다 ‘아니에요, 뭘요.’라고 답하곤 했다.
내가 낮아진 자존감을 다시 채우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나는 내 자존감이 자라나기 위해서는 ‘자기 효능감’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키우는 것이 필요했는데 그건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당시에 나는 원하는 문구를 새길 수 있는 반지를 하나 구매했고, 반지에 ‘괜찮아, 괜찮다’라는 문구를 새기고 그 반지를 항상 손가락에서 빼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자책하는 상황이 생기거나 스스로를 다독거려야 하는 일이 생기면 그 반지를 만지면서 주문을 외우듯 머릿속에서 중얼거렸다. ‘괜찮아, 해결 방법을 생각하자. 할 수 있어.’라고. 실수를 하고 자책을 하며 머리가 새하얗게 되는 상황을 줄여나갔다. 실수를 재빠르게 인정하고, 해결하기 위해 다음 동작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나는 내 자존감을 서서히 채워나갔다. 자존감이 자라나면서 나는 나를 좀 더 아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달라진 것은 새로운 환경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할 수 있을까?’ 걱정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걱정을 하다가도 ‘뭐 해보는 거지, 해 봐야 알지. 하겠지.’라며 걱정을 계속하기보다 스스로를 믿으며 응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믿고 사랑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그건 스스로 살아가는데 중요한 원동력이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힘을 만들어 주고 사랑을 받는 용기도 만들어준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스스로 갖고 싶은 모습을 잘 생각해 보고 그 모습을 만들어내기 위해 스스로를 가꾸어 나가다 보면 ‘나 할 수 있네.’라는 성취감을 얻으며 스스로를 믿고 사랑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