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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주 Jun 09. 2023

무제

세탁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한다.


루틴대로 움직이다보면 다른 생각이 없어질 거라고

내가 큰언니, 오빠에게 당부했던 말이다.


하루에 하나씩,

어제는 설거지를 하고

오늘은 청소를 한다.


그러다 문득 들여다본 휴대폰에 안부를 묻는 메세지들을 쳐다본다.

휴대폰이 수시로 울리지만,

선뜻 눌러 볼 용기가 나질 않는다.

괜찮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안녕을 묻는데 안녕하지가 않은데 어쩌란 말인가.

전화기를 꺼버릴까.

그러면 아무렇지 않게 내 루틴대로 오늘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까.

언니를 모르는 이들의 안부는

감사하지만 외면하기로 했다.


아들이 학교에서, 학원에서 수시로 전화를 한다.

"엄마, 머 좀 먹었어? 지금은 회복률이 몇 퍼센트야? 70? 되었네. 그 정도면 되었어. 포카칩 사갈께. 같이 먹자. 물 말고 밥을 먹어야 돼. 물은 끼니가 아니야. "

11살 아들에게 이렇게 잔소리를 듣기는 처음이다.




먼지를 털어내다가 허공에 대고 중얼거린다.

가시나, 니가 아파서 다행이라고?

우리들중에 큰언니나 오빠나 내가 아니고

니가 아파서 다행이라고?

이게 다행인거가? 가시나야... 

우리가, 이게, 진짜로 다행으로 보이냐?


처음으로 언니한테 욕을 해본다.

그래도 아무것도 풀리지 않고 또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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