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하면서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를 자주 나누는 지인이 있다. 어느 날 지인은 대화 중에 자신의 아들이 "우리 집처럼 가족이 대화를 많이 나누는 집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하면서 자랑스러워하더란다. 가족 간 대화가 사라진 집이 많아진 듯하다. 아빠가 퇴근해서 집으로 가면 거실에서 T.V 시청을 하면서 보내던 가족들이 순식간에 각자 자신의 방으로 사라진다. 마치 바퀴벌레가 사라지듯 말이다. 이런 가족을 바퀴벌레 가족이라고 부른다.
아빠는 자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자녀들은 어느 순간부터 아빠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부담스럽다. 아빠는 아빠 관점으로만 세상을 보고 요즘 애들은 버릇없고 나약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끝은 서로 얼굴을 붉히고 끝이 난다.
아빠는 자녀를 본인 생각의 틀에 맞게 바꾸고 싶어 한다. 자녀는 아빠의 생각이 권위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생각해 수용할 생각이 전혀 없다. 자녀는 입을 다문다. 차라리 대화를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가급적 같은 공간에서 부딪치지 않으려고 자리를 피한다.
유독 한국에는 왜 바퀴벌레 가족이 많은 걸까? 한국가정의 식탁에서 점차 일상의 대화가 사라지고 있다. 한국의 부모는 자신의 행복보다 자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자녀들도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꿈인 음악을 포기하고 부모가 원하는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서로가 바쁘게 일상을 보내다가 오랜만에 가족이 모두 모여서 식사를 하면서 일상의 에피소드를 기쁘게 나누고 싶지만 가족 구성원 모두는 지쳐있다. 부모는 부모대로 일상의 일들에 치여있고 자녀는 자녀대로 공부에 지쳐있다.
아빠의 요즘 회사 생활은 기쁘지 않다. 아빠는 회사에서의 힘듦을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참아낸다. 자신보다 어린 팀장에게서 무시받는 눈빛이 느껴질 때나 과도한 업무로 온 힘이 소진되는 느낌이 들 때는 당장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앞길이 창창한 자녀를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 자녀들이 대학 졸업 때까지만 참기로 한다. 자녀는 자신의 힘듦을 참아낼 수 있는 원동력이다.
아빠는 자녀 두 명에게 들어가는 학원비와 과외비가 부담스럽다. 월급으로 생활비에 자녀들 사교육비가 감당이 버겁다. 여기저기 마이너스 대출을 끌어다 쓰고 있는데 이것마저 바닥을 보이고 있다. 강남으로 이사 온 뒤에는 사정은 더 심해졌다.
와이프에게 사교육비가 너무 든다고 이야기해 보았지만 다른 집은 전 과목 학원에 보내고 있다거나 고액과외를 시킨다며 은근히 나의 경제력 무능함을 탓한다. 어떤 아이는 할아버지가 모든 교육비를 감당해 준다면서 이런 시아버지를 만났으면 우리도 돈 걱정 없이 자녀들을 좋은 선생님에게 고액과외도 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며 한숨을 쉰다.
아빠는 마음이 답답하다. 현재 수준의 교육비도 감당이 되지 않는데 와이프는 두세 군데 학원에 더 보낼 생각인 것 같다. 모아둔 돈도 따로 없고 어렵게 사시는 부모에게 손 벌릴 수도 없고 마음만 답답하다. 아빠는 회사 수입 말고 다른 수입원을 찾아보기로 한다. 선배며 지인에게 여기저기 부탁 해놨다. 컨설팅 제안서 작업이나 번역 업무 등의 일감을 받아서 소위 N 잡을 뛸 생각이다.
엄마도 자녀를 위해 하루 종일 발을 동동 거리며 보낸다. 엄마의 정보력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자신도 뒤처질 수 없다. 아침 준비를 해서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나면 좋은 대학 많이 보낸다는 학원을 주요 과목 중심으로 알아본다. 오후에는 시간을 내달라고 사정사정해서 자녀와 같은 반 친구의 엄마를 만나기로 했다. 자녀교육 관련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다. 학원은 어디에 보내는지? 주요 과목 과외는 어떤 선생님하고 하는지? 내신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등등 궁금하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정보를 줄지는 잘 모르겠다. 강남은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엄마들이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 그래도 다행히 학원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왔다. 내일부터는 소개해 준 학원에 상담을 받아 볼 예정이다. 소득이 있었던 하루였다.
엄마는 저녁에 고등학교 한국사, 통합사회, 통합과학 공부를 하고 있다. 같은 반 학부모를 만났는데 국영수를 제외한 과목은 엄마들이 공부를 해서 시간이 없는 자녀에게 내용을 정리 요약해서 제공한다는 것이다. 전 과목 학원을 보내거나 과외를 시키면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엄마들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는 것이다.
공부는 아이들이 하는 것인데, 무슨 부모들이 공부해서 가르친다는 말인가. 정말 이 동네는 엄마들이 극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엄마는 이내 생각을 바꾼다. 모든 엄마들이 하고 있는데 내가 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만 뒤처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대학 수시 시험은 내신만 보는 학생부 교과전형을 응시하려는 학부모들이 많아서 학교 내신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 것이다. 이렇게 자녀를 위해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고 나면 모든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것 같다.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자녀를 위해 사는 부모의 삶은 어떨까? 자신의 행복보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사는 사람은 스스로 기쁨의 에너지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자신이 에너지를 만들어 내지 못하니 타인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아야 한다. 부모는 자녀가 전해주는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자녀의 우등한 성적이 자녀의 성공이 부모에게 에너지를 전해줄 수 있다.
하지만 자녀는 부모가 원하는 우수한 성적이 아니라 가슴을 쓸어내리는 성적표만 내민다. 기쁨 대신에 걱정과 분노가 치민다. 내가 이렇게 고생을 해서 뒷바라지를 하는데 이런 성적표를 내밀다니 화가 치민다. 반에서 일등을 했다고 명절에 가족들 앞에서 자랑하면서 어깨도 한번 으쓱하게 싶은데 그런 기회는 영영 없을 듯하다.
자녀는 자녀대로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지 못해 힘이 든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은 입에 올리지도 못하고 있다. 지금 성적으로는 어림도 없는데 중학교 때 전교권이던 미련 때문에 부모님은 아직도 의대 진학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고등학교에 와서 성적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래도 일 학년 성적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이 학년 일 학기 중간고사 성적표는 나왔지만 아직 보여드리지 못했다. 일 학년 겨울방학부터 학원도 늘리고 수학은 고액과외도 받고 있어서 부모님은 내심 기대가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성적은 일 학년 말 성적보다 오히려 나쁘다. 공부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수학 성적은 오히려 떨어졌다.
자녀도 괴롭다. 부모의 기대와 자신이 받은 성적표를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 요즘은 학원이고 학교고 모두 때려치우고 싶다. 내가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부모님 기대에 맞추어 의대 진학을 못하면 불효자가 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부모의 아바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부터 나의 꿈은 사라지고 부모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발악을 하고 있다. 중간고사 성적표를 내밀고 음악을 하겠다고 선언할까 하다가 집도 팔고 강남으로 이사와 나하나만 보고 사는 부모를 생각하며 마음을 접는다. 괴롭고 고통스러운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살고 있고 자녀는 부모를 만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무력감과 권태로움에 시달리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부모와 자녀의 고통스러운 삶을 보면 신들의 노여움을 사서 끝없이 바위를 언덕 위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은 그리스의 시시포스 신화가 떠오른다.
부모의 역할은 자식을 양육하고 안전하게 보호하며 교육을 통해 사회에 나가서 필요한 역량을 준비를 시키는 것이다. 이런 부모의 역할이 왜곡되면서 한국의 부모 역할은 자녀를 성공시키기 위해 모든 걸을 희생하는 역할로 바뀌어 버렸다. 부모는 자녀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만들었다. 이제 자녀의 성공이 부모의 성공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왜곡된 환경은 부모와 자녀를 고통 속에 몰아넣는다.
자녀도 서서히 본격적으로 독립을 위한 준비에 나서야 한다. 부모님이 자신이 정한 선을 넘을 경우 부모에게 자신의 삶이니 자신이 결정해서 살아가 보겠다고 정중하게 말씀드려라. 자신의 꿈이 음악이면 부모님을 차분히 설득하자. 자신의 인생이 아닌가? 나의 인생을 부모가 살아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 음악을 해야 하고 자신이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부모님께 이해시키자.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은 눈빛부터가 다르다.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우주의 기운도 같이 한다.
자신을 삶을 사는 사람은 기쁨과 충만의 에너지가 넘친다. 자신의 에너지를 가족과 주변 사람에게 나누어 준다. 부모는 자녀에게 지혜와 사랑의 에너지를 전해주고 자녀는 모험과 도전의 에너지를 부모에게 불어넣어 주자. 가족이 모인 식탁에는 어두운 침묵 대신에 언제나 기쁨과 웃음이 가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