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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남 카라 Jun 11. 2024

Prologue, 나의 생각 항아리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인생길을 걷고 있다. 밝은 대낮의 평탄한 길을 걷는 사람도 있고, 어두운 밤에 가시덩굴 무성한 산길을 걷는 사람도 있다. 부모로부터 독립한 성인의 인생길은 어느 정도 자신의 선택과 의지가 반영된다. 하지만, 자녀들은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부모에 의해 만들어진 초반 인생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자녀가 부모를 바꿀 수 없으니, 자녀에게는 부모에 의해 주어진 인생길 이외에 선택지가 없는 셈이다.


  어린 자녀에게 부모가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특히, 부정적인 영향력은 평생을 따라다닌다. 자신이 별도의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부모의 부정성에 함몰된 자녀는 평생을 불행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살게 된다. 물론, 겉모습은 특별한 문제없이 잘살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내면에는 음습하고 어두운 자기 부정과 고통스러운 트라우마가 자리하고 있다. 이런 자기 부정과 트라우마는 삶의 곳곳에서 역겨운 냄새를 뿜어낸다.


  이런 부모의 부정적인 성향은 부모가 자신에게 물려주었던 것처럼 자신의 자녀에게 대물림된다. 부모를 부정하면서도 부모와 똑 닮은 자신을 어느 순간 발견하게 된다. 유전자만 대물림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성향도 대물림한다. 부모에게 부정성을 물려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대에서 고통을 끊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심리적 부정성은 후손들에게 대물림되면서 자손들을 마음의 고통 속에서 몰아가게 된다.


  어릴 때 나는 말썽꾸러기 그 자체였다. 온갖 말썽을 피우고 다녀서 아버지가 나에게 "참, 별종 맞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모범생이었던 형, 누나에 비해 나는 동네 싸움꾼이었고 수박서리를 하다 들켜 주인이 집까지 쫓아오게 만든 그런 유별난 아이였다. 한 번은 한 살 많은 동네 형과 싸움이 붙어서 마을회관 시궁창에 처박은 일이 있었다. 동네 형과 형 부모님이 집으로 들이닥쳤다. 난 집에 숨어 있었지만 아버지의 처지가 궁색했을 것 같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내가 우리 집 망신을 다 시킨다고 생각하셨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이 내 인생의 화양연화요 리즈시절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나는 엄청난 삶의 변화와 마주한다. 어느 날 새벽, 꽹과리 소리와 소란스러운 소리에 눈을 떴다.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엄마가 중간에 있는데,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이 손으로 무언가를 흔들면서 엄마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엄마가 뭔가를 말했는데, 엄마의 목소리가 아닌 기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막냇동생을 낳고 산후 우울증에 시달리던 엄마의 증세가 심해져서 아버지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당굿을 했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내 인생은 파란색에서 검은색으로 급격하게 전환되어 갔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 엄마가 미쳤다고 수군댔다. 무당굿을 하는데, 귀신에 들려 기괴한 목소리를 내고 정신이 오락가락한다고도 했다. 12살 어린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그 후로 인근 도시의 정신병원에 2년 정도 입원했던 어머니는 중학교 1학년 때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오셨다. 외할머니가 계시기는 했지만, 어머니의 병환과 부재로 집안 분위기는 엉망이었다. 아버지는 항상 예민한 상태이셨고, 형과 누나가 도시로 공부하러 떠난 상황에서 나는 아버지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은 자제하고 뭔가 기쁘게 해 드리려고 애쓰고 있었다. 말썽꾸러기인 나는 금세 철이 들기 시작했고 점차 조숙한 아이로 변해갔다.


  병원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나에게 진절머리 처지는 일상을 경험하게 해 줬다. 퇴원한 후 어머니는 두 달 주기로 울증과 조증이 반복되는 심한 조울증 증세를 보였다. 한 달은 기분이 점점 다운되다가 마지막 일주일은 내내 누워 계셨다. 나머지 한 달은 기분이 점점 업 되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밥을 해놓고  다른 집에 가서 아침밥을 얻어먹고 오기도 하고, 장사를 한다면서 어디에서 구입했는지 모를 물건을 잔뜩 사가지고 와서 이 동네 저 동네를 돌아다니곤 했다.


  타인의 평판을 중시하며 자존심 강했던 아버지에게, 어머니의 행동은 번 인내의 한계를 뛰어넘는 참을 수 없음이었다. 울증의 시기에는 그나마 나았지만, 조증이 오는 한 달은 내내 집안싸움이 이어졌다. 중학교 1학년 당시,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항상 무거웠다. 싸움은 저녁식사 시간에도 이어졌고, 불안한 마음으로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나는 어둠이 깔려있는 마을 뒷산으로 향했다. 저녁의 산은 고요하다. 지옥의 아수라장에서 방금 빠져나와 불안해하던 14살 꼬마에게 저녁의 고요함은 위로와 편안함을 선사해 주었다.


  뒷산에서는 불안함이 가라앉고 마음이 진정되면, 이상하게도 자기 연민이 몰려왔다. 내 처지가 한심하고 불쌍해 보였다. 갈 곳 없이 어두운 산에 혼자 덩그러니 있다 보면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고 누구의 위로도 받을 수 없는 내 처지가 한없이 불쌍해 보였다. 당시에는 이 상황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과 공포도 한몫했던 것 같다.


  중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항상 불안했다.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이 어머니의 일을 혹시나 알까 봐 전전긍긍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항상 밝게 웃는 아이가 돼 있었다. 나의 생긋생긋 웃는 모습 때문에 나에게 관심이 있나? 하고 헷갈렸다는 중학교 여자 동창도 있는 걸 보면 연기는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남들에게 내가 문제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 더욱더 명랑하고 밝은 아이로 나를 포장했던 것 같다.


  어느 날은 친구들과 점심을 같이 먹으려고 점심 도시락을 열다가 마음이 덜꺽 내려앉은 일이 생겼다. 도시락 뚜껑을 열었는데, 전날 먹은 도시락을 잘 닦지 않고 밥을 싸서 전날 먹은 김치의 고춧가루가 그대로 밥에 배어 있었다. 도시락을 덥고 황급히 교실을 나와서 운동장 벤치에 앉았다.


  친구들에게 들키지 않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다시 처량함이 몰려왔다. 아주 기본적인 것도 만족되지 않아서 불안해하고 있는 내 처지를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점심을 굶으면서 혼자 운동장 벤치에 앉아있던 14살의 나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진다. 그 후로도 어머니의 조증 기간에는 점심시간에 벤치에 혼자 있는 일이 늘어났다.


  시골의 작은 중학교에서 나는 공부 잘하고 밝게 웃는 모범생으로 통했다. 내가 힘든 환경에 있었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로지 혼자 견디고 감당하면서 철저하게 가면을 쓰고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면을 쓰는 삶은 우리를 두 개의 분리된 세상으로 안내한다. 가면 쓴 세상과 가면 속 세상으로 말이다. 나중에는 어떤 게 진짜 내 모습인지 헷갈릴 정도로 이중성을 가지게 된다. 이런 과정이 지속되면 자아는 서서히 두 개로 분리된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나의 생각 항아리'가 만들어진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뒷산에서 울던 14살 꼬마는 스스로에게 질문과 마음의 결심을 한다. '우리 부모들은 왜 매일 싸울까? 인생을 행복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내가 느꼈던 이런 고독과 슬픔을 내 자녀에게는 느끼지 않게 해 줘야겠다. 그렇게 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 '엄마의 부재는 가정을 풍비박산 나게 한다. 결혼을 한다면 배우자의 마음을 어떻게 잘 관리할 수 있을까?', '조울증은 마음의 병일까? 아니면 정말 미친 것일까? 울증과 조증은 왜 생기는 걸까?'


  14살 꼬마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독한 고독은 아이들을 빨리 성숙시키는 법이다. 나의 생각 항아리의 핵심 토대는 뒷산에서 혼자 울던 14살의 고독한 아이의 왜?라는 질문과 결심 속에 담겨 있다. 나머지는 질문의 답을 삶 속에서 구현하고 실행하는 시간이었다. 성인이 되면서 이런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해왔다. 주변 친구들과 대화를 통해서 답을 찾아보기도 하고 종교의 교리와 믿음을 통해서 답을 찾아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방대한 삶의 질문에 답을 찾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어둠이 깊게 깔린 인생 오솔길에서 넘어지고 가시에 찔리면서, 나는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삶의 방향을 잡은 것은 30대 초반이다. 서점에서 책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내 삶의 길을 찾아야겠다' 내가 궁금해하는 것은 누군가도 고민을 했을 것이니, 책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을 찾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기니 삶에 활력이 생겼다. 이제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책만 읽으면 되는 것이다. 나는 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고대경전, 종교, 역사, 신화, 진화, 철학, 심리, 경제, 물리, 뇌과학, 유전학 등을 책을 집중적으로 탐독해 들어갔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책에서 읽은 이론이 관념적이어서 일상의 삶과 괴리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관념적 지식의 단편성이나 삶에 적용 불가능성은 나로 하여금 또 다른 접근을 하게 했다. 하나의 생각 항아리에 삶의 근본적 질문과 나의 결심, 관련 책에서 읽은 관념적 지식, 삶에서의 적용 경험을 같이 넣어서 숙성시켜 나가는 방법이다. 생각 항아리에 들어간 내용물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해 나간다. 자체적으로도 숙성되면서 변화해 가지만,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지식과 만나서도 변화하고 도약해 나간다. 생각 항아리 속에 들어간 책의 이론들은 끊임없는 새로운 질문과 삶에서의 적용 경험 등과 버무려져 숙성되면서 점점 나만의 피가 되고 살이 되어갔다.


  이런 생각 항아리 중에는 30년 숙성된 항아리도 있다. 30년 생각 항아리는 숙성된 종갓집 씨 간장 같은 깊고 그윽한 맛을 낸다. 이 맛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유일한 맛이다. 들어간 재료는 같을지 몰라도 30년의 세월과 고통의 무게를 견디면서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독특하고 진한 향기를 지닌 씨 간장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제 생각 항아리를 하나씩 풀어놓으려고 한다. 자녀에게 물려줄 요량으로 정돈하고 숙성시킨 생각 항아리였다. 생각 항아리를 개봉하려는 마음은 복잡 미묘하다. 생각 항아리에는 숙성된 생각의 씨 간장도 있지만, 어린 시절 나의 고독과 슬픔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생각 항아리를 개봉해 이야기를 쓰겠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울컥한다. 14살 어린 자아의 고독, 슬픔 그리고 연민이 몰려온다. 길을 가다가도, 지하철에서도, 도서관에서 글을 쓰다가도 발작적으로 눈물이 흘러나온다. 꽁꽁 싸매 두었던 고독과 슬픔이 사라지지 않고 나의 내면 어디에 숨어있었던 것 같다.


  생각 항아리를 글로 옮기면서 나의 고독했던 나의 자아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이제 그만 고단한 삶의 무게를 내려놓아도 된다고. 이제 내려놓고 자유해도 된다고. 이제 그만 문제 해결에 대한 집착을 멈추고, 너의 삶을 온전히 즐기라고' 나의 생각 항아리는 나의 보배이면서 나의 고통의 근원지였던 것이다.  나의 고독했던 자아들이 생각 항아리 한 모퉁이에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과거의 '고독했던 나'를 놓아주고 싶다. 이제 자유해도 된다고 말해주면서, 순차적으로 생각 항아리의 뚜껑을 열 계획이다.


  생각 항아리 속의 이야기는 나의 자녀에게 유산으로 물려주고 싶은 아빠 삶의 '내적 정돈'에 관한 이야기이다. 안개 자욱한 고단한 인생길을 걸어온 나는 자녀에게 '인생 내비게이션'을 선물하고 싶었다. 내가 이 세상에 없더라도, 자녀들이 고단한 삶의 고비마다 펼쳐보고 다시 힘을 내어 일상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삶의 안내서' 말이다.


  작년에 결혼한 나의 딸이 올해 자신과 똑 닮은 딸을 낳았다. 나의 사랑하는 딸은 험난한 인생길에서 아빠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으면서도 자녀의 인생 마라톤을 넉넉한 마음으로 후원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자녀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교훈과 통찰을 이야기들로 정돈해 보았다. 좋은 부모, 현명한 부모가 되고 싶지만 좋은 부모의 그림자에 눌려 힘든 마음을 견디고 있을, 대한민국의 부모님들과 작은 희망의 불씨를 같이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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