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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남 카라 Jun 18. 2024

2. 좋은 부모를 꿈꾸는 사람들의 빛과 그림자

  세상의 모든 부모는 예외 없이 좋은 부모를 꿈꾼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좋은 부모는 한 걸음 다가서면 두 걸음 멀어지는 짝사랑 여인처럼 느껴진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자녀를 위해 살아가지만, 의외로 좋은 부모와 반대되는 길을 걸어가곤 한다. 우리는 좋은 부모를 꿈꾸면서도 자녀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일상 속 현실 부모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좋은 부모가 되는 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좋은 부모를 만나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 스미듯 사랑을 전하는 마음, 정감 있는 대화, 미래를 이끌어주는 혜안, 갈등을 풀어가는 지혜, 검소하고 겸손한 태도 등 좋은 부모의 모습은 일상의 삶을 통해 부모로부터 자녀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우리는 부모의 생각과 행동을 모방하면서 은연중에 부모를 닮아간다.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바라보면, 나의 눈빛, 표정 등 분위기가 내 부모와 참 많이도 닮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부모를 통해 좋은 부모의 역할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는 걸까? 냉정하게 말하고 싶지만 희망을 가지자는 의미에서 "좋은 부모가 되는 건 어렵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좋은 부모를 만난 사람도 그렇지 못한 사람도 부모로부터 다양한 마음의 상처와 결핍을 느끼면서 성장하기 때문이다. 장남과 차남의 형제간 차별, 아들과 딸의 성 차별, 채워지지 않는 부모의 인정과 사랑, 부모의 폭언과 폭행, 부모의 싸움과 갈등, 경제적 어려움, 편부모 슬하 등 열거하기조차 힘들 정도의 다양한 유년기 상처와 결핍이 존재한다. 다만, 좋은 부모는 '진솔한 대화를 통한 자기 고백' 등의 방법을 통해 자녀가 스스로 마음의 상처를 해소할 수는 통로를 만들어 준다.   


  이런 유년기 상처와 결핍은 미성숙한 상태로 마음의 심연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좋은 부모는 빛과 그림자를 가진다. 좋은 부모의 빛과 그림자는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뱀 우로보스를 연상케 한다. 빛은 그림자를 물고 있고, 그림자는 빛으로 연결되어 있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마음에 깊은 상처를 가진 사람은, 내면의 결핍인 그림자가 현실의 빛인 욕망으로 전환되어 좋은 부모가 되기를 욕망한다. 좋은 부모를 욕망하게 된 사람은 자기 강화를 통해 욕망을 극단으로 몰아가게 되고, 좋은 부모의 그림자도 덩달아 강력해진다.  



   우여곡절이 많은 초반인생을 살아온 나는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유년기 어머니의 조울증이 만들어낸 부모의 부정성을 끊어내고 자녀에게 행복한 인생을 선물하고 싶었다. 어찌 보면 14살 어린 소년의 고민과 다짐의 완결판이 좋은 부모였던 것 같다. 나는 자연스럽게 '좋은 부모'란 도대체 어떤 부모를 말하는가? 에 대한 생각을 오랫동안 이어왔다. 그리고 나름 자녀의 성장단계에 맞추어 3가지 관점에서 좋은 부모를 정의해 보았다. 1) 학창 시절 : 꿈을 펼칠 수 있는 최상의 교육환경 제공, 2) 청년기 : 자녀의 진로와 삶을 지혜롭게 이끌어줄 멘토 역할, 3) 성년기 : 삶의 희로애락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인생의 대화친구 


  최상의 교육환경 제공        


  첫째인 딸이 신도시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최상의 교육환경 제공'은 유토피아가 아닌 손을 조그만 더 내밀면 닿을 그런 거리로 느껴졌다. 아직 사춘기에 접어들지 않아 아빠를 잘 따르는 딸과 목가적인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집 앞의 중앙공원이 그런 환상을 품게 해 준 것 같다. 딸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가족은 신도시의 여유로운 자연환경을 뒤로하고 좀 더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한다는 '교육 메카'를 찾아 이사를 했다. 하지만, 교육 메카로의 진입은 우리 가족에게 '행복 끝 고통 시작'의 험난한 여정을 맛보게 해 주었다. 


  딸이 고1 때 교육 메카라는 산에서 내려오기까지, 딸과 길고 긴 전쟁을 치렀다. 중학교 1학년 때 받아온 아이의 첫 성적표는 내가 얼마나 성과 지향적인 사람인지를 여실히 보여줬고, 나는 어느덧 자녀교육에 몰빵 하는 펭귄아빠가 되어 있었다.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님들과 직접 상담을 하면서, 아이에게 최적의 교육 방안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딸과의 관계는 아빠의 열정과 비례해서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딸은 나의 성과 지향적인 교육방식에 반기를 들었고, 중 3 때부터는 제법 심각하게 충돌하기 시작했다.


   딸과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서, 울적한 마음에 집 근처 공원에서 어렵게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워 물면 참으로 만감이 교차한다. 어렵게 끊은 담배에 다시 손을 댄 의지박약이 한심했고, 분을 참지 못해 딸에게 할 말 못 할 말 퍼부은 나 자신이 싫어졌다. 좋은 아빠는 고사하고 막가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고 쓰렸다. 14살 어린 내가 느꼈던 아픔과는 또 다른 아픔을 딸이 느끼고 있다는 생각 하니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집으로 돌아와 조용히 딸의 방문을 열어보았다. 아파트 가로등 불빛이 창문으로 들어와 벽을 보고 누워있는 딸의 뒷모습을 애잔하게 비추고 있다. 딸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방안은 두 사람의 슬픔으로 가득하다. 딸의 슬픔이 미세한 파동에 실려 내 마음으로 밀려 들어온다. 동시에 14살 어린 자아의 슬픔도 깊은 심연에서 스멀스멀 마음 위로 올라온다. 두 슬픔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마음은 점차 검은색으로 변해간다. 검은색 마음은 위험하다. 검은색 마음은 사람의 꿈과 희망을 통째로 앗아간다.       


  밀려오는 생각에 한숨도 자지 못했다. 새벽의 어슴푸레한 기운을 느끼면서 마음을 정돈해 나갔다. 성과에 대한 욕심이 앞서서 교육 메카에서 길을 잃고 헤맸지만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자고 다짐했다. 14살의 나를 믿었던 것처럼 나의 자녀를 믿기로 했다. '자녀의 인생 마라톤을 위해 본질에 집중하자',  '성과는 자녀에게 맡기고 관계를 챙기자'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나의 자녀들은 나름 자신의 페이스로 인생 마라톤을 달리는 법을 터득한 것 같다. 


멘토 역할


  인생진로와 삶의 지혜를 전해줄 멘토 역할을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자녀 멘토링을 체계적으로 준비해 왔다. 심리, 철학, 교육, 코칭, 상담 등에 대한 책들을 폭넓게 탐독했고, 지인들의 인생 상담에 적용하면서 경험도 쌓아 나갔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대한 현실감각을 익히기 위해, 지인 자녀들의 학습코칭과 회사 젊은 직원들의 인생상담, 연애상당을 하면서 나름 내공도 키워나갔다. 대기업 입사를 희망하는 대학생들의 면접 코칭을 하면서 젊은 친구들의 마음과 생각에 대한 폭도 넓혀 나갔다.   


  지식과 경험을 겸비한 준비된 멘토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제 자녀의 인생을 잘 안내하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자녀 멘토링은 준비한 연습과는 달라도 너무나 달랐고, 타인의 멘토링과는 차원을 달리했다. 인류에게 삶의 지혜를 전해주었던 위대한 인물들이 유독 자녀의 멘토역할은 지인에게 별도로 부탁한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되었다. 부모는 자신의 자녀를 멘토링할 수 없었다.  


  자녀의 멘토링에는 아빠의 객관적이지 못한 미묘한 감정이 개입되었고, 매일 마주하면서 별로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 아빠의 전문성과 신뢰성에 자녀는 의문부호를 날렸다. 어느 날 대화중 불편함을 느꼈는지 딸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아빠와 대화를 하다 보면 재미가 없어요. 아빠는 설명충처럼 모든 걸 설명하려고 해요. 그냥 내 말을 좀 들어주면 안 되나요" 딸의 말은 비수가 되어 마음을 온통 북풍의 한기로 가득 채웠다.  


  15년 이상을 준비해 왔던 모든 노력이 물거품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마음은 한기로 가득했고, 자녀를 위해 준비해 왔던 선물이 타인에게만 선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하니, 마음이 불편함과 쓰라림이 뒤범벅되어 갈피를 잡기가 힘들어졌다. 하지만, 시간의 힘을 빌어서 자녀는 부모의 멘토링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녀가 손을 내밀 때에만 조언을 해주거나, 힘들어할 때 뒤에서 밀어주어야겠다는 마음을 다지면서 나의 멘토 역할도 중도에 막을 내렸다.   


인생의 대화친구   

  

  인생의 대화친구는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생각이다. 나는 고민이 있거나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아버지와 상의를 하지 않고 대부분을 혼자서 결정했다. 성인이 돼서 내가 왜 아버지에게 나의 고민을 이야기하지 않았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버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자녀들의 고민거리 대부분은 부모를 실망시키는 일인 경우가 많다. 나는 문제가 만들어내는 힘듦보다 아버지의 실망하는 눈빛을 보는 것을 더 힘들어했던 것 같다. 이런 마음들이 모여서, 나는 아버지와 나의 문제를 상담하고 상의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자녀의 이런 생각은 든든한 기둥과 버팀목이 되어주고자 하는 부모를 가슴 아프게 만든다. 어릴 적 이런 생각들 때문에, 아이들에게 인생의 대화친구가 되어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변 지인에게도 성과보다는 대화나 관계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서울대 교수를 둔 부모는 많지만,  포장마차에서 부모와 소주 한잔 하면서 자신이 고민을 털어놓는 서울대 교수는 거의 없다"라고 말하곤 했다. 성과도 멘토링도 내려놓은 나에게 인생의 대화친구는, 어찌 보면 좋은 아빠로 가는 마지막 야간열차였던 것이다. 

      

  자신의 고민이나 이슈가 있을 때 즉각 아빠를 찾는 딸과는 인생의 대화친구에 어느 정도 가까이 간 듯했다. 그런데 아들과의 대화는 조금 힘이 들었다. 내향적 성향에 자신이 완벽하게 확신을 하지 않으면 관망하는 아들과의 대화는 왠지 모를 불편함이 느껴졌다.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하고 이상하다. 아들이 나의 생각을 수긍하지 않고 지켜보거나 관망하는 시간이 쌓여가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불편함이 마음 저 밑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마음이 쌓여 가던 어느 날, 아들과의 대화 중에 '아들이 너를 인정하고 있지 않은 것 같은데'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나는 순식간에 미성숙한 자아에 함몰되면서 아들에게 분노를 쏟아내고 있었다.   


  불편한 마음을 갖고 아들이 자리를 뜨자, 와이프는 "이런 행동을 하는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부모 관련 글을 쓰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되네요", "당신이 그렇게 닮고 싶어 하지 않는 아버님의 눈빛이 지금 당신의 눈빛 속에 있는 거 아세요, 당장 거울을 한번 보라고요"라는 말을 속사포처럼 퍼부었다.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겨우겨우 참아냈다. 여기서 한 발만 더 나아가면, 나는 생각 항아리를 더 이상 글로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런 발작적 분노의 끝자락에서 자기 처벌의 고통이 시작된다. 자기 처벌은 마음의 에너지를 남김없이 앗아간다. 마음 한 곳에서는 '네가 무슨 자격으로 부모 관련 책을 쓴다고. 다 때려치워!!'라고 속삭인다. 다른 마음에서는 '아니야. 우리는 모두 넘어질 수 있어. 다시 일어나서 다시 걸어가면 돼'라고 나를 위로한다. 일주일 정도 마음을 추스르고 나서, 나는 자녀들에게 인생의 대화친구가 돼주겠다는 생각도 내려놓았다. 


  최상의 교육환경과 멘토링 역할, 그리고 인생의 대화친구 등 좋은 아빠라고 나 스스로 정의했던 과제들을 나는 이제 모두 내려놓았다. 아들에게 분노를 표출한 갈등 속에서 나를 일으켜 세워준 희미한 불빛이 '좋은 부모를 꿈꾸는 사람들의 빛과 그림자'이다. 


  나는 14세의 어린아이로부터 시작된 좋은 부모에 대한 욕망을 내려놓았다. 물론 좋은 부모에 대한 욕망을 내려놓았다고 해서, 좋은 부모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좋은 부모의 욕망을 내려놓으니, 욕망하던 것이 슬며시 내 옆으로 다가와 자리 잡는 듯도 하다. 좋은 부모의 빛이 사라지니 좋은 부모의 그림자도 사라지면서, 나에게도 좋은 부모의 가능성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지금 결핍을 떨쳐내고 편안해하는 14살 어린 자아와 마주하고 있다. 삶의 중요한 고비마다 나를 괴롭히고 나의 발목을 잡아온 악동 같은 녀석이다. 40년 이상을 욕망을 찾아 헤매다가, 이제야 욕망을 내려놓고 나는 편안해하는 14살 어린 자아를 꼭 안아주고 있다. '이제 그만해도 돼. 이제 편히 쉬려무나'라고 속삭이면서 말이다.   


  본 글에서는 좋은 부모가 되고 싶었는데, 좋은 부모의 그림자에 함몰되는 원리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좋은 부모의 그림자에 왜 사로잡히는지 자신의 마음을 잘 살펴보았으면 해서이다. 마음을 잘 살피다 보면, 마음속 그림자 속에 빛에 대한 답도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각자의 마음을 잘 살피면서 각자에게 맞는 답을 찾아가길 바란다.  

이전 01화 Prologue, 나의 생각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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