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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남 카라 Nov 01. 2024

6. 남편이 믿음직한 빽이 되어주길 바라는 부인

  명절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아이들도 부모 눈치를 보면서 숨죽이고 있다. 부부는 차에 타자마자 한바탕 언쟁을 하고 나서 이제는 서로의 시선을 외면하면서 깊은 침묵에 빠져있다. 부인은 명절에 시댁에만 다녀오면 위경련이 도져 몇 달을 고생한다. 요즘은 울화병까지 생긴 것 같고 이래저래 힘들기만 하다. 다음 명절부터는 시댁에 가지 못하겠다고 선언할까 생각 중이다.  


  명절에 갈 때마다 첫째 시누이가 자기 아들이 이번에 전교 1등을 했다며 자랑을 하니 공부가 신통찮은 아이들 생각에 마음이 불편하다. 시어머니가 한술 떠서 너희 남편도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했다를 시작으로 우리 아이들의 신통치 않은  성적이 나를 닮아서라는 듯한 뉘앙스를 시댁 식구들로부터 느낄 때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손주의 신통찮은 성적이 나 닮아서라고 생각하는 시어머니 앞에서 학창 시절에 전교권이었던 나에 대해 남편이 "애들 엄마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했어요" 한 마디 해주면 좋으련만 입을 꽉 다물고 침묵으로 일관한다.  이럴 때는 시누이나 시어머님보다 남편이 더 밉다.


  부인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댁에서 느낀 뭔지 모를 감정이 다시 몰려온다. 모멸감인 것 같기도 하고 이방인이 느낄법한  외로움인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남편에게 시누이와 시어머니는 왜 그렇게 눈치도 없고 경우가 없냐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남편이 내 편에 서서 감정을 달래 줄 생각은 안 하고 화를 버럭 낸다. "그래 우리 가족들은 모두 눈치도 없고 경우도 없다. 그러는 당신 처가 사람들은 그렇게 눈치가 있고 경우가 밝아서 그런 식으로 사나 보지" 남편은 동생이 사업이 힘들어져 도움을 준 것을 빌미로 우리 가족을 비아냥거리고 있는 것이다.


  부인은 참았던 울분이 분노가 떠져 나온다. "왜 오히려 당신이 화를 내는지 모르겠네. 그리고 이 시점에 왜 동생 지원해 준 것을 들먹거리는 지도 알 수가 없네" 부인은 이런 인간 하나 믿고 부모님들이 뜯어말리는 별 볼 일 없는 집안에 시집온 자신이 한심하고 후회가 된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돌려서 이 인간이 아닌 나 좋다던 그 많은 남자 중에 이해심 많고 마음 따뜻한 사람을 만나서 결혼했어야 했나 하는 연민이 몰려온다. 다른 여자들도 이렇게 남편한테 대우받지 못하고 사는 걸까? 나만 이렇게 사는 거라면 내가 바보인가? 서울에 올라가면 앞으로 시댁에 가지 않겠다는 선언부터 할까? 같이 못 살겠으니 그만 헤어지자고 할까? 하는 생각 등으로 머리가 복잡하다.


  상황과 사례는 다를 수 있지만 명절 길에 오른 차 안에서 부부의 대화와 갈등은 대동소이할 것 같다. 여성들은 결혼할 때 남편이라는 든든한 빽 하나 믿고 시월드란 적진에 홀로 뛰어든다. 아무리 적진이 치열하고 상황이 어려워도 남편이 내 편에서 든든한 빽만 되어준다면 겁날 것도 무서울 것도 없었다.


  그런데 내가 유일하게 믿었던 든든한 빽인 남편이 배신을 때린 것이다. 시댁 사람들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왔기 때문에 순간순간 화가 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버틸 만하다. 그런데 믿었던 남편의 배신은 부인이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다. 믿었던 든든한 빽인 남편이 이제는 적과 한 통속이 되어서 부인을 공격하고 있고 적직에 완전히 포위된 부인은 삶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무력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남편들은 부인들의 이런 심리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부인들이 시댁 사람에게 불평하는 것은 시댁 사람들을 비난하고자 함이 아니라 남편에게 자신의 든든한 빽이 되어 달라는 간절한 절규다. 회사에서는 상사의 비위를 잘도 맞추면서 일 년에 두 번 있는 명절에 와이프 비위를 맞추어 주는 게 그리 힘든 일인가?


  명절이 끝나고 서울로 올라오는 차에 타면 와이프 손을 잡고 "여보 고생 많았어!! 그리고 누나나 어머니는 눈치 없이 애들 성적 들먹이면서 왜 그런지 모르겠네. 나도 짜증이 많이 났는데 그냥 참았어. 당신 음식 준비에 누나의 개념 없는 이야기 듣고 참고 있느라  정말 고생 많았어"라고 말해 보자.


  남편이 이렇게 말해주면 부인은 시댁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해소된다.  '그렇지 내가 믿을 만한 구석은 남편밖에 없단 말이야!! 내가 결혼을 참 잘했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남편들도 부인이 무슨 맘고생을 하고 사는지를 잘 살피면서 마음 관리를 하는 것이 가장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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