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삶은 모순된다. 어제 괜찮았다가도 오늘 다시 나빠질 수 있다. 일관성 없는 하루하루가 쌓이면 일상이 된다. 일상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삶을 깨달아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찌들어야만 삶의 본질을 조금이나마 엿볼 기회가 생긴다. 이토록 공허한 과정 속에서 뭘,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의문이 든다. 지그시 눈을 감아야 할 때다.
면도를 하다가 상처가 났다. 떨어지는 선홍빛 핏물이 세면대를 붉게 물들이는 와중에도 섬뜩함보단 허무함을 먼저 느꼈다. 얼른 닦고 면도를 마저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도 면도마저 내 의도대로 안 되는 상황에 짜증이 났다. 거울 너머의 꼬락서니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그저 될 대로 돼라 식으로 우두커니 가만히 서서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지쳤다면 지친 것이고, 질렸다면 질린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일을 할 때면 의지는 있지만 목표는 없다. 일상을 버텨낸다는 일념뿐이다. 분명 목표가 분명했던 때도 있었는데, 언제였는지 콕 집어서 말하긴 어렵다. 퇴근길에 마주치는 그 무엇도 감흥을 주지 못한다. 퇴근길에서마저 갑작스러운 일을 처리할 때면 집중력이 확 높아졌다가, 이내 확 낮아진다. 밀려오는 감정은 모두 내려놓으라 말한다. 닥친 현실은 그래도 버티라 말한다. 어느 쪽의 손도 들어줄 수 없는 나 자신이 참으로 처량스럽다.
배가 고프지 않다. 배고픔을 모르는 건 아닌데, 일어나 식탁에 앉기까지가 고역이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들고 밥 한 덩이를 입 안으로 끝내 밀어 넣고야 만다. 턱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것처럼 위아래로 움직인다. 혀 근육이 거들어 밥덩이를 목구멍 너머로 넘긴다. 이 짓을 수 차례 반복해야만 식사라는 과정도 끝이 난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는 소설 '서부전선 이상없다' 서문에 '이 책은 고발도 고백도 아니다'라고 썼다. 소설은 전쟁에 대한 참상을 처절하리만치 탐구했음에도 겸손함을 잃지 않는다. 레마르크 본인이 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직접 겪었기 때문에 소설도 설득력을 얻는다. 삶도 마찬가지라면 아직 제대로 겪어보지 않았기에 쓰기 힘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무슨 일이 기다릴지, 내일 어떤 일을 마주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