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부산이라고 답한다. 일단 태어난 곳이 부산이니까 그렇게 답하고 본다. 이사를 많이 다녀서 그런지 딱 어느 지역이 내 고향이라고 말하기가 좀 그렇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어디 출신인지를 따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본능적으로 살아 본 지역 중에 가장 인구가 많은 곳을 대는 게 일상이 됐다. 얻어걸리면 최대한 아는 만큼 지껄여댄다. 틀려도 좋다. 어렸을 때 기억이라 정확하지 않다는 핑곗거리가 있으니까.
거짓된 삶처럼 느껴진다. 깊은 유대가 없다는 것은 단순히 야구경기 때 응원할 팀이 없다는 차원의 감정이 아니다. 초입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아, 여기구나' 싶은 곳이 없다. 익숙한 곳은 많은데 마음 한편은 텅 빈 느낌이다. 세상을 무미건조하게 바라보게 되는 이유다. 그렇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듯하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진 강원도에서 살았다. 당시 사귄 친구들이 아직도 친구들이다. 몇 안 되는 친구들이기도 하다. 매번 마음이 맞는다고 말하긴 좀 그렇지만, 그래도 고마운 친구들이다. 내가 아직 강원도를 찾는 원동력이자 이유가 된다. 힘들어도, 즐거워도, 슬퍼도, 짜증이 온몸을 지배해도, 강원도를 찾아 친구들을 한 번 보고 오면 조금은 위안이 된다. 사람이 싫지만 사람을 갈구하는 내 모습을 본다.
외롭다. 외로움마저 익숙해질 수 있는 시간이 야속하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어중이떠중이 인생사가 이런 건가 싶다. 남들처럼 몸도 마음도 어딘가에 정착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내 상황이 원망스럽다. 나이가 어릴 땐 남들과 다름을 갈구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같음을 갈구하게 된다. 이는 곧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헤매고 있는 내 사회생활과도 닮은 구석이 있다. 팔자려니 하며 깨닫고 살아온 지 10년 가까이 지나고 있다.
공허해도 살아야 하는 게 인간이 처한 비극이다. 추워질 즈음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차를 몰다보면 주변에 눈이 쌓여있는 걸 볼 수 있다. 햇살이 내리쬐는 날에도 가드레일 아래 그늘진 곳 눈은 쉽게 녹지 않는다. 녹지 않으려 자기들끼리 발버둥 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신만은 최후까지 살아남으려 하는 인간 본성과도 비슷해 보인다. 일단 나도 눈 뭉치처럼 살아볼 텐데, 끝까지 갈 수 있을지 확신은 없다. 확신조차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