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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그랬다. 뭔가 즐거운 일이 있으면 그 감정이 오래갔다. 학교를 오갈 때도, 친구를 만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참을 수 없었다. 즐거운 일이라고 각인된 무언가를 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열정이라면 열정이고, 쾌락이라면 쾌락이다. 무엇인가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 특권인 시절이었다. 지금은 그 특권이 박탈된 상태다.
일단 재미가 없다. 짜릿함의 극치라고 일컬어지는 섹스마저도 그렇게 큰 재미가 없다. 매번 진행되는 서사가 비슷해서일 수 있다. 아니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무언가가 없어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랑 말이다. 섹스가 아니더라도 뭐든 재미가 없다. 그냥 없다. 재미가 없으니 언제나 표정이 뭉개져 있다. 굳이 인상을 펴고 싶지도 않다. 인상을 펴고 남들을 대할 동인(動因) 역시 없다. 결과적으로 갖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더라도.
왜 살아야 하는지를 퇴근 이후 잠들기 전까지 골백번은 더 고민한다. 침대 머리맡에 놓여있는 레프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소설 제목은 내가 처한 상황을 대변한다. 소설에 나오는 천사는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사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각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시지 않으셨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참 원망스러워지는 대목이다. 그깟 거 알려주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그저 순간순간의 즐거움만 있다. 길에서 산책 나온 개를 보면 그렇게 기분이 좋다. 예전에 키우던 누리와 민주가 생각난다. 초롱이와 약지도 생각난다. 다들 지금은 곁을 떠나고 없지만 잠시나마 추억에 빠져들 수 있다. 카페에서 산 커피가 생각보다 맛있어도 그렇게 기분이 좋다. 3000원짜리 커피치곤 풍미가 있음에 감사한다. 비가 오는 날은 손꼽아 기다려진다. 비릿하면서도 조금은 쾌쾌한 비 냄새는 언제 맡아도 좋고, 아침부터 해를 보지 않아서 더 좋다. 하지만 이러한 즐거움은 오래가는 것들이 아니다. 그저 순간순간의 즐거움일 뿐이다.
왜 살아야 하는지 다시 고민에 빠져본다. 유명한 철학자나 문학가가 머리를 싸매고 하는 그런 고민이 아니다. 근본적인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삶은 나아지지 않고, 방황은 멈출 줄 모른다. 숨만 쉬고 있다. 끝내 즐거움을 찾지 못한다면 공허하다면 공허한 내 인생의 마지막 장은 보다 빨리 찾아올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다행히 오늘 아침은 흐릿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