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남자는 울어야 할 때마다 웃으며 버텼다.
그래서일까, 그를 향해 자박자박 걸어온 행복을 결국 울려버렸다.
머저리같이.
엘리베이터 오른편 안쪽 끝, 하얀 종이봉투를 말아 쥔 남자가 느슨하게 서있다. 그 대각선으로 그를 안내하는 여자가 살짝 비스듬히 선채로 정면의 닫힌 문과 층수가 표시되는 윗부분을 번갈아 봤다. 그들의 만남은 벌써 네 번째임에도 겨우 눈인사만 건넬 뿐,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만나야 할 상대에게 그를 안내한 다음 짧은 목례를 하며 공간을 벗어났다.
“형아, 아이스크림 사 왔어?”
“응, 여섯 가지 맛이고 전부 달달한 거야. 새콤하거나 신맛은 안 담았어.”
“초코 볼 있는 건?”
“두 가지 맛이나 있더라.”
“얼른 방으로 들어가서 둘이 몰래 먹자.”
남자는 제자리에서 침을 한 번 꼴깍 삼켰다.
그리고 간절한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다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뗐다.
“제신아, 형아 좀 살려주면 안 될까?”
“왜 그래.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장난감 가지고 놀자니까.”
“그래, 놀 거야. 제신이가 지겹다고 할 때까지 안 가고 함께 놀 테니까, 제발 형 살 방법 좀 일러줘.”
“히히히히히, 안 돼.”
“안 된다니. 형이 앞으로도 제신이가 원할 때마다 아이스크림 잔뜩 사 오고 계속 신나게 놀아줄게.
그걸로 부족해서 그래? 아님 도저히 방법이 보이지 않는 거야?”
“멍청한 형아. 내가 아이스크림 값 열 배로 쳐줄까?
집에 가. 형 말고도 나랑 놀아줄 사람 차고 넘쳐.
형은 내가 바라는 뭔 갈 해준 게 아냐.
형이 해줄 수 있는 걸 내가 받아주는 거지.
그딴 걸로 살 방도를 요구하는 형이 바보 같은 거야.”
“미안해, 형 생각이 짧았어. 내가 너무 살고 싶어서 그랬어.”
“근데 난 형이 참말로 이상해. 누가 형을 죽여? 내가 죽여?
아님 어떤 인간이 나가 죽으라고 사주라도 해? 아무도 형보고 죽으라고 안 하는데 대체 왜 그러는 걸까?
아. 알겠다. 그냥 잘 먹고 잘 살고만 싶은데, 자꾸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니까 죽고 싶다고 앓는 소리 하는 거지?
에이, 퉤 퉤 퉤. 추저분하다. 추저분해. 지지야 지지.
이제야 보인다. 보여. 형은 욕심으로 실을 뽑아 제 목을 조르고 있잖아.
분수도 모르고. 저리 가. 훠이 훠이.”
남자는 할 말을 잃고 가만히 서 있었다. 무릎이라도 꿇고 애원하고 싶었으나 제신의 말이 날카롭고 기다란 창으로 변해 그의 몸 한가운데를 꿰뚫었다. 그는 제자리에서 옴짝달싹 하지 못했다.
“육실장, 이 남자 어디 먼 곳에다 버리고 와. 기운이 상당히 안 좋다.”
상대는 짜증 섞인 말투로 책상에 달린 스피커를 켜 지시했다. 검은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우르르 들어와 망부석이 된 사내를 질질 끌고 나갔다. 사내의 입은 벌려져 있었으나 그 어떤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는 그대로 차에 실려 가다 아무 데서나 버려졌다. 아직 한 낮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도심 한복판이었다.
남자는 엉엉 소리 내 울었다.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뚝뚝 떨어졌고, 코에서는 진득한 콧물이 길게 늘어졌다. 입에서는 사람의 소리가 나오지 않고, 짐승의 뱃속에서 올라오는 괴음이 부르르 대는 입모양에 맞춰 뿜어졌다. 사방에서 시선이 쏟아지는데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 큰 어른이 그리도 서럽게 울었으니,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내가 언제 멈출 수 있었을까. 어느 순간에 그만뒀다면 좋았을까.’
‘아니, 태어난 순간부터 난 이미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걸까.’
남자는 두껍고 단단해 보이는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과 머리를 마구 내리쳤다. 그의 체벌에 도저히 형언하지 못할 후회가 담겨있었다. 스스로에게 내리는 지극히 합당한 처벌, 남자를 안쓰럽게 쳐다보면서도 차마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마 이렇게 생각했으리라.
‘스스로에게 내리는 벌을 어찌 남이 과하다 판단할 수 있을까.
저이도 납득할 만큼 벌을 받아야지만 비로소 자신을 용서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