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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령 Aug 09. 2024

마음이라는 집

2022학년도 4월 3학년 학력평가

  마음은 빈집 같아서 어떤 때는 독사가 살고 어떤 때는 청보리밭 너른 들이 살았다 

  볕이 보고 싶은 날에는 개심사 심검당 볕 내리는 고운 마루가 들어와 살기도 하였다 

  어느 날에는 늦눈보라가 몰아쳐 마음이 서럽기도 하였다 

  겨울 방이 방 한 켠에 묵은 메주를 매달아 두듯 마음에 봄가을 없이 풍경들이 들어와 살았다 


  그러나 하릴없이 전나무 숲이 들어와 머무르는 때가 나에게는 행복하였다 

  수십 년 혹은 백 년 전부터 살아온 나무들, 천둥처럼 하늘로 솟아오른 나무들 

  뭉긋이 앉은 그 나무들의 울울창창한 고요를 나는 미륵들의 미소라 불렀다 

  한 걸음의 말도 내놓지 않고 오롯하게 큰 침묵인 그 미륵들 이 잔혹한 말들의 세월을 견디게 하였다 

  그러나 전나무 숲이 들어앉았다 나가면 그뿐, 마음은 늘 빈집이어서 

  마음 안의 그 둥그런 고요가 다른 것으로 메워졌다 

  대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듯 마음이란 그냥 풍경을 들어앉히는 착한 사진사 같은 것 

  그것이 빈집의 약속 같은 것이었다


                                                                                     - 문태준, 「빈집의 약속」



  '집'은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품어온 욕망의 거점이다. 집은 얻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얻기 위해 어쩌면 평생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생래적으로 주어진 마음이라는 집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 집은 내내 텅 비어 있다가도 '청보리밭 너른 들'이 들어차기도 하고 볕이 따뜻하게 스민 '고운 마루'가 펼쳐지기도 한다. 다정하고 따뜻한 순간들을 돌아보면서 괜히 서러워진 마음을 '늦눈보라'와 함께 견디는 곳이기도 하다. 

  '전나무 숲이 들어'올 수도 있고, '수십 년 혹은 백 년 전부터 살아온 나무들, 천둥처럼 하늘로 솟아오른 나무들'이 들어올 수도 있다. '뭉긋이 앉은 그 나무들의 울울창창한 고요'는 어떤가. 생을 견디는 것이 우리의 몸이 아니라 마음이라면 텅 빈 채로 무엇인가를 견딜 수 있었겠는가. 무심(無心)의 지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 또한 '둥그런 고요' 안에 메워진 어떤 것이 단단한 열매로 맺어진 결실의 상태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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