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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e Oct 29. 2023

호주서 못 살아도 '하버 브리지' Go

2016.12.23.


 남반구 호주 시드니, 여기까지 와서도 지지리 궁상떨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가만히 있기도 뭣하고 생각의 고리를 끊어내고 싶은 마음에 걸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Sydney까지 와놓고선 눈앞에 Harbour bridge 구경도 못하고 가면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장 웹에 '하버 브리지 걸어서'라고 검색해 보니 'Milsons point'에 가면 'Circular quay'방향으로 걸어올 수 있다는 정보를 찾았다. 침상에서 일어나 백팩을 둘러메고 센트럴역으로 나섰다.



Milsons point에 도착하고 나서는 아까 찾아본 대로 Footpath 입구를 찾았다. 차근차근 올라갔더니 드디어 하버 브리지 위로 오를 수 있었다.


 다리에 오르고 나니 Train에 4-6차선을 육박하는 도로, 그 옆 자전거 도로와 내가 서있는 인도까지…, 생각보다 큰 규모에 놀랐고, 무엇보다도 80kg는 넘을 내가 잘못하다간 날아갈지도 모르겠을 센 바람에 한번 더 놀랐다. 나름 나온 시간이 여섯시즘이어서 해 질 녘이라 덜 덥겠지 하고 나왔는데, 한여름의 호주를 과소평가했음을 온몸에 흐르는 땀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날씨가 덥든 말든 보이는 것마다 사진도 찍고, 꿀꿀한 마음에 누가 보든 말든 셀카 삼매경에 빠졌다.


엄청난 규모에 놀랐던 Harbour Bridge, 안전을 위해 설치된 펜스 때문에 탁 트인 시야는 보기 힘들었지만 난간 사이의 틈으로는 다른 뷰를 볼 수 있었다.
생각이 많을 땐 걷는 것만한 처방전이 없는 거 같다. 구경도, 셀카(?)도 한 몫하는 거 같고.


 이미 해가 넘어가서 아슬아슬하게 노을 지는 건 놓쳐서 아쉬웠는데, 나름 한 가지 구경거리를 목격했다. 갑자기 "빠아아아아앙~"하고 Circular quay에 정박하고 있던 고층의 크루즈선이 출항하는 기적 소리에 고개가 절로 돌아갔고, 크루즈선이 얼마나 컸던지 눈앞에서 오페라하우스(일부)를 가리는 장면까지 볼 수 있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 한국을 돌아가니 마니 하고 나왔던 건데, 그 생각은 온데간데없고 별에 별구경을 하나 싶었다. 스스로 아찔한 생각은 스트레스가 평소처럼 적당히 있었으면 또 숙소에 처박혀서 가만히 있었을 텐데, 그게 터져 넘친 덕에 이렇게 나오게 되었으니 스트레스받은 걸 감사해야 하나 같은 모순적인 생각이 들었다.


CIrcular quay에 정박해있던 크루즈선, 자그마해보이는 게 사람이라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크루즈 규모를 가늠해볼 수 있다.
'여러분! 크루즈가 오페라 하우스를 가리는 순간입니다~~~!'
Harbour Bridge를 건너다 본 먼발치의 Rooftop restaurant, Cahill walk론 안가고 Circular quay로 가는 길로 따라갔다.
생각이 많아질 땐, 걷자.


 걷다 보니 생각들이 많이 날아간 것 같았다. 걷느라 힘들어서 그런 건지, 그 세찬 바람에 생각이 날아간 건지, 아니면 비좁은 백패커 천장에만 있다가 탁 트인 하늘 아래 나와서 그런 건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순 없지만 뭐든 도움이 된 건 확실해 보였다. '역시 생각이 많을 땐 걷는 것만 한 처방전이 없구나'라는 걸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다리 위에는 나처럼 사진 찍고 다니는 관광객도 많이 보였고, 주변에 사는 걸로 추정되는 조깅하는 사람, 서류 가방을 들고 퇴근하는 사람 등등이 보였다. 구경거리, 나에게서 내가 아닌 것을 담는 것, 다양한 사람과 풍경을 구경하다 보니 내 상황, 내 걱정만 하던 머릿속이 저절로 비워지고 다른 것으로 채워짐과 동시에 여러 생각이 치환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가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일해보고 싶다'


어느 광장에서 본 한여름의 크리스마스트리,  a Christmas tree on the plaza in Sydney in Summer


 실컷 걸으며 머리를 식히고 백패커로 돌아왔다. 역시나 입구에는 시끌벅적한 우퍼 달린 스피커에서 힙합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 옆에서 소린지 노랜지 내지르는 애들도 여전했다. 그 틈을 뚫고서 소중한 나의 보금자리 나의 방 이층 침대 위에 안착했다. 방에 도착하고 나니 곧 James 할아버지도 도착했다. 한 손에는 단돈 5불에 샀다며 스시(김밥 모양의 토핑이 안에 든 음식)을 잔뜩 들고 계셨는데, 자기는 이미 백패커 와인 파티에서 많이 먹어 배부르다며 네 개 중에 세 개나 나 먹으라고 주셨다. 점심 KF* 사건 이후 한 끼도 먹지 않은 상태라 감사히 허겁지겁 먹고 있는데 James 할아버지가 이력서와 커버레터는 잘되고 있는지 물으셨다. 영 좋지 않은 표정에 잘 안되고 있음을 알리니 괜찮다면 내일쯤 자기가 영어교정을 해주겠다고 하시는 게 아닌가?? 속으로 '이게 웬 떡?'이란 생각은 물론, 곧장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와 함께 해주심에 감사함을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굳이 James 할아버지가 그러실 이유가 없는데...' 하는 생각에 혹시나 어젯밤 버럭했던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서 호의를 베풀어주신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면 어떤가? 영어 개인 교정이라니! 자포자기하던 하루였는데, 끝자락에 선물 받은 기분이 들었다.


 하루하루가 참 다사다난하다. 바닥과 천장을 오르락내리락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이런 걸 보면 또 '내일도 분명 해는 뜨고 지겠구나'하며 희망을 걸어보게 되는 거 같다. 문득 James 할아버지의 아침인사가 떠올랐다.


"Its' new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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