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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벌레 잠잠이 Sep 27. 2021

미라클 작전을 방불케 하는 '모가디슈' 생존 투쟁

영화 <모가디슈>를 극장에서 보다!

 영화를 좋아해서 극장을 마르고 닳도록 드나들었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과 다른 여러 일들이 겹쳐지면서 영화관에 못 간 지 2년 가까이 되어간다. 그러다 이번 추석 연휴에 갑자기 짬이 생겨서 남편과 극장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보고 싶은 영화 있어요?"

 "글쎄, 뭐 볼까"


 "난 보고 싶은 영화 있는데?"

 "무슨 영화?"

 "모가디슈!"

 "모가디슈?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를 듣자마자 보인
남편의 반응을 보고 놀랐다.

첫 번째는 8월 최대 흥행작이자
올해 처음으로 관객 300만 명을 돌파한
화제작 <모가디슈>를
제목조차 들어보지 않았다니!

두 번째는 '모다디슈'가
소말리아 수도라는 것을 알고 있다니!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모다디슈'가 소말라이 수도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처음 영화 <모가디슈>를 알게 된 것은 둘째가 같이 보고 싶은 영화라고 해서였다. 

그때만 해도 "그럴까? 같이 볼까?" 하는 정도의 느낌이었다.


 두 번째로 이 영화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된 것은 탈레반이 정권을 재탈환하면서 내전에 휩싸인 카불 공항에 한국에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과 가족들을 구출하기 위해 우리나라가 구조기를 보내서 390명을 탈출시킨 '미라클 작전'을 연상시키는 작품이라는 얘기를 듣고 나서다.


 마치 영화 같은 '미라클 작전'은
2021년 8월 말의 실제 상황이었고
 
마침 1990년대 비슷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모가디슈>는
극장에서 상영 중이었으니,
타이밍도 절묘했다.


 그래서 <모가디슈>를 꼭 보고 싶긴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극장에 가서 볼 여유는 없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생긴 추석 연휴 몇 시간 덕분에 영화관에 가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외교관 한신성 대사(김윤석 분)와 안기부 강대진 참사관(조인성 분)


 영화의 배경은 우리나라가 UN에 가입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영향력 있는 정부의 도움을 받기 위해 노력하던 1991년이다.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우리나라 외교관 한신성 대사(김윤석 분)와 안기부 직원 강대진 참사관(조인성 분), 서기관 공수철(정만식 분) 등 외교부 직원과 가족 등 여섯 명이 공관에서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소말리아는 오래전부터 북한과 교류를 하던 국가로 대통령을 만나서 협조를 구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 모가디슈는 북한 대사 림용수(허준호 분)와 태준기 참사관(구교환 분) 등 더 많은 직원들과 가족들까지 자리 잡고 있는 터전이었다.

한국 한신성 대사(김윤석 분)와 강대진 참사관(조인성 분), 북한 림용수 대사(허준호 분)와 태준기 참사관(구교환 분)

 남북은 소말리아 정부를 우호적인 관계로 만들고 UN가입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경쟁을 하다 보니 서로를 의심하며 만나면 으르렁 거리며 갈등을 키우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소말리아 독재정부에 반발한 시민군이 무기를 갖고 들고 일어나며 모가디슈는 내전으로 몸살을 앓게 된다.

소말리아 모가디슈 1991년 내전

 거리에는 시민군을 잡으려는 무장경찰과 그에 맞서는 시민들이 총기를 소지하고 대치하며 무차별적인 폭력과 발포가 일상을 잠식해버린다. 공포의 도가니로 변한 모가디슈에서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곳을 탈출해서 국내로 복귀하는 것이다. 하지만 통신마저 이미 끊겼다. 한신성 대사와 외교관 직원들은 한국 정부에 연락을 하지 못해서 구조기를 기대할 수도 없는 사면초가의 상황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북한 공관이 시민군의 습격을 받아 생필품을 빼앗기고 공관에 머물 수 없게 되자 북한 대사 림용수(허준호 분)와 직원, 가족  등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한국 공관 문을 두드리며 도와달라고 요청을 하게 된다. 그동안 남북관계를 생각하면 서로를 믿을 수도 없고 전시상태나 다름없는 내전 상황에서 안전을 보장할 수도 없다.

북한 대사와 직원 가족들


 우리나라 한신성 대사(김윤석 분)는 처음에는 독하게 거절한다. 하지만 공관 밖에서 들리는 총격 소리와 북한 대사와 함께 온 직원 가족, 아이들을 보며 결국은 문을 열어주고 함께 생활하게 된다.


 한신성 대사(김윤석 분)는 림용수 대사(허준호 분)에게 "밥들은 먹었소?"라고 묻는다.


 나는 이 대사가 참 좋았다.

한 대사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사이면서 극심한 공포 속의 긴장감을 누그러뜨리고 앞으로 이들의 관계에 대한 복선처럼 읽혔다.


 그리고 기다란 식탁 앞에
남북 외교관 직원들과
가족들은 옹기종기,
다닥다닥 둘러앉는다.
 
음식은 조촐하고 컵라면 등이
국을 대신하지만
나는 이 장면을
이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고 싶다.

 우리나라 대사가 부족한 음식이지만 함께 나눠먹자고 말하고 식사를 시작하는데, 북한대사나 직원들은 아무도 수저를 들지 않는다. 한신성 대사가 자신의 밥그릇과 림용수 대사의 밥그릇을 바꿔서 식사를 하자, 림용수 대사가 수저를 들고 다른 직원과 가족들도 허겁지겁 밥과 컵라면 등을 먹는다.


 사이가 좋지 않았던 남북 사람들이 한 식탁에 마주 앉아 서로 반찬을 양보하고 깻잎을 한 장 떼어가도록 잡아주는 장면은 뭉클하다. 대사가 거의 없었던 식사 장면에서 남북의 사람들이 같은 음식을 먹었던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준다.


 물론 한 공관에 있으면서 크고 작은 오해와 갈등은 있을 수밖에 없다. 안기부 강대진 참사관(조인성 분)은 북한 대사와 가족들을 모두 한국으로 데려가기 위해 몰래 서류를 만들다 북한 참사관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한신성 대사가 북한 대사에게 사과를 하고 오해를 풀며 서로 협조를 해서 함께 구조기를 탈 수 있도록 다른 나라 정부에 요청하기로 한다.

김윤석과 허준호 두 배우의 명품연기가 인상적이었다.

 남북 각각의 나라가 수교를 맺고 있는 나라 공관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총격을 피해 시내를 통과해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이탈리아 정부를 찾아간 한신성 대사는 구조기 요청을 수락받지만 한국사람들만 탑승할 수 있다는 조건을 들어줘야 하는 상황. 함께 간 강대진 참사관과 옥신각신 고민 끝에 한신성 대사는 기지를 발휘해

북한 사람들이 한국으로 귀순할  것이라는 선의의 거짓말을 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기적적으로 남북 모두가 다음날 구조기 도착 시간에 맞춰서 공항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시민군들이 장악하고 있는 시내를 통행증 없이, 총격을 피해서 무사히 통과할 수 있느냐, 하는 것.

총기를 소지한 시민군과 무장경찰들은 의심가면 무조건 발포하며 시내는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이번에 아프가니스탄에 우리나라와 일본 모두 구조기를 보냈지만 일본은 단 1명만 구출했다.


 우리나라가 390명을 구출한 것과는 너무도 비교되는 결과다. 이것은 일본은 카불 공항으로 구조기를 보내서 이송할 아프가니스탄인들을 기다렸던 반면, 우리나라는 그 위험한 시내를 버스로 통과해서 아프가니스탄 협력직원과 가족들을 태우고 공항으로 돌아왔기에 그 많은 인원을 구조기에 탑승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자동차 운전석을 제외하고 책들로 방패막이를 만들었으나 시내를 통과하면서 총격을 당해 풀어헤처졌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우리나라 대사와 직원들을 태운 차와 북한 대사와 가족들을 태운 자동차는 총격을 피하기 위해 책들로 방패막이를 마련한다. 기적적으로 공항에 도착하지만 희생되는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이념을 떠나 생명의 존엄을 생각하게 된다.

 또한 무기를 지녔을 때 사람이 얼마나 잔인하고 추악해질 수 있는가도 깨닫게 해 준다.


 남북 사람들 모두 비통한 마음으로 이탈리아 구조기에 나란히 타고 카이로 공항에 도착해 생환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서로 작별인사를 미리 나눈다.


 땅에 내려서는 아는 척도 인사도 할 수 있는 서슬 퍼런 남북 관계 아닌가. 

아무 말없이 작별인사를 눈으로 하며 서로의 안부를 기원해주는 듯한 이 장면이 내게는 또 하나의 명장면으로 남았다.


 각각의 정부에서 직원들이 나와 기다리고 있는 버스에 탑승하기 전 우리나라 한신성 대사와 북한의 림용수 대사의 뒷모습을 카메라는 오래 비춘다.


 돌아보고 싶은 마음, 한 번 더 안부를 확인하고 묻고 싶은 마음, 그 진한 여운이 내게도 오래오래 남을 듯했다.



*덧붙여서,

 영화를 보기 전에 나는 보통 감독이 누구인지를 확인하는데, <모가디슈>는 다 보고 나서야

"아, 영화감독이 류승완 감독이었었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류승완 감독의 스케일과 연출력이야 익히 알고 있었으나 소말리아 모가디슈라는 낯선 땅에서 어떻게 저렇게 많은 현지인들을 진두지휘하며 실감나게 촬영을 했을지, 놀라웠다.


 관객들이 다 일어나서 극장을 빠져나가는 동안 나는 영화의 마지막 스크롤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앉아 이 많은 사람들의 수고에 감사를 전했다.

<모가디슈>는 올해 최초로 관객 300만 명을 돌파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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